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학공파 수도권 종회 병천 고유제 후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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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10-07-06 13:29 조회2,084회 댓글0건본문
가전리 내의 200세 느티나무 보호수
보호수 안내판
창규 원로님
화수록
고서
서가 모습
서가
백계세고 표지
백계세고 내부 1p
백계세고 마지막장
소파 위에 놓인 내외분의 사진을 넣은 방석
아주머니 붓글씨
창규아저씨 집 앞 464번지 일대에는 충렬사가 공터로 남아 있다. 이 충렬사는 1824년(순조24)에 창건되어 4위 선조님(구암공 충갑, 충무공 시민, 죽계공 계종, 안풍군 득신)을 봉안하고 있었으나 고종때 강제 훼철되었다. 터는 현재 병천종중명에서 매입했다고 하는데 앞으로 복원해야 하리라.
충렬사지
이어 동네 뒤 학암묘원으로 갔다. 묘원 상단으로 올라가 주부공(휘 哲鈞) 묘소를 참배하고 구 묘비석의 휘 ‘鈞’자에 金변이 정(鉦)으로 지운 흔적을 확인했다. 선조의 이름이 鈞이라 피휘(避諱)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주부공은 양녕대군의 셋째 사위이신데 묘소는 최초 서울 상도동의 양령대군 집성촌에 있었다가 1968년 아드님 승지공(휘 수형)의 묘소와 딸린 위토 800평을 이곳 가전리 야산으로 이안했다가 몇 년 전, 이곳으로 천봉하였다. 이때 도사공(휘 彦弘)과 정언공(휘 익)의 묘소는 상도동에서 산청으로 이안했었다. 바로 옆의 승지공(휘 壽亨)께도 참배하고 그 아래에 있는 시정공(휘 絪) 묘소와 147위를 모신 학암 묘원을 참배한 후 충무공 생가를 답사했다.
주부공(휘 哲鈞), 승지공(휘 壽亨) 묘소
두분 묘소
주부공 신 묘비
주부공 구묘비(전면)
주부공 구묘비(후면)
주부공 신묘비
승지공 신묘비
승지공 신묘비 측 후면
승지공 구묘비(전면)
승지공 구묘비(후면)
문관석
범식님, 항용님
범식님, 태준님
시정공(휘 絪) 묘소
학암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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