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일본정벌 여몽연합군의 전함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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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8-12-09 21:11 조회2,847회 댓글3건본문
천관산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높이가 723m이로 천풍산(天風山)·지제산(支提山)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1998년10월 1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리산(智異山)·월출산(月出山)·내장산(內藏山)·내변산(內邊山)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하며,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천관녀(天官女)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산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삼림이 울창하고 천관사·보현사를 비롯해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지금은 석탑과 터만 남아 있습니다.
천관산이 헐벗게 된 것은 천관산이 바닷가에 닿은 내륙의 끝에 솟아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말기부터 우리나라 해안가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는 틈만 나면 관산으로 쳐들어와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고 아녀자들을 끌고 갔다.
천관산에 있던 89암자도 대부분 그 때 왜구의 손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바닷가가 멀리 내앉았지만 예전엔 지금의 관산읍까지 물길이 들어 왔으며 포구도 있었다.
왜적의 침입이 있을 때면 사람들은 천관산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진을 치고 싸웠다.
천관산은 기암괴석이 많은 지형으로 왜구에 맞서 싸우기에 유리했다.
"이 산이 헐벗게 된 것은 고려시대 말인디, 당시 몽고군이 쳐들어와 고려 조정이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원나라의 강요에 의해 일본 정벌에 동참을 했지 않은가.
그때 일본 정벌을 위해 타고 갈 배 900척을 이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다 했어.
그때 나무를 다 베어버려 산에 나무가 없어. 관산읍 죽청리에 가면 배 만들던 장소인 조선장(造船場) 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그 후 이 산이 천풍산으로 불리었던 것처럼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나무들이 잘려나간 후 제대로 크질 못했다 한다.
현지인 위황량님의 말이다.
2002년 2월 KBS 역사스페셜 방영 기록(일부발췌)
당시 몽고의 기록인 원사에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고려와 몽고 연합군은 일본 원정에서 뜻하지 않은 폭풍으로 큰 피해를 입는데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원나라의 전선들은 모두 돌풍에 깨졌으나 고려의 전함은 대부분 무사했다'
돌풍에도 끄덕 없었다는 고려의 전함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1994년 타케시마 해역의 고우자키항에서 출토된 소나무 닻이다
닻의 길이는 7미터에 이른다
하카다만 연안의 해저에서 인양된 닻돌은 모두 6개.
하코자키궁에도 닻돌 하나를 전시하고 있다. 이 닻돌엔 고려 몽고 연합 함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이 돌닻은 고려 전라도 장흥 천관산에서 난 돌로 만들었다"
이 닻돌은 전라남도 장흥 천관산의 돌과도 성분이 일치했다
-천관산 변산 기록 고려사 기록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조선장터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그당시 조선소였다고 한다
-향토 사학자 인터뷰 "그 이전에 조선 장터 혹은 장터로만 불리던 그 이전 몇집 안되던 촌락 배를 만들 때 그 함선을 갑작스럽게 만들려고 보니까 많은 사람들 조선공 장사치들이 모여 아주 큰 마을 형성 그때는 장터 조선 장터 라고 불렀다"
바다가 간척되기 전, 죽청 마을은 큰 선박이 드나들던 천혜의 조건을 갖춘 포구였다.
이 마을이 조선소였음을 증명하는 흔적은 또 있다
마을뒷산에는 오래된 무덤이 있다.
비석은 마모되어 그 무덤의 그 주인은 알 수 없다
무덤을 지키는 두 개의 문인석은 이 무덤의 . 주인이 상당한 관직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향토 학자 인터뷰 "마을 사람들이 구전으로 전해 오는 것을 보면 여기 조선장을 경영하고 있을 때 조선장에서 큰 역할을 하신분 높은 벼슬을 했던 분의 무덤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고려인들은 바로 이곳에서 군함을 만들며
일본 원정을 준비했던 것이다
고려군의 활약
일본 원정에서 고려군의 총사령관은 김방경 장군. 경북안동에 그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대몽항쟁의 영웅이었던 그는 몽고와 강화한후일본원정군을 이끄는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2만여명으로 이루어진 고려군을 이끌고 1274년 10월 지금의 마산인 합포를 떠난다. 연합군의 상륙지는 모두 세곳. 그중 김방경부대는 소하라 지역으로 상륙한다.
-고려사 김방경 기록 이곳에서 고려군의 활약을 알 수 있는 기록이있다
고려군의 전투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700백년전의 전투
강대국 몽고과 함께 였지만 고려군의 강한 전투력을 돋보이게 한 전쟁이었다.
고려는 아직까지 많은 부분 베일에 싸여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유물 유적은 물론 사료도 풍부하지 못한 편이라 고려를 알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고려 몽고 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담은 몽고습래회사라는 그림을 통해 고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고려의 뛰어난 조선술과 막강한 해상력을 발견했고 전쟁에서 맹활약을 한 고려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록 몽고의 강압에 의해서였습니다만 일본 원정에서 고려는 해상 왕국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몽고는 일본 정벌 전쟁 이후 고려의 힘을 꺽기 위해 바다를 통한 활동을 금지시킵니다.
그것은 어쩌면 찬란했던 해상 왕국 고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국제 사회에 확인시켜줬던 전쟁이었습니다
고려 몽고 연합함대 일본원정
주력은 고려군이었다.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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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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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장흥 천관산 및 죽청리의 일본정벌 관련 사진 자료는 내년 판서공 시향 길에 수집할 계획입니다.
솔내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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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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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년 역사스페셜 cd 구할 수 있나요?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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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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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예 대부님! cd는 다음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