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대(上洛臺)와 회곡(檜谷), 그리고 고산정(孤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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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3-07-24 15:12 조회3,431회 댓글0건본문
상락대(上洛臺)와 회곡(檜谷), 그리고 고산정(孤山亭)
회곡동(檜谷洞) 일대는 우리 안동김씨의 영원한 고향이다.
회곡일대에 안동김씨가 세거(世居)한지 어언 1,000여년이 되었으니, 우리나라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 집안이 1,000여년 간 한 곳에서 세거하였다는 것은 과문인지 모르나 들어본 적이 없다.
회곡동은 우리 안동김씨의 시조(始祖)이신 공부시랑평장사(휘 叔承)공부터 입향하여 현재까지 이어온 것이다. 상서복야(휘 敏成)공께서 이곳이 고향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충렬공을 양육하시었고 녹전에 묻히셨다.
충렬공께서는 이곳 회곡에서 태어나 16세에 양온사동정(良醞史同正)으로 출사(出仕)하시기까지 할아버님(휘 敏成)슬하에서 학문과 무예를 닦으셨다. 당시에 회곡의 전장은 회곡뜰 일대를 포함하여 강 건너 상락대 일대를 어우르는 방대한 땅이었다는 것이 여러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락대는 회곡에서 보면 강 건너이지만, 남양담을 사이에 둔 강북인 회곡과 강남인 상락대, 원두포 일대는 지척지간으로, 강은 아주 훌륭한 교통수단이어서 현재의 개념과 달리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강 남쪽 절벽위에 있는 상락대에서 충렬공께서 무예와 학문을 익히셨고, 상락대 아래에 있는 원두포일대가 충렬공의 채마밭(菜苑)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원두포 일대가 모두 충렬공 선대부터 내려오는 전장(田庄)임이 틀림없다.
원두포에 낙강정을 지었다고 되어 있으며, 이곳이 충렬공의 채원이었다고 영가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강남(남양담 남쪽)에도 많은 전장이 있었으니, 아마도 이곳에 별서(別墅=별채, 별장)가 있었고, 이 근처에 외거노비들이 주거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원두포에 낙강정을 지었다고 되어 있으며, 이곳이 충렬공의 채원이었다고 영가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강남(남양담 남쪽)에도 많은 전장이 있었으니, 아마도 이곳에 별서(別墅=별채, 별장)가 있었고, 이 근처에 외거노비들이 주거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상락대에는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 봉긋한 곳이 있으니, 충렬공을 사모하였던 상락낭자의 무덤이라고 전해오는 전설의 무덤도 점점 평지화 되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내신 충렬공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설속에 묻혀가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상락대 절벽에 자라고 있는 비채(菲菜) 또한 충렬공이 심으셨다고 영가지에 전해온다. 이 비채가 어떤 나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락대 절벽 어느 곳에 아직도 자라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상락대는 우리 안동김씨에게는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아련한 정서를 품은 고향인 것이다.
또한 고산정(孤山亭)은 충렬공 할아버님이 지으시고 유상(遊嘗)하시던 곳이라고 되어 있지만, 16세에 출사(出仕)하여 70여 년간을 나라의 부름으로 입상출장(入相出將)의 역할을 하시고 개경[開城]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보아 정자를 짓고 감상하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리라 보면 아마도 선대에 지어진 것이리라. 고산정은 회곡 남쪽 고산(孤山)에 있으며 남양담(南陽潭) 북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고산은 회곡 가운데에 있는 작은 시냇물이 휘돌아 나가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 있다고 되어 있으니 현재까지 종산(宗山)으로 1,000년 보전해온 회곡 앞산(회곡동 산 154번지 일대)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회곡동 앞 작은 시내가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형이 변함없이 남아 있다.
안사연이 탄생하여 십년이 훌쩍 넘는 열정적 활동으로, 지난 충렬공탄신800주년에 [충렬공논문집]을 간행하여 탄신기념식을 더욱 빛나게 하였고, 또한 그동안 모아온 방대한 자료를 전삼권으로 묶은 [충렬공자료집성]이라는 대작을 발간하여 역사학계는 물론 타문중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며, 올해는 충렬공탄신800주년 기념 학술대회도 성공리에 마치게 되었으니 그간에 안사연 활동에 꽃을 피운 일이리라 생각된다.
올해에는 안사연을 사이버상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지양(止揚)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큰 발걸음으로 재탄생하였다. 이어져 오던 여름캠프를 좀 더 심화하여, 상락대와 회곡동, 그리고 고산정옛터의 자료집을 발간하고, 이어서 상락대, 고산정에 대한 학술발표를 하고, 이곳을 심층 답사하여 묻힌 역사를 햇빛에 내세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자 한다.
330여년전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선조님께서 상락대와 회곡에서 안동김씨종회를 열고 그 기록을 사주유고(沙洲遺稿)에 [회곡종회기(檜谷宗會記)]라고 남겨놓으신 발자취를 밟아보면서, 기록에 의한 고증을 재확인함도 또한 목적이다. 이번 상락대행사가 밑거름이 되어 내년에는 또 다른 집중탐구가 이루어지고 계속하여 안동김씨역사연구자료집이 2집 3집 이어내려가서 100집 1000집으로 이어가 후일 [안동김씨자료집성]에 기초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만 서문으로 삼는다.
2013년 8월
안동김씨역사연구회장 김영환 (충렬공21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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