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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설악산기(登雪嶽山記)14(끝)-백담사와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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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28 17:44 조회1,57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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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분을 걸어 백담사(百潭寺)에 닿았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北面) 용대2리에 있는 이 절을 나는 여러 번 다녀갔다. 조계종의 한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절의 내력을 보니 화재와 너무 많은 인연이 있었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한계령에 있다 하여 한계사(寒溪寺)라 했는데, 위치도 현재가 아닌 한계령 중턱 장수대 근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한계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석탑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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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년이 지나 그 불탄 자리에 다시 절을 중건했으나 이나마도 또 불타 버렸다. 그러다가 신라 원성왕 6년(790년) 이곳을 떠나 북쪽 30리 지점에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운흥사(雲興寺)로 바꾸었다. 그러나 약 200년 후인 고려 성종 3년(984년)에 변란이 일어나 없어졌다가 성종 6년(987년)에 옛터의 북쪽 6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짓고 심원사(深源寺)라 했다.

a1.jpg 이후 절은 수차례 불타 절터를 계속 바꾸고 이름도 바꾸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세종 20년에 지어 불렀으나 다시 심원사로 바뀌었다가 정조 7년에 다시 백담사(百潭寺)가 되었다.

 이렇듯 백담사는 많은 화재와 사연을 지닌 채 1천3백년을 존속해왔다. 근대로 들어와 1915년엔 1백60여칸의 백담사가 불타버리고, 4년후에 중건했으나 6.25 동란으로 또다시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찰이 계속 화재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므로 이름을 고쳐보려고 애를 쓰던 중 어느 날 주지스님의 꿈에 신령스러운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지금의 절까지 담(潭)을 세어 1백개가 되는 장소에 사찰을 건립하면 삼재(水,火,風)를 면하리라고 현몽하기에 현재의 위치에 건립했으며, 담(潭)자는 불의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하여 "백담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담사 사적기>에 실려 있는 전설 하나를 보자. 옛날 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란 절이 있었다. 그런데 주위 산에는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不淨)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매일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이에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는데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 있고 앞뒤로 폭포가 있는 산들이 이전과 너무나 달라 쩔쩔매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하늘로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지”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의 절구골과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은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전한다.

 근대에 이르러 만해 한용운선생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1988년부터 2년간 전두환 전대통령이 스스로 유배지처럼 칩거한 곳이기도 하다. 기이한 인연이다. 민족정신과 항일정신, 불심으로 충만한 도덕과 철학이 깊으신 만해선생께서 <님의침묵>을 탈고한 이곳에 오욕(汚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 받고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그 죄를 씻고자 시간을 달리하여 머문 것이다. 이처럼 정반대의 삶과 철학을 가진 두 사람이 약 70년이란 시간을 달리하여 한 공간에서 공존하였다니! 이것도 만해 선생이 자주 인용한 불교 철학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역설(逆說)인가!

 만해 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시비에 새겨진 만해선생의 시 <행인과 나룻배>를 읽고 감상한다. 그리고는 이별과 슬픔, 허무와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피워냈던 <님의 침묵>도 더듬거리며 암송해 본다.

 현재 백담사에는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우측으로는 만해 기념관이 있다.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백담사 앞을 지나며 법당에 들려볼까 했는데 6시에 버스가 끊어진다는 소식에 서둘러 셔틀버스를 탔다. 이어지는 백담계곡은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했다. 그리곤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간 걸레스님 중광(重光)선사의 '백담계곡' 시를 떠올렸다.

 

영감님은 뉘시오

저는 설악산 걸레올시다.

백담사 설악골에 연못이 백 개나 있는데

보름이 되면 하늘에서 백 개의 달들이

내려와 연못 속에서 재미있게 놀다 간다 하던데…

그러면,

재수가 좋을 때면 백 개의 달을 건져내는데

젠장 오늘은 단 한 개도 못 건져냈어요…

 

 불과 10분만에 용대리에 도착하니 어제 아침 도착했던 곳이다. 근처 적당한 곳에서 동동주와 파전으로 시장기를 면하고 하룻밤 떨어져 있던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힘은 들었지만 고대하던 설악산 등산을 무사히, 그리고 아주 즐겁게 마친 것에 감사했다. 서울로 오는 길은 기뻤다.

 저녁 9시, 서울에 도착하여 먹는 저녁식사는 달고 맛있었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온 세상 만물들과 함께 이 우주 공간에서 즐거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 산의 멋이여! 삶의 기쁨이여! (끝)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온전히 한달동안 14회를 이어가며 1박2일동안 설악의 비경과 유적을 섭렵한 기록
등설악산기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맛있게 읽었습니다.  부럽고 욕심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