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문온공)선조님의 동방(대과에 함께 합격하신분)-7-양이시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8-02-28 15:24 조회1,704회 댓글0건본문
양이시[楊以時]
보물 제725호
남원양씨종중문서(南原楊氏宗中文書)
전북 순창군 (국립전주박물관 보관)
고려 공민왕 4년(1355)부터 조선 선조 24년(1591)까지의 고문서 7매이다. 양이시가 고려 공민왕 4년(1355) 과거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합격증서인 홍패(1355)와 그의 아들 양수생 역시 우왕 2년(1376) 문과에 급제했음을 알리는 홍패 등 2건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 양이시는 공민왕 2년(1353)에 생원과에 장원 급제하고, 동왕 4년에 동진사(同進士)의 문과 제 2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때의 급제자 합격증은 조선조의 교지(敎旨)와 달리 왕명(王命)이라고 하였다. 이 왕명인「홍패(紅牌)」를 작성한 사람은 당시 중서성좌우사도사(中書省左右司都事)를 지낸 익산부원군 이공수(益山府院君 李公遂)와 보문각대제학동지춘추관사상호군 안보(寶文閣大提學同知春秋館事上護軍 安輔)에 의하여 작성되었다.
양이시는 집현전대제학지신사(集賢殿大提學知申事)의 직에 올랐는데, 덕행이 있고 시문에도 뛰어나 목은 이색(牧隱 李穡)도 그의 덕행과 문장을 찬양하였다고 한다.
홍패는 적색의 두꺼운 순한지에 묵필(墨筆)로 기록하였는데, 가로 34㎝, 세로 64㎝로 조선시대의 교지에 비하여 약간 규격이 작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홍패는 몇장(3매)안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척약재집에서
|
곡양지신사 동년우이시
世事眞堪笑。세사진감소
人生亦可哀。인생역가애
功名如草芥。공명여초개
富貴若塵埃。부귀약진애 埃=티끌
輔主淪高士。보주륜고사 淪=잔물결
匡時失俊材。광시실준재
臨風更怊悵。림풍갱초창 怊=슬플초 愴=슬플창
無復見陳雷。무부견진뢰
239)동년(*611)의 벗 양이시(*612)지신사를 애도하며
세상일은 참으로 웃어넘길 만하지만
인생은 또한 슬퍼할 만하네
功名은 草芥와 같고
부귀는 티끌과 같네
임금을 보필할 높은 선비를 잃었고
시절을 바로잡는 俊材를 잃었네
바람을 맞으며 다시 슬퍼하니
아시는 陳重과 雷義를 볼 수가 없네(*613)
*611)[고려명현집]4.p157 에는 ‘同年友’가 ‘同年’으로 되어 있다. 동년은 주 71을 참조
*612)楊以時는 南原人으로 대제학을 지냈다. 허흥식의 [고려예부시등과록-고려과거제도사연구, 일조각,1981]에 의하면 양이시는 1357년에 급제한 것으로 틀리게 되어있다.
*613)진중과 뇌의는 중국 후한 때 사람으로 우정이 매우 두터웠다.
83)送楊同年之任古阜次韻
송양동년지임고부차운
兵甲年來廢織耕 병갑년래폐직경
可憐黔首此時情 가련검수차시정 검=검을검
遠方征戌猶堪死 원방정술유감사 감=견딜감
酷吏誅求却苦生 혹리주구각고생
補袞自慙非我分 보곤자참비아분 補=깁을보 袞=곤룡포곤
專城共賀是君行 전성공하시군행
若敎殘疾能蘇活 약교잔질능소활 蘇=되살아소. 풀소
不獨南陽父母名 부독남양부모명
83)고부(*250)로 부임하는 양동년을 보내며 차운하다.
(送楊同年之任古阜次韻)
근년에는 전쟁을 베짜기로 농사짓기를 폐하니
백성을 가련히 여김이 지금의 뜻이네
먼 지방의 전쟁에 나가면 오히려 죽음을 감수하지만
가혹한 관리의 苛斂誅求에는 도리어 고생스럽네
임금을 보필함이 내 분수가 아니라 부끄러운데
城을 전담하는 그대의 행차를 함께 축하하네
만약에 남은 疾苦를 능히 소생시켜 살게 한다면
南陽(*251)의 부모 명성만을 드날리는 게 아닐세.
**이 시는 전라도 정읍의 고부로 부임하는 동년 급제생을 보내면서 지은 작품이다. 首聯에서는 외적의 침입으로 베 짜기와 농사가 피폐한 상황에서 백성들을 염려하는 뜻을 드러낸 후, 頷聯에서는 전쟁터에서는 명분 있는 죽음이라도 기대할 수 있으나 관리의 가혹한 가렴주구는 견디기 어렵다는 시실을 밝혀 백성들이 수령의 학정에 고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頸聯에서는 중앙에서 임금을 보필하는 시인 자신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함이 부끄럽지만,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책무를 맡아 떠나는 상대방의 장도를 축하하는 뜻을 담았다. 尾聯에서는 지방관으로 나아가 피폐한 백성들의 삶을 소생시킨다면 이것은 지방관 본인과 ;고향의 부모를 명예롭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 크나큰 德業임을 밝혀 선정을 베풀 것을 강한 어조로 부탁하고 있다. -성범중의 책 73page에서--
*250) 古阜는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을 가리킨다.
*양동년은 척약재의 급제동년인 楊以時를 가리키는 듯하다.
*251)南陽은 전북 고흥군 남양면을 가리킨다.
동문선에서
좌윤 권주의 운을 차운하여[次權左尹鑄韻] 동문선 10권 5언율시
조춘시를 지으려다 머리를 돌리니 / 擬賦早春詩
봄이 벌써 돌아가련다 / 轉頭春欲歸
애끊는 방초가 질펀하고 / 斷腸芳草遠
눈에 그득히 낙화가 날리네 / 滿目落花飛
수계하는데 객은 바야흐로 많으나 / 修褉客方盛
기수에 목욕하는 사람은 드무네 / 浴沂人正稀
호연히 맑은 흥 발하여 / 浩然淸興發
새로 목욕하고 새 옷을 터네 / 新沐振吾衣
**새로 목욕하고 새 옷을 터네 :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턴다.《屈原 漁父辭》
권대부 호의 정정에 차운하다[權大夫鎬靜亭詩次韻] 동문선 16권 칠언율시
새 정자가 티끌세상 밖에 우뚝 솟았는데 / 新亭逈出塵埃外
큰 은자는 워낙 성시를 안 떠나는 것 / 大隱不離城市中
만 채 기와집 위 아래로 올망졸망 보이고 / 萬瓦參差分上下
뭇 산이 구불구불 남쪽 동쪽 안고 있네 / 衆山盤屈抱南東
어허 세상을 피해 신선 고장에 노니는 듯 / 怳如避世遊眞境
이봐 옷깃을 펼치니 북풍이 시원하군 / 政可披襟快北風
고요한 중 높은 회포를 그 누가 이해할꼬 / 靜裏高懷誰認得
마음이 응당 천지와 하나가 되리로다 / 乾坤應與是心同
**큰 은자(隱者)는 …… 떠나는 것 : 작은 은자는 숲 속에 숨고 큰 은자는 조시(朝市)에 숨는다는 글이 있다.
제 평릉 역정(題平陵驛亭) 동문선 19권 5언절구
벼꽃은 바람 앞에 희고 / 稻花風際白
콩 꼬투리는 비온 뒤에 푸르다 / 豆莢雨餘靑
물물마다 제 멋을 얻었는데 / 物物得其所
나는 시냇가 정자 위에서 노래하네 / 我歌溪上亭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