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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공묘지명 번역 수정 2(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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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회 작성일08-01-16 18:04 조회1,3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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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공묘지명 수정 2

 

公性은 敦厚直柔하고 內實剛毅하며 孝悌忠信이 出於天眞이라 惜乎라 以公之才德으로 若延數載면 則利澤이 豈不及於蒼生이며 名位가 豈止如是而已哉리오

공의 성품은 돈후 온유하면서도 내실은 굳세셨으며 효제충신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왔다. 안타깝다 공의 재덕으로 몇 년만 더 사셨다면 어찌 이익과 은택이 만 백성에게 미치지 않았겠으며 명성과 지위가 여기에 그쳤으리오?


娶匡靖大夫 僉議中贊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典理司事 世子師로 贈謚文敬公인 諱許珙之女하여 生四男三女하니

광정대부1) 첨의중찬 수문전대학사 감수국사 판전리사사 세자사로 시호 문경공에 추증된 허공(許珙)의 딸에게 장가들어 4남 3녀를 두셨으니


曰永暾은 今爲都官直郞知陜州事요

  영돈은 지금 도관직랑 지합주사가 되었고

曰永暉는 今爲興威衛保勝別將이요

  영휘는 지금 흥위위 보승별장이 되었고

曰思順은 剃度하여 爲慈恩宗大德이요

  사순은 머리를 깎고(불교에 귀의) 자은종 대덕이 되었고

曰永煦는 爲司憲持平이라

  영후는 사헌지평이 되었다.

女一은 嫡入內侍中正大夫親禦軍大護軍 鄭幘이요

  첫째딸은 입내시중정대부 친어군대호군 정책에게 시집갔고

二는 嫡大匡上黨君 白頤正이요

  둘째는 대광상당군 백이정에게 시집갔고

三은 嫡舍人別里哥不花하니 大元左承相 阿忽反之子也라

  셋째는 사인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에게 시집갔으니 원의 좌승상 아홀반(阿忽反)의 아들이다.


永暾等이 旣卜兆于德水縣馬山하고 將葬也하여 以予를 爲先公親舊하여 具公之行狀하여 乞銘甚切하니 予雖病이나 不忍堅拒受하여 而銘之하노라 銘曰

영돈 등이 덕수현 마산에 장지를 정하고 나서 장례에 임박하여 나를 부친의 친구로 여겨 공의 행장을 갖춰 명문을 청함이 매우 간절하니, 내 비록 병중이나 차마 강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명문을 짓노라. 명문에 이른다.


  赫赫忠烈은   東國汾陽이로다

     빛나고 빛나는 충렬공은 우리 나라의 곽분양2)이로다

  滿庭蘭玉이   幷秀爭芳할세

    집안 가득 뛰어난 자손이 나란히 재주를 뽐내는 중에

  白眉爲季를   時號最良이로다

    뛰어난 막내(고인을 가리킴)를 당시에 가장 어질다 하였네

  家尊所歉은   未入桂堂일러니 

    아버지 섭섭함은 문과 급제가 없음이라

  公承厥志하여 銳意文場이로다

    공이 그 뜻 받들어 문과 과거를 준비하였네

  世傳祖法하여 時効錦囊이러니

    할아버지 가법을 전수하여 때때로 시문을 본받더니

  妙齡乙第하여 名振四方이로다

    젊은 나이에 2등으로 급제하여 명성을 사방에 떨쳤네

  揚歷臺閣하니 演誥含香이로다

    대각의 중직을 역임하며 쓰신 글마다 향기로왔다

  一提文柄하니 桃李成行이로다

    한 번 문병을 잡으니 문하에 뛰어난 인재가 성행하였네3)

  高堂喜淚하여 流溢壽觴이로다

    부친의 기쁜 눈물에 넘치는 술잔으로 장수를 기원하며

  眼前拜相하니 錄鬢金章이로다

    (부친의) 생전에 재상에 제수되고 금장에 기록되었구나

  力彈榮孝하니 哀極榟鄕이로다

    효도의 영광을 힘쓰니 고향사람들도 애달퍼하도다

  子道無缺하니 宜降百祥이로다

    자손의 도리 무결하니 온갖 상서로움 내리도다

  暮年閑退하니 天意范范이로다

    늘그막에 퇴직하니 하늘의 뜻 아득하도다

  終傳茅土하니 門戶更光이로다

    부친의 공신전을 전승하니 가문의 영광이로다

  不參時政하니 虛度九霜이라가

    정사에 참여하지 않고 아홉 해를 보내다가

  俄登極品하니 民固邦寧이로다

    잠시 최고 품직(재상)에 오르니 나라와 백성이 평안했네

  胡未卒歲인데 遽促仙裝하시오

    어찌 가실 때도 아니온데 급작스레 저승길을 재촉하셨소

  在公無慊이나 爲國可傷이로다

    공께서야 아쉬울게 없지만은 나라에는 상심일세

  刻銘流耀하니 庶及無彊이어다

    비석에 새겨 공훈을 남기니 무궁히 미치리라


大元 至治元年 辛酉 十月十四日

대원 지치원년 신유년 10월 14일


宣授朝列大夫 翰林直學士 三重大匡 檢校僉議政丞 右文舘大提學 監春秋舘事 驪興君 閔漬 撰

선수조열대부 한림직학사 삼중대광 검교첨의정승 우문관대제학 감춘추관사 여흥군 민지(閔漬)가 짓다.


※졸역 : 儒林學堂(hanja4u.com.ne.kr) 主人 金國會


1) 광정대부 : l275년(충렬왕 1)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고쳐 광정대부라 칭했다가 1298년에 폐지함


2)汾陽 : 분양은 곽자의(郭子儀)의 봉호(封號). 당 현종(唐玄宗) 때 삭방 절도사(朔方節度使)로서 안녹산(安祿山)ㆍ사사명(史思明)의 난을 평정한 뒤 그 공으로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지고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다. 수(壽)와 복(福)을 누리고, 자손이 번창하였으므로 역사상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3) 桃李成行(도리성행) : 도리가 줄을 지었다는 말은 준수(俊秀)한 인사(人士)가 문하(門下)에 가득하다는 말로, 당(唐) 나라 적인걸(狄仁傑)이 천거한 사람은 모두 명사(名士)가 되었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이 "천하의 도리가 모두 공(公)의 문하에 있소." 라고 한 데서 인용된 말《資治通鑑 唐紀(자치통감 당기)》이 구절은 元貞 乙未 겨울에 知貢擧를 맡아 당세의 명사들을 뽑은 일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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