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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태(金錫泰) 공의 외손자 대제학 영의정 남공철(南公轍)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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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17-07-27 21:57 조회1,2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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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대제학 영의정 남공철(南公轍) -의령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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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향토유적 제4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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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공철[南公轍, 영조 36(1760)헌종 6(1840)], 자는 원평(元平), 호는 사영(思穎금릉(金陵), 시호는 문헌(文獻), 본관은 의령, 증조부는 관찰사 남정중(南正重), 조부는 동지돈령부사 남한기(南漢紀), 아버지는 형조판서·대제학 남유용(南有容), 어머니는 통덕랑 김석태(金錫泰)의 따님 안동김씨이다.

  정조 16(1792)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순조 때는 아홉 번 씩이나 이조판서를 제수받았고, 홍문관·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순조 17(1817) 우의정, 순조 33(1833) 영의정을 그만둘 때까지 14년간이나 재상으로 있다가 봉조하가 되었다.

  그는 경전에 통달하여 많은 금석문·비갈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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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릉 남공철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가 않다. 금토동 산66번지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여 찾아가면 이정표가 2번 나오지만 정작 마을에 들어서면 안내판이 없기 때문이다. 청계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 우측 금토동 마을 안을 지나 300m쯤 가면 성벽처럼 보이는 돌담이 있고, 돌담좌측으로 돌아 50m쯤 가면 좌우로 넓은 공터(이곳이 남공철의 99칸 옛 집터로 추정하고 있음)가 나오고, 10시 방향에 큰 바위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금릉 남공철 묘소가 바로 이 큰 바위 좌측 위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묘소를 찾아들어가는 길이 없어 나는 좌측 공터 풀밭을 지나 길이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 큰 바위를 기준으로 대충 어림잡아 올라가니 금릉 남공철 선생의 묘소가 눈앞에 펼쳐졌다. 남공철선생 묘소를 답사하기 위해 4~5번의 실패 끝에 묘소 앞에 선 기분은 희열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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