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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충렬공 관련 소설, 전기, 열전, 평전, 단행본-<충렬공 김방경 고려를 지키고 안동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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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8-12-09 14:27 조회1,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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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위 자료]-다시 읽는 충렬공 관련 소설, 전기, 열전, 평전, 단행본

<충렬공 김방경 고려를 지키고 안동에 돌아오다>-배영동, 장동익, 남인국 저

2007년 1월 20일 초판, 민속원 펴냄

○책소개 - 고려시대 안동이 배출한 인물 중 역사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김방경은 충렬왕에 앞서 시호가 충렬로 고려조 문헌상으로는 유일하게 왕명에 의해 신도비가 세워진 인물이다. 이는 김방경의 충성스런 활약이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개국공신 조준은 김방경을 고려 최대의 안사공신(安社功臣)이라 평하였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고려 태조를 비롯한 4왕을 <숭의전>에 모실 적에 충렬공과 함께 고려에 공헌이 큰 16공신을 받들어 <배신청>에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 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정치적 철학, 사상 등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김방경의 눈부신 활동이 이후 안동지역 문화 형성에 기여한 영향과 역사적 의미를 연구하고 분석한 단행본 서적이다.

○차례 - 김방경의 생애와 행적, 원 간섭기 김방경 후예들의 활동과 역사적 의미, 안동 일원의 김방경 문중과 유적, 김방경이 안동문화에 미친 영향, 부록-<고려사 김방경 열전>, 묘지명, 이승휴의 <단모부>, 단모부에 대한 김방경의 답서

○김방경이 안동문화에 미친 영향의 일부 원문

 김방경은 안동에 소주를 전래토록 한 매개인물이라는 평가를 해도 괜찮다. 충렬왕이 안동 행궁에 30여일을 머문 것은 고려군 도원수 김방경이 있었기 때문이고, 원나라 병사가 안동을 경유하게 된 것은 충렬왕이 전황을 파악하고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동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안동지역의 소주는 김방경을 매개로 하여 충렬왕이 안동에 머무르던 1281년에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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