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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후기> 제51회 안사연 정기산행(대모산. 광평대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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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8-03-22 13:45 조회2,78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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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안사연 정기산행

일시 : 2008년 3월 9일
장소 : 대모산. 광평대군 묘역
참석 : 재구. 태영. 태우. 윤만. 영환. 항용. 행순. 발용.

◆ 대모산(大母山)

대모산은 해발 293m로써 산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칭했는데 조선초에 와서 태종의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잡자 어명으로 대모산(大母山) 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는 설과 여자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는 설도 있다. 구룡산과 더불어 일원동계곡 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는 산이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헌인릉이 있어 둘러볼 만한데 헌인릉이란 조선 3대 태종과 그 왕비의 능침인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그 왕비의 능침인 인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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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모산 개포동 쪽 등산로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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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부근. 좌측에 보이는 철망이 헌인릉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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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모산 정상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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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모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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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모산 정상에서 바라본 강남. 날씨가 맑은 날은 서울의 북쪽 지역까지 조망이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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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를 뒤로하고 하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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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서동 쪽 등산로 입구

◆ 광평대군 묘역

광평대군묘역에는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그의 부인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신씨(申氏)의 묘를 비롯하여 태조의 아들인 무안대군(撫安大君) 방번(芳蕃), 그리고 광평대군의 아들인 영순군(永順君)을 비롯한 종문 700여기의 묘소가 같이 있다. 또한 이 곳은 종가 재실(齋室)의 오랜 가옥이 있는 공동묘역으로서, 이 때문에 마을을 궁말[宮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묘역은 서울이나 근교에 현존하는 왕손의 묘역 중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이며, 분묘와 비석, 그리고 부속물들은 조선시대 분묘 내지 석비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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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평대군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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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평대군 재실 숭모재(崇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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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평대군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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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평대군 묘소

광평대군의 이름은 여(璵), 자는 환지(煥之), 호는 명성당(明誠堂)으로, 세종 7년(1425) 5월에 탄생하였다. 세종 14년(1432) 정월에 광평대군으로 봉해졌으며, 5년 후에는 세종의 명으로 후사가 없는 공순공[恭順公, 후의 장혜(章惠)] 방번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온 대군은 문장은 물론 활쏘기와 격구 또한 잘하고 음률과 산수에 밝아 특히 부왕의 총애를 받았다. 무안대군의 봉사손으로 입양된 후에는 안암동(사당말)에 양부의 사당을 짓고 그 후 7년간을 기거하였다. 동지중추부사 신자수(申自守)의 딸과 결혼하여 영순군 부(溥)를 두었으나 세종 26년(1444) 창진(瘡疹)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호(諡號)는 장의(章懿)로 장(章)은 경신고명(敬愼高明)을, 의(懿)는 온유현선(溫柔賢善)을 의미한다.
광평대군의 묘는 처음에 경기도 광주 서촌 학당리(현 강남구 삼성동 선릉 부근)에 있었는데 연산군 원년(1495) 3월 이곳이 성종의 왕릉인 선릉(宣陵) 터로 정해지면서 광수산(光秀山)의 지금 위치로 이장되었다.
광평대군과 부인 신씨의 묘소는 높은 언덕 위에 각각의 무덤으로 되어 있다. 장대석으로 단을 쌓은 위에 봉분이 놓여져 있고, 그 아래에 묘비와 낮은 받침돌을 둔 혼유석(魂遊石)이 갖춰져 있다. 하단에는 2기의 장명등(長明燈)과 우측에 신도비(神道碑), 그리고 또 한 단 아래 좌우로 문인석(文人石) 2구가 세워져 있다. 이와 같이 단을 쌓은 위에 봉분이 있는 양식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이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소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조선 초기 대군묘(大君墓)의 규모나 규범을 참고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도비는 명종 7년(1574)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심의겸(沈義謙)이 짓고, 이의건(李義健)이 썼다. 박렴(朴簾) 전(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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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평대군 신도비. 심의겸(沈義謙)이 짓고  이의건(李義健)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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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평대군 묘소 후경. 아파트 너머에 대모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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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순군 묘소.

영순군(永順君) 이보(李溥)[세종 26년(1444)∼성종 1년(1470)]는 세종의 다섯째아들인 광평대군 여(廣平大君 璵)의 아들로서 자는 준지(俊之), 호는 명신당(明新堂) 이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의었다. 세종이 이를 불쌍히 여겨 5세까지 세자와 같이 공부하도록 궁중에서 길렀으며, 8세가 되자 특별히 가덕대부(嘉德大夫)에 승서하고 영순군(永順君)에 봉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문무에 통달하니 세조도 세종의 유의(遺意)를 받들어 항상 좌우에 두고 모든 왕명의 출납을 일임하였다. 세조 12년(1466) 등준시(登俊試)에 5등으로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는 세조의 평정계획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훈되고, 현록대부(顯祿大夫) 자계에 올랐다.  세조 14년(1468) 2월 세조가 온양에서 베푼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미곡 50석을 하사받았다. 예종 1년(1469)에 일어난 남이(南怡)의 옥에 공을 세워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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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안대군 방번의 묘

이방번(李芳蕃)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이며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소생이다. 부인은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의 딸이다. 1392년 조선의 개창으로 무안군에 책봉되어 의흥친군위 절제사·의흥삼군부 좌군절제사를 지내며 태조를 보좌하였다. 처음에 세자로 책봉될 예정이었으나 배극렴(裴克廉)·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의 반대로 세자위가 이방석(李芳碩)에게 넘어갔고, 1398년 이방원(李芳遠)이 주동한 1차 왕자의 난 때 피살되었다. 1437년 세종의 배려로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與)를 후사로 정하였으며, 1680년 영춘추관사 김수항(金壽恒)의 상소로 무안대군에 추증되었다. 묘는 처음에 도진릉동(道津陵洞)에 있었다가 광주 학당리산으로 이장되었으며, 1474년 다시 광수산(光秀山 :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겨졌다. 시호는 장혜(章惠)이다.

[출처] (강남)무안대군 이방번(撫安大君 李芳蕃) 묘|작성자 개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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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군(錦山君) 이중휘(李重輝) 정경부인 안동김씨 묘

증 영의정 행 금산군수를 지낸 이중휘의 묘이다. 원비는 후안동김씨로 좌의정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양자 김광찬(金光燦)의 3녀이고, 계비는 선안동김씨로 안풍군(安豊君)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의 차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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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비의 양 측면에 원비와 계비를 나누어 음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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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문의 안풍군 음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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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성군 이중휘 묘갈 - 송시열이 짓고  김수항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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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군 이중휘 묘갈의 안풍군 음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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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천군 이정 신도비

남천군 이정. 광평대군의 장손이며 영순군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 12) 9세에 중의대부 남천군(남천군)의 봉작을 받았다. 1472년(성종 3) 승헌대부에 승계하고, 1485년(성종 16) 정희왕후의 수릉관이 되고 이어서 숭헌대부에 제수되고 1486년(성종 17) 가덕대부에 승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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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의 관람이 제한되는 곳이 많습니다. 광평대군묘역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원칙적으로 일반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더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됩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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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하남 대부님,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정겨운 나들이 잘 보았습니다.
개미실 대부님 왕릉 탐방이 곳곳에서 나타네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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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사진 찍어 올리기도 바쁜 일인데 이젠 후기까지 도맡아 쓰셨씁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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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참석 못한 아쉬움을 후기를 보는것으로 달래봅니다
사진과 적절한 설명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