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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장계』와 『심양일기』- 세자시강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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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0-07-10 15:46 조회2,01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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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장계』 『심양일기』- 세자시강원 지음

 위 두 기록물은 병자호란 후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하던 중에 소현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어 쓴 명청교체기 조청간 이루어진 외교기록물로서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규장각>에 소장되어 철저하게 대외유출을 금지시킨 비밀문서로 유명하다. 일기와 장계에서 당시 중앙의 내직과 함께 심양을 오가는 길목인 북계의 지역 수령과 보직의 이동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다.

『심양장계』는 승정원으로 보내 인조가 볼 수 있도록 한 보고서 성격을 띤 장계로 1637[정축, 인조15]년 2월부터 1643[계미, 인조21]년 12월 15일에 올린 마지막 장계를 끝으로 대략 7년 동안의 기록이다.

『심양일기』는 간략한 일기체 형식으로 1637[정축, 인조15]년 1월 30일부터 시작해 1644[갑신, 인조22]까지 8월 18일까지 이어지는 세자일행의 하루하루를 요약 정리한 약 8년간의 기록이다. 하지만, 아직 후미 2년의 기록은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같은 내용의 『심양장계』와 『심양일기』의 기술상의 차이(예)

『심양일기』1637(정축)년 2월 23일(음)

二十三日 癸巳 夜大雪

世子 --- 中略 ---

海州牧使金素 來進米饌及行資若干物

2월 23일 밤에 큰 눈

세자 --- 중략 ---

해주목사 김소(金素)가 와서 쌀과 반찬 및 노자 약간을 바치다.

 

『심양일기』1637(정축)년 2월 25일(음)

二十五日 乙未 晴

世子留草丘 禁軍奉信 以大朝問安事 持狀啓上京 監司從事官鄭時望

海州牧使金素還去 令鄭時望領避亂百餘人入接于長壽山城使之賑給

以淸人搶掠不已故也 開城留守韓仁及送軍官起居 進若干行資

2월 25일 맑음

세자 초구에 머무시다. 금군 엄봉신이 대조(인조)에게 문안하는 일로 장계를 가지고 상경하다. 황해감사의 종사관 정시망과 해주목사 김소가 돌아가다. 정시망으로 하여금 피란민 백여 명을 거느리고 장수산성으로 들어가 규휼하게 하니 청인들의 약탈이 심하기 때문이다. 개성유수 한인급이 군관을 보내어 문안하고 약간의 노자를 바치다.

 

『심양장계』1637(정축)년 2월 25일

[장계의 원문이 없어 미확인]

봉산 초부에서

여행 중의 양식과 인질문제

중략 ---

장연현감 정사명(鄭嗣明)이 부마차사로 왔기에 일행 중에 머물러두어 인부와 말의 일을 맡아보게 했으며, 겸보덕 이명웅은 먼저 재령 장수산성으로 가서 쌀과 콩, 잡물 등을 마련해놓고 감사 종사관 정시망과 해주목사 김소 등을 시켜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하 생략----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끌려갈 때 함께 동행한 감사공(휘 소)과 7년동안 두 분을 호위한 안주공(휘 번. 감사공의 제)의 이야기가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군요. 빨리 봐야겠습니다. 책 소개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