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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춘추(安金春秋)-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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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3-05-30 17:47 조회2,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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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刊辭

△安金春秋라면 或은 春秋筆法 卽新聞같이 認定도 할것이나, 그것이 않이고 譜鑑編纂中 大同宗內 消息及 吾金靑少年의 若干 啓蒙이 될가하는 刊行을 意味함니다.
△그런데 新聞과 類似한 通信도 許多한 言論□□인 今日 吾金數十萬 相互通信의 關으로 開門한 바로 賓辭하여 주시는 바가 多數라면 繼續的으로 硏究하여 月 一面 程度로 刊行할 수 도 可能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文句와 言辭는 新聞 社會面과 同一한 水準이니 文句나 文獻的 反面으로 檢討하시거나 或은 非難은 없기 바라나이다. 다만 散在한 吾金의 宗族的通信이라는 大義下에 參考하시기 바라나이다.
(三角山下에서 編者 白)

論說
尊祖睦族은 靑少年 敎養書로 封建式을 除去하자!!
回顧하고 展望하노니 時代變化는 個人으로서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漢學中老가 榨敌되면 其後世는 果然如何하리요?
稚則컨대 十常八九는 漢學全盛時代는 暫定的過度期일 것이고 山河風俗이 一世紀의 變動感이 있음은 明若觀火이라 않이 할 수 없다. 然則 吾金宗中 分派의 或者의 例를 들어 보기로 한다. 똑똑하고 財産이 裕餘하고 行勢를 좀 하면 宗中擧皆事를 獨斷 負担케 되고 重荷之 責任所行에 年中無休로 右往左往케 된다. 然故로 多數之宗族은 右代表的役軍으로 하여금 모-든 事에 便益을 公私間 被蒙케 되여있다. 故로 他人이 볼 때 集團地인 吾金部落을 崇望하며 훌륭한 安東金氏라 한다. 그런데 此代表的 人物을 除한 數數多多의 宗族의 常識을 □□하여 본다면 그와 反對로 宗族歷史도 全然不知이고 山峽에 孤立하고 있는 獨學者인 閑散한 宗族만두 못하다. 例를 들면 其原因이 自力主義가 않이고 宗族代表만 고 있다는것이 하며 二十年前 發行한 花樹錄이며 大同譜에도 名單이나 올린다는 心情이였고 數百戶면 花樹錄 四,五卷 族譜 二,三秩 等으로 代表人物 私宅에 奉置할 뿐 數百戶 宗族 數千家口는 「書者書」「我者我」格으로 그저 우리는 훌륭한 安東金氏이라는 內虛外崇의 口號로만 벗티고 있는 實情이다. 이 어찌 尋常한 事實이요 今般 出刊事業은 安金歷史를 啓蒙적으로 家家戶戶에 「大同譜」를 奉置하고 隨時便讀하여 傳統的思想을 涵養케 하자는 大意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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