克齋公 金호의 敎旨 및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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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작성일13-07-22 21:26 조회3,144회 댓글3건본문
그리고 인용하신 죽계공 선조님의 소개글은 향토문화자료[4] 천안편 역사를 가꾼 인물들[민병달편저]에
실린 글로 소설과 같이 추상적이며 확실한 고증이 부족하고 오류 도 많을 뿐아니라. 편자의 시각에서
추정한 신뢰할수 없는 글 이라고 할수있읍니다. 죽계공 선조님은 안악군수 재임시 안악에서 몰하셨으며
조정의 명에 의하여 고향으로 귀환하는 운구의 편의를 해당 지방수령들이 제공토록 하였다고 합니다.
고향 천안에 있는 묘소의 봉분이 왕능처럼 크고 높으며 위용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장자이신 엽 선조님은 사옹원 봉사에 오르시고 차자 극재공 휘호님은 예천군수에 재임하셨읍니다.
황해도 안악에 세워져 있다는 죽계공 선조님의 타루비가 지금도 남아있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알아보고자 하는 중요한것은 죽계공 선조님의 이조참판 증직 교지를 최근에 찾앗읍니다.
이 교지에 기록되어 있는 형난원종공신 1등 의승전추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추측으로는 차자 사헌부 지평 김호님께서 공신에 오르시며 증직된 교지가 아닌가 추정되지만 결정적
사료를 찾지못하여 안타까움이 큽니다.족보의 기록으로는 贈 嘉善大夫 吏曹參判兼 五衛都總府 副總官
行 通政大夫 安岳郡守 黃州鎭管 兵馬節制都衛라 기록하고 신위 및 축문 기록도 위와 같이 기록합니다.
다음은 극재공 김호 선조님의 교지 및 년보를 파일로 올립니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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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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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형난공신1등을 받은 분은 아마도 죽계공이시라 짐작됩니다
죽계 김계종 공의 형난원종공신1등으로 인하여 이조참판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된 해가
1616년(만력44년=광해8년)11월 6일로서 60세 되는 해입니다.
형난원종공신이란 1613년(광해군5) 대북파가 소북파의 세력을 없애려고 김직재 등을 모반 혐의로 처형시킨 공으로 1등2명 2등 12명 3등 10명 을 책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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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재의옥사 사건이 날 때(1613년) 죽계공은 57세이시며 다음해인 1614년 58세에 돌아가셨고 다음다음해인 1616년 이조참판에 원종공신1등에 의거 증직되셨습니다.
아드님(김호)1584년생으로 27세인 1610년 문과급제하시었고 30세(1613년)때 옥사가 났으니, 이때 김호가 형난공신1등이 되시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형난원종공신에 대하여 자세히 아시고 싶으시면 연락주십시요. 010-3363-0543 김영환
김상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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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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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응천일록(凝川日錄)>에서
1) 임자년(1612, 광해군 4) 5월 9일
맑음. 지난 28일에 영천(榮川)의 유학 이평(李坪)이 상소하기를 대개는, ‘유영경은 세 역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흉악한 마음을 먹고 임금의 공훈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뒤쫓아 전형을 베푸시기 바라며, 빨리 존호를 올려 국시(國是)를 정하라.’고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상소를 살피건대, 역적을 치되 엄히 하지 아니하면 국시가 정하여지지 못한다는 말은 오늘날의 약석(藥石)과 같은 말이어서 네 뜻을 가상히 여기며, 역적을 치는 의리를 대략 알겠으나, 애석한 것은 공훈을 매기고 칭호를 높인다는 말에 미쳐서는 지극한 논의와 함께 어울려 전도되고 망령된 데로 돌아가게 하니, 한탄스럽다. 다른 나머지 일은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고 하고, 이윽고 전교하기를, “이 상소 가운데에서 존호에 관한 한 조항을 빼고 난 그 나머지는 힘써 의논하여 시행하여야 마땅할 것 같다.”고 하였다.
평산 부사(平山府使) 유시회(柳時會)와 거창 현감(居昌縣監) 김계종(金繼宗)을 가자하였는데, 역적의 무리를 잡은 공이다. 사헌부가 아뢰어 관시(館試)의 응판관(應判官) 이사규(李士珪)가 그 아재비 이경익(李景益)과 더불어 몰래 한 표문(表文)을 지어서 밀초 속에 넣어 사사로이 했던 과거응시자에게 보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하여져서 베껴져 온 시험장에 퍼졌으니 잡아다 국문하고, 아울러 감시관 오행민(吳行敏)도 파직하기를 청하였더니, 곧 그대로 허락하고 아울러 시관도 따지도록 하였다.
김상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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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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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 가자(加資) :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던 조선조때의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