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백호의 해 설이라고 밤새 달려 고향으로 갔습니다-천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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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10-03-10 06:44 조회2,572회 댓글3건본문
경인년 백호의 해 설이라고 밤새 달려 고향으로 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서있는 비석입니다. '유학 연원이 깊은 마을''선비정신이 전해오는 마을''항일의병에 앞장선 마을'이라고 쓰여 있네요.
이 비는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된 을미사변 이듬해 1896년 병신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병신창의기적비'입니다.
우리 문중에서 운산 김상종 할아버지가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약 3개월간 유격전으로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나중에 정부로부터 독립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지요.
새벽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부치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 세상이 서설로 하얗습니다. 고향집 옥상에서 바라본 만취당과 종택의 전경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내가 다녔던 점곡중학교였는데 지금은 폐교가 되었습니다. 당시 남녀공학으로 전교생이 360명정도였는데 천하애가 16회졸업생으로서 총학생회장에 직선으로 당선되어 역임한 바 있습니다. 졸업식때 답사도 했구여.
사촌마을 기념관입니다. 1392년 천하애의 21대조께서 입향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600년이 훨 넘도록 세거해온 (구)안동김씨 집성촌이랍니다.
돌담옆 쪽대문 지붕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네여~
여기는 집 바로 뒤에 있는 점곡초등학교입니다. 1920년 개교하여 천하애가 44회 졸업생인데 당시 우리 면에 학교 두 개를 분교시키고도 전교생 1,141명중 전교어린이회장과 졸업식때 답사는 천하애가 했읍죠 ㅎㅎ. 콩나물 시루처럼 한 반에 70명이 넘게 편성되고 심지어 오후반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38명이라나 어쩐다나. 미국으 원조품ㅇ인 우유가루와 강냉이가루 타먹었던 전후 베이비세대의 원조격인 양띠들도 이젠 환갑이 그리 멀지 않았구려~
종가에서 일가 어르신들에 대한 합동세배를 드릴려고 여러분들이 종택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종가 사랑에 모이신 문중 어르신들입니다. 한 가운데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분이 저에게 디 엔 에이 유전자를 물려주신 83세의 아버님이십니다.
마을앞 덤(단애 절벽)에 빙벽이 생겼습니다.
이 미천강 일대가 천하애 어린시절의 영토였습니다. 멱감고, 고기잡고, 소 먹이고, 콩싸리며 밀싸리하고, 감자 삶아먹고,책 읽고 등등
내 작품 배경의 안태고향입니다.
멀리 대구에서 빙벽타는 동호인들이 와서 몇번이나 빙벽을 오르내리며 즐기고 있네요. 이 얼음벽은 완전 수직으로 높이가 45미터정도 된답니다.
부근의 도끼바쏘에 있는 바위인데 우리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공알바위라고 부르는 걸 들었답니다.ㅋㅋ
투망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아재와 형님과 셋이서 냇가로 나갔는데 물고기들이 전부 얼음장 밑으로 들어가 있는 바람에 매운탕은 결국 포기하였습니다..
아재네 집으로 갔습니다. 입식한 안동 한우 랍니다. 이제 중소가 거의 다 되어 그저 유순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죽을 끓이는 말 못하는 아재. 눈빛이 소처럼 선해 보이지요?
내 시집 '개코나 말코나'에 실린 작품 '주짜빠'의 실제 주인공이랍니다.
댓글목록
솔내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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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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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어릴쩍 생각나는 그런 글과 ㅣ사진이었네요.
천하애는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지요? 정중씨 호인다요. 아니면 진중씨?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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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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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天河愛-진중兄 예호 리플 감사드립니다
김남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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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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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고향의 맛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었읍니다. 내가 년전에 만취당과 종택 그리고 기념관을 둘러보고 자랑스럽기도하고 흐믓하기도 하면서 한편 자랑스러운 느낌을 갖고 돌아왔읍니다만 새삼 우리 훌륭한 선조님들의 옛 모습을 감명깊게 되세길수 있는 기회가 되여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활동하여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