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공 휘 사묵 공의 자료 수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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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08-05-26 10:06 조회1,612회 댓글2건본문
관찰사공 휘 사묵의 자료를 얻기위해 주말을 이용해 시골을 다녀 왔습니다.
시골에 도착하여 어머님을 잠깐 뵙고 아버님 산소에 들러 고하고 바로 논동마을의 중터말(속칭 방아다리골) 에 위치한 관찰사공의 묘지로 갔습니다.
관찰사공의 묘지는 휘 서하 공의 바로 아래에 잇대어 있으며 동네가 한자락에 내려다 뵈이는 양지바른 곳 이었습니다.
이러저런 형태로 살펴보고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근자에 세운 묘비를 살펴보니 고종 대 원성의 상징이었던 이용익 일파를 가두었다가 곤욕을 치루시고 벼슬을 내어놓고 낙향한 후 다시 고종
임금에게 불려올라간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비석의 건립기에 직계후손들의 이름은 적고 방손들의 이름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태균아저씨가 몇 번이고 묘지명을 좀 지어달라 부탁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갑니다.
다음날 관찰사공의 후손 족숙부 태균 아저씨를 일요일 오후에 엄정 목계 휴게소에서 만나 인접 앙성면 능골로 이동하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휘 양묵공의 후손인 태홍 아저씨(태균아저씨와는 육촌지간)가 저희를 반갑게 맞아 들이시며 다과를 내어 주셨습니다.
인사를 여쭙고 나니 젊은 사람이 종사에 관심을 가져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송구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양묵 공은 관찰사공의 형제 이십니다. 관찰사공이 후사를 잇기위해 입적은 하셨지만 우애가 아주 깊으셔서
그 어려운 살림에도 꼭 먼저 "큰집"을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태홍 아저씨가 소장하고 계시는 전신 사진을 내어 주셨읍니다.
사진은 3번 접는 절첩본 형태이며 검은색 표지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의 후면에 K.Iwata.keijo 라고 쓰여 있는것을 보니 경성의 이와타출신사진사의 사진관에서 찍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진 속의 관찰사공은 단아하시고 꼿꼿한 모습이셨습니다.
체구는 적으셨던 것 같고 오만하게 보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품이 단정하시고, 지조가 있으신 풍모가 절로 드러났습니다.
그런 후 태균아저씨가 소장하고 계시는 관찰사공의 친필 가승을 내어주셨습니다.
자그마한 절첩본 형태이며 7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시조 김알지 공으로 부터 관찰사공까지 기재 되어 있고
글씨체는 행서로 정서하신 것이었습니다.
글씨는 너무도 잘쓰신 명필 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승에서 특이한 사항, 새로이 알게 된 몇가지 사항이 있었습니다.
특히 문정공 휘 질 의 손 휘 방 공이 통덕랑 이었다는 점, 언청 공이 족보의 기록대로 운봉현감만이 아니라 진도군수 이셨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통제사공 휘 적 공이 가승에는 가의대부로 적혀 있는 것은 묘비석의 가선대부와 달랐습니다. 품계는 같으나 용어가 달리 적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휘 감 공이 합천군수를 지내셨다는 사실 등은 제게 더 많은 과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태균아저씨가 소장하고 계시는 통제사공 휘 적 소계파의 가승을 보여주셔서 촬영을 했습니다.
두루마리 형태의 필사본이었고 족보의 내용을 요약한 것 이었습니다.
두서너시간 아저씨들과 관찰사공에 관한 일화등을 모으고 추후 새로이 건립할 묘비석의 내용에 추가할 것들을 확인하다보니 저녁 입니다.
식사를 하고가라는 말씀을 뒤로 하고 대전으로 내달려오니 어둠이 도시를 덥고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광명성으로 선조님들이 자리하시길,
그리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그 빛을 따르게 하시기를 간구하면서 잠자리에 듭니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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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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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 활동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족보에 없는 새로운 고증 자료의 발굴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님의 수고 덕에 많은 귀한 내용을 앉아서 편히 보았습니다. 님의 노고는 반드시 영광과 보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홈 익원공파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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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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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경북 안동시 남후면 개곡동 359번지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