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실 후예의 고려조, 조선전기 왕실과의 혼맥 소략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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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0-09-08 17:42 조회2,789회 댓글0건본문
신라왕실 후예의 고려조, 조선전기 왕실과의 혼맥 소략
[안동김씨를 위주로 주변 성씨들은 성씨, 본관별 가나다 순으로 고찰]
허의(許誼)
허공(許珙, 안동 김순의 빙장) - 부(富) - 순(順, 陽川君) - 허의(許誼)
이존사(李存斯)
경주 이예(李芮) - 손보(孫宝) - 길상(吉祥) - 존오(存吾), 이존사(李存斯)
김첨(瞻, 김광철의 손자)
광산 김회조 - 첨(瞻) ♡ 안동 김묘의 女, 녀 ♡ 김간(侃), 녀 ♡ 안원형
안동 김사렴 - 김간 - 무후
김수천(壽千) - 사윤(司尹)
최자하(自河) - 화순인, 부정(副正), 묘는 금릉군 구성면 송죽동이다.
화순 최원지(元之) - 최자하(自河) - 최안선(安善) - 녀 ♡ 허손(許蓀)
허공(許珙, 안동 김순의 빙장) - 관(冠) - 백(伯) - 경(絅) - 금(錦) - 기(愭) - 허비(扉)- 허손
허손(許蓀, 1412-1466) - 양천부원군(陽川府院君), 아들의 귀로 증영의정
양천 허손(許) - 허종(琮, 1434~1494, 우의정, 諡 忠貞), 허침(琛, 좌의정)
김면 - 김구정, 녀 ♡ 박진(震)
김구정(九鼎, 都評議, 도평의공파 파조)
김구정 - - - 5세손 김광수(光粹, 1468-1563) - 녀 ♡ 풍산 유중영(仲郢)
풍산(豊山) 유공작(公綽) - 중영(仲郢, 1515-1573) - 운룡, 성룡
유성룡(1542-1607, 영의정, 시 文忠) - 호는 서애(西厓)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의성 빙산서원(氷山書院) 등에 제향.
박진(震, 郎將)
김지서 - 김유(儒)
김유(儒, 大護軍, 대호군공파 파조)
김진 - 김익달(益達)
김익달(益達, 직제학, 제학공파 파조) ♡ 안동부주영해박씨(朴東生의 녀)
영해 박제상(堤上, 시조) - - 37세 琯 - 원계(元桂) - 박동생(밀직사)
김익달 - 고 - 맹렴 - 철균 - 수형(壽亨), 壽元, 壽仁, 수진(壽眞)
김수형 - 언홍, 언묵 - 석(錫) - 충갑, 효갑, 우갑, 제갑, 인갑(甲)
이제현 ♡ 박거실(원관의 사위)의 녀 - 녀 ♡ 박동생(東生) - 녀 ♡ 김익달
경주 익재 이제현(부원군-공민왕) - 이달존 ♡ 백이정(안동 김순의 사위)의 녀, 녀 ♡ 김희조(민사평의 처남), 이창로(안동 김묘의 사위, 김사겸과 김사안의 동서), 녀 ♡ 박동생(안동 김익달의 빙장), 녀(공민왕비 惠妃)
언양 김취려 - 전(佺) ♡ 최종재(최문본의 조부)의 녀 - 양감(良鑑, 부원군-충렬왕), 변(賆) ♡ 허공(안동 김순의 빙장)의 장녀 - 륜(倫, 안동 김방경의 외손자 조문근의 동서) ♡ 최서의 녀, 女 ♡ 원선지(유보발의 빙장)
유보발은 김진(김익달의 父)의 빙장이며 안원숭(김사렴의 빙장)과 동서
원선지(元善之, 1281-1330) ♡ 김변의 딸 - 녀 ♡ 유보발, 녀 ♡ 안원숭
유보발 ♡ 원주원씨(원선지의 딸) - 계고(繼高), 상좌(尙左), 녀 ♡ 김진
김익달 - 김고(顧), 女 ♡ 여흥 민무회(無悔)
김고(顧, 1389-1431, 문과, 좌사간) ♡ 동래부부인 동래정씨(鄭節의 녀)
묘는 장단 소남면 우봉 도리촌 자좌(子坐)의 이제현 묘하 수회촌 자좌(子坐)인데 예를 올리고 묘소를 수호할 길이 끊겨 산청 생초에 설단(1987)함.
동래 정호(瑚) - 정양생(良生) - 정부, 정절(鄭節, 吏議-이조참의, 정三품)
동래 정양생(文科, 대사헌, 淸白吏, 謚 良度) ♡ 순흥 안축(安軸)의 女
순흥 안축(安軸, 1287-1348, 僉議贊成事, 시 文貞) - 『관동별곡(경기체가)
』, 『죽계별곡』을 지었으며 민지(閔漬)의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이제현 등과 다시 편찬했다. 소수서원에 제향.
정부(鄭符) - 흠지(欽之) - 정창손(청백리, 영의정, 안동 김질의 빙장)
민무회(無悔) - 민제의 아들이며 태종의 처남이다.
민제 - 女(태종비), 무구, 무질, 민무회 ♡ 안동 김익달의 女, 무휼
김맹렴(孟廉, 사헌부감찰) ♡ 진주(진양)하씨(영상 하연의 女) - 철균
진주 하윤원(河允源) - 하자종(河自宗, 두문동 칠십이현) - 하연(河演)
진주 하연(河演) ♡ 성주 이존성(李存性, 1355-1388)의 딸 - 녀 ♡ 김맹렴
하연(河演, 1376-1453, 대제학, 영의정) - 『경상도지리지』
성주 이조년 - 이포(褒) - 이인복, 이인임 - 이사용(伺容) - 이존성(存性)
김철균(哲鈞, 典農寺主簿) ♡ 영평현주전주이씨(양녕대군의 3녀)
묘소는 동작구 상도동의 양녕대군(빙장)의 묘하, 후에 병천에 천봉(1968).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 ♡ 김한로(漢老)의 딸 - 녀 ♡ 안동 김철균
양녕의 묘소는 동작구 상도동으로 사위 김철균(후에 병천 천봉) 묘상이다.
김수형(壽亨) ♡ 안동권씨(권람의 女)- 언묵(彦黙) - 석(錫), 녀 ♡ 이문건
권람 - 女 ♡ 남이, 女 ♡ 김수형(양녕대군의 외손), 女 ♡ 신수근
남이(태종의 외손)와 신수근(임영대군 외손, 연산 처남, 중종 빙장)의 동서
김언묵 - 녀 ♡ 성주 이문건, 김석(錫) - 충갑, 효갑, 우갑, 제갑, 인갑
이문건 - 최초의 한글 묘비문(한글영비)을 짓고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의 저자로 괴산 화암서원 배향.
김석, 김제갑, 김시민(충갑의 자)은 증영의정.
김충갑(1515-1575, 안악군수, 상락군) - 호는 구암,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서청주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누차 요승보우를 벌할 것을 상소한 바 있으며 저서로 『구암집(龜巖集)』이 전한다. 구암(龜巖)은 지금 병천에 있다.
충갑(상락군) - 시민(상락부원군) - 치(안흥군) - 득신(안풍군) - 천주(화은군) - 가교(동은군)는 6대 봉군의 가계.
김제갑(1525-1592, 광주목사, 대사간, 증영의정, 시 文肅) - 1592년 조일전쟁 시 원주목사로 영원산성에서 항전하다 성이 함락되자 부인 이씨와 아들 시백과 함께 순사하였다. 선조가 "일우고성만고삼강(一隅孤城萬古三綱)" 이라 친히 써서 정문의 문미(門楣)에 달게 하였으며 문집으로 『의재유고』가 있다. 원주 충렬사(忠烈祠)와 괴산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김시민(時敏, 1554-1592, 증領議政, 上洛府院君, 시 忠武) - 천안 목천(木川) 출생, 무과, 진주판관, 진주목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진주대첩 후에 성을 순시하다가 시체 속에 숨어있던 왜병이 쏜 총탄을 이마에 맞아 나무못으로 탄환을 제거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며칠 후 39세의 일기로 절명하였다. 괴산 충민사(忠愍祠)와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제향. 진주성 내 동상이 있으며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공신교서(보물 제1476호)를 2006년 온 국민의 성금을 모아 환수하였고 현재 고향 천안의 충무공김시민기념사업회에서 현양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진주대첩(1592년 10월) - 진주성에서 목사 김시민이 3,800여 명의 군민을 이끌며 7일간에 걸쳐 3만여 명의 왜군을 격퇴한 전쟁으로 행주대첩, 한산도 대첩과 함께 조일전쟁(임진왜란) 3대첩이라 불린다. 이 전쟁의 승리로 호남으로 통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했던 왜군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2차 진주성 전투(1593년 6월) - 1592년 진주성에서 참패한 왜군은 이듬해 여름 10만여 명을 이끌고 다시 와서 진주성을 초토화시킨다. 이때 경상우병사 최경회, 목사 서예원, 창의사 김천일 등의 지도부는 물론 민관군 모두가 남강에 투신하거나 전사하였다. 목사 서예원의 수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에게 전해지는데 일본에서는 서예원의 수급을 두려움과 보복의 대상인 김시민 목쿠소(목사의 使는 당시 아래아 발음으로 ‘소’)의 수급으로 인식했다고 하니 그때까지도 김시민의 전사는 물론 목사의 교체도 인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일본에서 유성룡 저 『징비록』을 보고 나중에 알았다고 함.
일본에서의 모쿠소(牧使) - 일본의 사료기록에 의하면, 조일전쟁의 패배는 오직 진주성 한 곳뿐이었다고 표기하고 있으니 모쿠소는 당시 풍신수길에게 치욕을 안겨준 유일한 김시민 목사(목쿠소)를 지칭하는 대명사다.
목쿠소 - 목소(목사의 고어 발음표기)의 일본식 발음이다. 한글의 아래아 용례로 ‘ㅎ.ㄴ저옵서예’를 지금도 제주 방언은 ‘혼저옵서예 초자와줭 고맙수다! - 어서 오십시오!,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따위로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실제 발음도 그렇게 한다. ‘ㅎ.ㄴ’은 혼으로 ‘찾아’는 ‘초자’로 발음하니 아직 남아있는 아래아의 흔적이다.
2010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이름 명명 컴퍼스(compass)-곤파스(일본발음)
주논개(朱論介) -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자 몸단장을 하고 촉석루 아래 남강의 벼랑에서 왜장 毛谷村六助를 유인해 끌어안고 투신하였다. 유몽인 저『어우야담』에서.
공(최경회)의 부실(副室)은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에서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의암이라 한다.
해주최씨 문중기록인『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에 있다.
남편을 따라 가녀린 몸으로 적장을 끌어안고 순절한 여인을 의기(義妓)라 했고 스무 살의 나이로 남편의 앙갚음을 하고 떨어져 죽은 바위에 훗날 정대융이 ‘義巖(의암)’이라는 글씨를 새겨 넋을 기려 위로했다.
꽃이 스러진 자리에 300년 후 원흉들의 후손이 다시 찾아와 어지러웠다.
김시양(1581-1643, 청백리, 시 忠翼) ♡ 정경부인 경주이씨(李大遂의 녀)
이제현 - 이달존 - 덕림 - 신 - 계번 - 윤인 - 공린 - 원 - 발 - 경윤 - 이대수(李大遂, 금산군수) - 녀 ♡ 안동 김시양
김시양(時讓, 판중추부사) - 인갑의 아들이다. 저서로 『유고(忠翼公荷潭先生遺稿)』- 부계기문(涪溪紀聞), 자해필담(紫海筆談), 파적록(破寂錄), 소차(疏箚), 시(詩), 임자일기(壬子日記), 유사(遺事), 신도비명(神道碑銘) 외 수록, 친필 유고인 『하담잡기(荷潭雜記)』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회령 향사에 제향.
이제현 - 녀 ♡ 박동생(東生) - 녀 ♡ 김익달
김철균 ♡ 양녕대군의 3녀 - 수형 - 언묵 - 석(錫) - 인갑(仁甲) - 시양
김시양은 저서를 통해 처가와 선대조의 혼맥을 살폈으며 종(4촌)형인 김시민의 성품과 행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가까운 5대조의 빙장이 되는 양녕대군을 평하는 논평에서는 가계와 관계를 밝히지 않고 다만 세자 양녕의 부자간의 갈등과 함께 자위로 행한 세자양위에 대한 처신과 됨됨이만 서술하였는데 이는, 당대 지식인으로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왕조시대에 왕실의 인물을 평하여 기술한 사례가 이와 같으니 자해필담(紫海筆談) 속, 양녕대군을 평가한 인물평이 지금도 사학의 사전에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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