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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사 07년 추향과 16년의 회고(5) : 07년 시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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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3-23 15:17 조회1,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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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해년(2007년) 시제 준비

 여름이 지나자 서서히 금년 시제를 준비해야 했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시제와 정기총회 행사를 원만히 치루려면 2달 전인 8-9월 경 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일할 아주머니들을 구하는 일이 제일의 과제였다. 시제 2일전에 1명, 1일전과 당일엔 각각 3명이 필요했다. 모친께서는 2년 전부터 몸이 편찮으셔서 17년간의 괴산생활을 접고 서울로 오시어 병원에 다니고 계신다. 할 수 없이 모든 제수 장만을 아주머니들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늦가을에 일할 아주머니들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괴산의 가을 특산물인 절임배추공장에 모든 아주머니들이 동원되기 때문이었다.

 지난 9월 추석 때, 괴산에 내려가 동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부탁을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그래서 이번엔 전문 제수 맞춤집에 위탁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김장 절기가 늦어지자 절임배추 공장 일정도 뒤로 밀려 그동안 써왔던 아주머니들을 다시 쓸 수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어쩔 수 없이 전문 맞춤집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20일 전이 되자 문중회 전 종친들에게 시제를 알리는 제첩(祭牒)을 우편엽서로 보냈다. 시제일을 <매년 음력 9월 마지막 일요일>로 정하다 보니 해마다 시제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또 이를 상기시키기 위해 매년 전 종친들에게 통보해야 했다. 약 200여 매의 우편엽서를 발송했다. 번거로운 일이나 꼼짝없는 총무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250여 매 쯤 되던 것이나 점점 줄어들었다. 빈약한 문중회 재정 형편이기에 총무에게는 급료도 없었다. 그러나 난 늘 행복했다.

 15일 전이다. 각종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정기총회 회의 서류는 약 20여 쪽으로 늘어났다. 2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문중 역사 학습 자료가 첨부되었기 때문이다. 또 지난 1992년부터 기록해 온 16년 동안의 문중사 일지도 확인 점검했다. 감사자료도 준비했다. 감사는 총회 전일 괴산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영수증 철도 정리했다. 위토를 경작하는 분들에게는 묘소 벌초 여부와 위토 도지비 납부 여부도 확인해야 했다.

 홀기와 축문도 다시한번 손질했다. 국한문 혼용식으로 현대화한 홀기는 제례의 간소화 방향에 따라 거의 매년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해 왔다. 특히 이 홀기는 A3 용지에 제작 코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축문도 같은 방법으로 준비하여 매년 바뀌는 간지(干支)와 헌관명만 색연필로 썼다가 지우고 재기록하는 편리성을 택했다.

 1주일 전이다. 괴산의 부친과 전화통화가 잦아졌다. 제수비 송금, 제수 준비 과정의 문제들, 아주머니 구하기, 예상 참석인원 등을 협의했다. 회장님과 자주 통화하며 각종의 과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주요 인사들에게는 전화로 참석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충익공파는 회장님이, 양덕공파는 내가 각 종친들에게 연락하기로 하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전화를 걸었다. 특히 내자(內子), 자녀들과 동반해 오시기를 간청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예(參詣) 인원이 자꾸만 줄어든다. 걱정이다. 숭조의식, 책임의식, 역사의식 등이 점점 아쉬워져 간다. 인문(人問)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며칠 전 상석대부는 40여 명이 이용할 만한 수량의 접이식 야외 식탁과 의자를 괴산 세덕사로 보냈다. 그동안 점심식사를 할 때 마다 재실 잔디밭 위에 비닐을 깔고 앉다보니 바닥 자리가 차가워 불편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용히 기증한 것이다. 참으로 감사했다.

 처는 안타깝게도 16년만에 처음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12월 발병하여 금년 1월 대수술을 받은 후유증 때문이다. 앞으로는 아무래도 무리한 일은 어려울 것 같다. 작은 형수님도 지난해 대수술을 받아 참석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부친께서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하셔야 했다. 고초가 많으시리라. 동반 내자분들이 적어 당일 작은 일을 도와줄 일손들이 부족할 것 같아 걱정이다. 우리 문중회의 중요한 당면 과제다. 회장단과 총무단 여러분들에게 전화하여 전일 괴산에 모여 각종 준비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다. 충익공파 규동부회장님과 부총무이신 상석대부님이 나와 함께 전일 만나 준비하기로 했다.

 2일 전이다. 서울에서 준비한 각종의 준비물들을 빠짐없이 챙겼다. 홀기, 축문, 도기록, 정기총회 서류, 통장, 감사서류, 영수증철, 카메라, 명찰, 문중회 일지, 문중회 주소록, 문중 세계표, 시제 제수 준비방법 및 설찬도, 봉행시 집사 행동 요령 자료 등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제기(祭器)도 몇 가지 더 샀다.

 1일 전이다. 직장의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곧 괴산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만추(晩秋)의 자연 경치를 즐기려는 단풍객들로 다소 정체되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내륙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산야는 온통 붉은 단풍들로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달리다가 괴산 IC를 빠져 나오며 상석대부에게 전화를 하니 이제 막 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나와 약 20분 가량 차이가 있었다. 오후 4시가 돼서야 괴산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3시간만이다. 괴산 시내의 한 모텔에 들러 방 하나를 예약했다. 오늘 오시는 분들의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또 대형 마트에 들려 소주 1박스를 샀다. 매달 뵐 때마다 1박스씩 아버님께 사 드리는 나의 기쁨이다. 그런데 1달이 지나고 나면 모두 없어지고 달랑 한 병만을 남겨 놓으신다. 갑자기 찾아 오는 손님을 위해서이리라. 85세이시지만 건강하신 아버님께 감사했다.

 몇 가지 시장을 보고 집에 도착하니 규동부회장님과 태진형님, 한용형이 와 있었다. 금새 상석대부님도 도착했다. 그리고 아주머니 3분이 작업하고 있었다. 곧 규동부회장님과 태진형님은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청주로 돌아가셨고, 아주머니들도 저녁식사를 짓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상석대부와 나와의 본격적인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당 안의 전 제수물들을 설찬도(設饌圖)에 따라 하나하나 점검하며 진설했다. 데우지 않는 제수는 오늘 모두 진설해야 했다. 각종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다식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 내일 아침 일찍 사와야 했다. 떡집에 맞춘 떡과 약식은 내일 아침 8시에 오기로 되어 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기다리던 태선 부총무는 몸이 좋지 않아 못 온다고 하며, 태호감사님도 내일 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상석대부와 함께 시내로 나가 포장마차에서 간단히 밤참을 하며 내일을 계획한 뒤 예약한 모텔에서 잠을 잤다. 내일 시제 봉행은 잘 이루어져야 할텐데---, 종친들은 많이 오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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