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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위 자료-충렬공 묘소 수호사 대담 녹취록(4)-안동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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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9-04-20 13:12 조회2,0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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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김재교) : 그르이 20명에서 40명 사이, 재실이 그때 짓는 게, 여기 내용 보니까, 재실은 ‘1940년 이전에는 어떤 형태로 있었는가’ 이런 된 거 보니까, 40년 정도에 재실을 지었는 모양이죠. 그전에는 뭐 어떻게 있었는동


김광득 : 40년 전에....그 전에는...


김성식 : 움막 형태로 있었겠지.


사회자(김재교) : 아마도 음수재를 1940년도에 짓는 모양이시더만.


김성식 : 그걸 잘 모르겠어.


사회자(김재교) : 그르이 재실 중건할 때는 지금 계신 분 중에는 다녀오신 분이 안 계시는 모양이니더. 그때 할배 그때 뭐 1940년도에 재실 중건했다고, 그전에 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지금 70년 전이니까 모르시죠. 아실 만한 분이 없을니껴?


김동수 : 40년대 역사를 별로 알기가.


김광득 : 다 돌아 가셨지. 지금 이집 형님도 제일 기억이 좋을 껜데, 돌아가셔가지고. 우리뿐만 아니고 저기 동산 김씨에서도 저 집 짓는 거 알지 싶은데. 동산김씨에서 줘가지고 짓는 거그든.


사회자(김재교) : 말하자면은 그전에 ‘어떠 어떠 했더라’. 뭐 저가 말씀하는 아버지한테 들은 말씀처럼 그른 얘기라도 들으셨는 게 있으면은 말씀하시면 여기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 이래 나왔는데요. 1624년경에 양진당 휘 상린께서 위토를 마련하고 우리 문중 소산사촌에서 별도로 출자하여 위토를 마련한 것이 있는가, 그이 인제 1920년경에 위토 마련 했는 게 여기 해당이 되는 거죠. 1624년에 위토를 마련 했는 걸로 돼 있네요. 당호가 양진당이씨더.


김광득 : 양진당이면 사촌아니라.


사회자(김재교) : 그때 위토를 마련했다고 돼 있는 거 보니까, 1624년에 맞

        으니까 아까 150년..


김광득 : 1624년에 위토 마련했으면 우리 할아버지는 그면 잃지도 안했다는 그거야.


사회자(김재교) : 아니죠 그건 아니죠. 찾기를 1535년에 찾았다니까 그 이전에 잃었었는 거죠. 그니까 150년 얘기가 조금 더, (얼마 안 된다는 이 말이야 한 100년 밖에 안 된다..) 실지로 그렇다 그래도, 150년 까지는 안되고(한 80년까지는 여..)


김광득 : 이 기록에 그래 나오잖아. 지금 1624년에 위토를 샀으면은, 1535년이면 90년 딱 실종된거야. 딱 90년이야 그면. 위토 그때 샀는 근거있으면 그게 맞네. 묘 없는데 위토 살 리가 없잖아요. 그러면 맞네 그래밖에 안되네.


사회자(김재교) : 그 외에 들으신 말씀이나 일화 같은 건......


김홍식 : 그카이 뭐 10년~.........


사회자(김재교) : 아뇨 그 외에도 묘사, 시제나 이런 관계로 뭐 혹시..


김광득 : 이야기도 못 듣는 게 아 있어요. 요새같이 이래 가지고 예들 들어 가지고 주계, 사촌, 칠곡, 계곡, 시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요렇게라도 모였는 자리가 있으이, 이 이야기도 지금 오고 가는데 우리 웃대 어른들같으면 개곡있으면 소산하고는 소산화수회 아니면 일년 동안 만날 일이 없네. 서로가 교통도 교통이고 만내도 거저 회비 내고 앉아 이야기, 같은 할배지 웃대 조상에 대한 이야기 진지하게 나눌 시간이 없어. 아침 먹고 소산에 가면 열두시 돼. 점심 먹고 빨리 돌아와야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이. 이렇게 앉아 술 잡숫고 할 시간이 없었다고 보면 돼 사실은.


사회자(김재교) : 여기에는 적절치 않는 이야기씨더 그 이야기는 담에 하고..... 다음에는 회곡얘기.


사회자(김재교) : 회곡 충효 할매 단묘가 언제 할당이 됐는동


김진창 : 삼소재 문집에 없어?


김광득 : 대종회에서도 지금 감주가 아니오. 모지래면 대종회에서 돈은 주고, 남으면 받아 올라가고, 이런 식으로 하고, 모든 관리는 회곡동네에서 우리 집안에서 전부 다를 지금까지도 하고 있어.


사회자(김재교) : 그러면 1920년 이전에, 1920년에 먼저 위토를 마련했는데 그 이전에는 위토가 없었니껴.


김광득 : 모르지 그전에는 뭐.


사회자(김재교) :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삼소재할배 문집에 그때 위토마련 관계는 내용이 안 나왔니껴


김진창 : 재경씨가 좀 알 것 같은데.


김광득 : 다른 데 보다 회곡같으마 충렬공할아버지 유허비가 있었으니까, 우리가 생각에 위토가 없어도 하다 모해 터가 빈터가 있어도 그래도 사무 유지 안했겠나 싶은데.


사회자(김재교) : 혹시 거기에 회곡시제 지낼 때 홀기라던가 그런 거 보관했는 게 있니껴.


김광득 : 그 홀기는 전에부터 우리가 알기로는 충렬공할아버지 산소 지내고, 전에는 거 자고 이튿날 지내도 그 홀기를 그대로 가져왔어.


사회자(김재교) : 그대로 썼어요. 충렬공할배 홀기를 거 가져와서 같이 지냈다 그 말씀이죠. 그러니까 예전에 1970년도에 대종회로 넘어가기 전에는 시제도 충렬공 시제는 사촌하고 안동하고 같이 가서 하고, 그 충렬공할매 단소에 시제 지낼 때는 그 다음날 지낼 때는 사촌은 그냥 가시고. 


김광득 : 아니 그냥 가는 게 아니고 참여를 안했지


사회자(김재교) : 그러니까 집으로 그냥 돌아가시고 안동에서만 모여 가주고 했다 그 말씀이죠.


김광득 : 그때만 해도 왜 갔노 하면은

김성식 : 정일이 시월 초아르레날이고, 회곡은 시월 초열흘날인데, 하룻밤을 자고 다니기가 힘드니까, 대종회에 넘어간 뒤에도 시월 초아르레날이고 시월 초열흘날인데 합친 지가 얼마 안돼.


사회자(김재교) : 지금은 합쳤니껴


김광득 : 지금은 한 날인데 사촌에서 전에 뭐 기분 나빠 안 오고 이런 게 아니고, 지금도 왜 안 오노 하면은, 그 집에 보면은 여게 유사가 항상 하네이씩 들어오면, 초열흘날인데 우리 회곡에 향사를 올리면은 열하룻날이 도평의공파 그 집에 정일이래. 그래 가주고 항상 지금도 보마, 오마, 여 왔니가 장을 안동서 봐 가주고 나가더라고, 그런데다가 지금은 차가 있잖아, 자가용이 있는데 2~30년 전만해도 차가 없을 때 버스타고 유사가 들어오잖아. 회곡 오마, 회곡에 그때마해도 버스가 또 안 댕겼어요. 걸어 나가 가주고 안동서 장을 보기 때문에 시간적 그게 안 되가주고. 


김진창 : 회곡 사세요.


김광득 : 내가요? 나는 안동시내 있어요. 우리는 회곡에, 우리 14대조가요 언자 순자 내한테 16대 되잖아요. 그 아들 형제가, 함자 문자는 고운사에 가고요, 윤자 문자가 내 15대조인데, 고 밑에 두 형제를 낳았는데 현자가 회곡에 맏이고, 당자 할아버지가 1558년에, 우리 할아버지가 탄생해야주고, 1593년에 그때 임진란 때 나이가 아마 서른여덟 사십쯤 되니까 아마 개곡으로 연도가 없어요. 나기는 회곡에서 탄생한 거는 맞는데 아마 내 생각에 고때 개곡으로 안 왔나 싶어요.


사회자(김재교) : 예 다 끝나가는데요, 회곡 시제에는 문중에서 몇 명쯤 참여했니껴? 안 그러마 아까 그 저기는, 능동에는 20명 내지 40명이니까 여기는 반도 안 되겠네요


김동수 : 반도 잘 안돼


김광득 : 지금 하는 게 아니고 20년 전에 이야기는, 그때는 회곡에는 더 많았지. 왜 많노 하면은 회곡에는 본동네 산이가 그때마 해도 서른 다섯집이 살았어. 그러고 개곡에 한 갈랜데 개곡에 우리 입향조 아부지가 거게 있잖아. 학교 뒷산에 거게 있을 적에 내가 알기로 거게 해방 전에 우리 어른들이 회곡에 산소가면은 배타고 건너잖아 거게요. 거 단소에는 아마 생각에 고 옆에 동네하고 소산서 오고 하면 20명 이상이지.


사회자(김재교) : 사촌에서는 오히려 참여를 안 하셔도 그쪽에 향사 때문에 시제일 때문에 참여를 안 하셔도, 안동 인근에 문중에서 더 많이, 능동은 머니까 못 가셨던 분들도 가까우니까, 또 소산서도 새로 또 더 가시고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5~60명 정도도 될 수 있었다 그 말씀이죠, 그죠?


김동수 : 온 동네 한 집에 하내이 나와서 30명 나왔다는 말이래.


김동수 : 거게, 인제 회곡서도 가깝고, 소산서도 가깝고 와룡서도 가깝고, 더 많이 오지.


사회자(김재교) : 회곡 단묘 수호에 대해 가주고 뭐 혹시 일화라든가, 그런 기억이 나시는 게 있니껴. 요거는 저가 삼소재 문집보고 읽어 넣는동 그래 하께요.


김진창 : 재경씨 연락 함 해봐. 아시는 분한테 물어보고.


사회자(김재교) : 예. 그 다음에 회곡동 지역하고 관련된 이야기가 아까 거 상고산 하고산 관계. 하고산이 말하자면은 저가 생각했던 풍동초등학교 바로 맞은편, 그 산은 말하자면은 그게 상고산이고, 하고산은 거기서 한참 더 내려가 가주고 수동 인근에 가 가주고, 수동에도 동제 지내는 데 있거든요.


김진창 : 거게 하고산이라고 분명히 이름이 나와.


사회자(김재교) : 현장을 한 번 가 보면은 고산이라. 그러마 어차피 맥하고 안 이어진 동떨어진 산이니까 보면은 아거든요.


김석교 : 독산, 수동에는 서애선생 산소 있는 그 동네라.


김광득 : 하동에 가면은 풍산 넘어가는 고개가 있어 증시말고.


사회자(김재교) : 시우실 그고 있어요.


김광득 : 그거는 마래고, 그거 아니고, 저 아래 가마 하동인데, 하동에 가면은.


사회자(김재교) : 지금 현재 신안레미콘 지내 가주고.


김광득 : 지내 가주고 그 다음에 가면은 하동 풍산 넘어가는 고개 넘어가면 휙 돌아 들이 있는데, 고까지 가보마 독산 아닌 독산이 있어. 회곡에 앞산만한 산이 거게 하나 나타나, 거게 한번 가보라고.


사회자(김재교) : 아까, 거 저거 충렬공할배 유허비가 자연석에 기단이 있고, 거게 파가주고 비석을 세운 거 같다고 그때 말씀하셨는데, 아 고고는 안사연에서도 잘 알꺼에요.


김동수 : 그거는 안사연에서 옮겼어요.


김광득 : 그튼게 아니고, 밑에 판은 안사연에서 옮기고 비는 1635년인가 이래 옮겼다. 그이 옮길 때에 요새같이 포크레인 없고 하니까 판은 못 옮기고 비석만 빼 가주고 거북이 자대를 만들어 가주고 지금 현 위치에다 세웠더라고 그래. 세우고 나니까 그 좌대가 길에 있었는데 도로를 나면서 떠딩겨 뿌이께네 딴 데 갔다 놀 때가 없어 가주고, 지금 거 재원씨 밭 한 땍에 밭둑에다가 그냥 기대놨어. 기대 놔도 커 가주고 어떻게 움직이질 못해. 안사연에서 한 5년 전일 거야, 옮기는데 보니까 어에 생겼노 하면은, 밑에 판이 이래 가주고 뿌리가 밑에 큰 바위에다가 위만 파서 포크레인 한 대로 못 들어가. 적은 걸 불러가 갔는데, 한 대로 드니까 들도 뒷바퀴가 들려가 가지를 못해. 그래서 안동서 하나 더 불러 가주고 양 짜서 마주보고 한 놈 빠꾸 하고 이래 가주고 들어다 놨거든.


사회자(김재교) : 예 그러고 아까 저 유허비가 있니껴, 거게 왜 저 벽화하고 그 다음에 거.. 잡자기 기억이 안 나노 동량.


김광득 : 대들보.


사회자(김재교) : 상량기문 있는 거, 그거는 언제, 처음 보신 게 언제이껴? 혼자 보셨니껴, 같이 보셨니껴?


김광득 : 같이 봤지. 거 인제 돌아가신, 전부 고인이 다 됐어. 세용씨 거는 고인 안 됐나.


사회자(김재교) : 대종회는?


김광득 : 거도 내려와 가, 누가 왔노 하면은 윤회씨, 윤회씨가 내려와 가주고 상량문을 썼어.


사회자(김재교) : 혹시 고때 거 본래 있던 거를 다시 베껴 가주고.


김광득 : 그게 없어.


사회자(김재교) : 아 고게 아깝네.


김광득 : 내가 딴 건 다 사진 찍어 놨는데, 뜯는 것도 사진 찍고, 짓는 것도,  상량하는 것도, 내가 하면서부터 다 했는데, 기록문하고 벽화는 내가 사진을 못 찍어 놨어.


사회자(김재교) : 에이 정작 중요한 거는. (하하하 관중 웃음)


김광득 : 그때마해도 카메라 있니도 드물었고, (하하하) 지금도 저저 상락대 있잖아 칠십 몇만원 주고 진회아재가 짔어. 지놓길 어에 지놨노 하마, 브로크 가주고 앞으로 해 가주고 꼭 창고같이 지애 있었다고. 문 두 짝 있고, 첨에 그 사진이 있어요. 내가 보마 창고같이 짓는 걸 ‘보기 싫다’ 그래 가주고 돈을 170 얼매 들어 가주고 앞 문만 조문 맞닫이 문으로 해가주고, 요것도 몇 년 있었어. 그거 있다가 다시 뜯고, 상락대를 진거야. 고거는 연도하고 돈 든거하고 사진하고 고고는 내가 다  가 있어. 거 내 안사연에 줬어, 내 사진 찍은 게 많았는데 다줬어.


사회자(김재교) : 상량문 기문에 있는 거 베껴 놓은 게 고게.


김광득 : 이럴 줄 알았으마, 내가 사진 다 찍어놨지. 나도 무심코 포크레인 찍고, 뭐 다 재미로 찍어 놓은 게 이래 필요가 해뿌랬지. 내가 기록할라고 한 건 아니지.


사회자(김재교) : 일단은 녹음 마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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