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백범과 망명지의 세 여인]③처녀 뱃사공 주아이빠오(朱愛寶)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8-08-18 15:43 조회2,501회 댓글0건

본문

[백범과 망명지의 세 여인]③처녀 뱃사공 주아이빠오(朱愛寶)
쿠키뉴스  기사전송 2008-08-13 17:08 
h080813ship.jpg
[쿠키 문화]‘2008 대학생 동북아대장정’은 상하이에서 지아싱(嘉興)으로 이어졌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은 김구가 지아싱으로 탈출한 1933년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상하이를 탈출해 지아싱에 머물던 김구는 혼자 산책하러 나갔다가 지아싱 동문에서 군관의 검문에 걸려 신분이 탄로 나 중국군 보안대로 송치되었다. 다행히 상하이 법과 대학장 추푸청의 주선으로 보석 되었지만 김구의 안전엔 적신호가 켜졌다.

이름을 장쩐치우(張震球)로 바꾸고 광저우 사람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으로는 불안했다. 추푸청은 김구에게 여자와 짝을 이뤄 부부로 위장하자고 제안한 뒤 평소 안면이 있던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朱愛寶)를 소개했다. 쉰 여덟 살에 만난 곱디고운 스물한 살의 처녀였다.

주아이바오는 김구를 태우고 호반의 도시인 지아싱의 뱃길을 따라 노를 저으며 부부처럼 위장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이 검은 얼굴의 남자가 다시는 첫날 본 것처럼 그렇게 못생기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추 어르신과 같이 완전히 마음속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중국 작가 샤롄성의 소설 ‘선월’ 중)

어느 날 김구가 물었다. “내가 왜 선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나?” 주아이바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제가 이제는 바깥사람이 아니라고 하시며 모두 말씀해주셨어요. 평생 선생님을 위해 노를 젓겠어요.”

지난 7일 지아싱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항저우에서 만나본 ‘선월’의 작가 샤롄성(60)은 “주아이바오는 쫓기는 김구에게 운하위에 움직이는 집 한 채를 마련해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주아이바오는 평생토록 김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녀에게 김구는 그저 좋은 아저씨,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상상해 보세요. 스물한 살 중국 처녀가 선뜻 위장부부에 응해준 것은 그녀의 마음이 그토록 순수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김구는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남문 밖의 호숫가에서 자고 내일은 북문 밖의 운하 옆에서 잤다. 나와 그녀는 부지불식간에 부부와 같은 생활도 했다. 어쩌다 중국 경찰이 찾아오면 주아이바오가 응대했다.”

김구는 지아싱을 떠나 남경에서 피신생활을 할 때도 주아이바오를 데려갔다. 회청교 근처에 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김구의 젖은 솜바지와 홑저고리를 벗기고 뜨거운 물수건을 비틀어 짜서 그의 등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아이바오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녀가 머리를 돌리자 너무나 슬픈 등이 눈에 들어왔다. 흉터로 가득 찬 등! 채찍으로 맞은 자국, 인두로 지진 자국, 칼로 베인 자국, 밧줄로 졸라 묶은 자국 등을 알아볼 수 있었다.”(‘선월’에서)

본가 식구를 돌봐야 했던 주아이바오에게는 매달 15원을 지급했다. 김구는 주아이바오와 생활하는 동안에도 군관양성을 위해 애를 썼지만 난징도 더이상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회청교에 살 때였다. 갑작스런 기관포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천둥소리가 진동하며 내가 누었던 방의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뒷방에서 자는 아이바오를 불러보니 죽지는 않았다. 뒤쪽 여러 방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흙먼지를 헤치고 나오는데, 뒷벽이 무너지고 시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백범일지’)

난징이 점점 더 위험해지자 중국 정부는 충칭을 임시수도로 정해 각 기관을 옮기기 시작했고 김구는 주아이바오를 지아싱으로 돌려보낸 뒤 난징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5년 동안의 위장 부부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백범이 떠난 후 아이바오의 가슴에는 날마다 그리움의 달이 떴을 것이다. 지아싱의 기나긴 운하 위에 달이 뜨면 그녀는 물 위에 일기를 쓰듯 노를 젓고 또 저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배를 흔들며 찬란하게 빛나는 물결을 바라보다가 그 빛나는 물 비늘이 마치 자기가 쓴 글자라고 느껴졌다. 노를 가지고 물 위에 쓴 글자.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하나하나씩 써내려간 날들, 하나하나씩 써내려간 사건들, 하나하나씩 써내려간 정경들은 마치 그 빛나는 물빛처럼 달이 없는 밤에도 잘 보였다.”(‘선월’에서)

샤롄성은 그러나 소설 속 김구와 주아이바오에 대한 묘사는 단지 상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곽낙원 여사가 주아이바오를 만나 자신이 끼고 있던 팔찌를 정표로 건네주는 장면 등이 그것.

“‘선월’의 문장이나 묘사에 허구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김구를 중심으로 한 인물이나 사건의 전개는 진실하다고 봅니다. 기본 역사를 건드리지 않고 1930년대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야 했지요. 새로운 창작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것이고 소설가는 역사에 옷을 입히는 것이죠.”

작가는 “김구 선생을 소설로 쓴 것은 1999년이었다”며 “아이바오를 수소문했지만 이미 198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80년대에 제가 김구 선생의 지아싱 시절을 소설로 썼더라면 아이바오를 직접 만나 당시의 정황을 물어봤을 텐데…. 알고 보니 아이바오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안면이 있던 분이었어요. 못내 아쉽군요.”

샤롄성이 소설 속에서 아이바오와 곽낙원 여사와의 만남을 그려넣었지만 그 장면이 백범일지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완전한 허구만은 아닌 것이다. 난징 회청교 근처에서 아이바오와 동거할 때 곽낙원 여사는 난징 마루지에(馬路街)에 살고 있었다. 부부처럼 생활할 바에야 차라리 재혼을 해 어린 아내가 됐으면 하는 감정이 김구의 마음속에 물결처럼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하지만 샤롄성은 이 대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그 사람이 기관차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관차 같은 사람. 나는 내가 재난을 복으로 바꾸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다.”(‘선월’에서)

물 위를 스쳐가는 나룻배로서의 김구. 나룻배에는 가야 할 다른 항구가 있었다. 나라가 독립되는 그날까지 나아가야 하는 나룻배였다. 그러나 김구는 행운아였다. 망명지 곳곳에 죽음의 손아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처럼 지고지순한 희생이 있었다.

선한 자는 스스로 선함을 돕는 것일까. “두고두고 후회되는 것은 그때 그녀에게 여비로 겨우 100위안을 준 일이다. 그녀는 근 5년 동안 나를 광저우 사람인 줄 알고 섬겨왔고 나를 보살핀 공로가 적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노자 외에 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것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백범일지’)

늙어서도 노를 저으며 살았다는 주아이바오. 그녀가 노를 가지고 물 위에 쓴 글자들은 오늘도 지아싱과 난징의 운하에서 태양에 반짝이며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아싱·난징(중국)=글·사진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