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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노은정(老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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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17-07-26 15:46 조회72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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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노은정(老隱亭)

                                                 천안시 문화재자료 제355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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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정(老隱亭)


 

  노은정은 1689(숙종 15)에 노은(老隱) 김상기(金相器) 공이 지으신 도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이다.

  공의 자는 정보(鼎甫), 본관은 안동으로 1639(인조 17년 기묘)에 충북 청원에서 아버지 휘() 지량(志亮)과 어머니 행주기씨(幸州奇氏)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숙부이신 휘 지석(志奭)에게 입양되셨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명문거족으로 고려 명장 시호 충렬공 휘 방경(方慶)15대손이고, 이 태조가 조선을 세우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고려에 충절을 끝까지 지킨 안렴사 오은(吾隱)공 휘 사렴(士廉)11대 손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고 문장에 능하시어 신동이라 불렸고, 숙종 때는 대학자로 명성을 떨치시니 세상 사람들은 공을 시장군이라 불렀다. 공의 이 같은 학식과 인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 지면서 조정에서도 정오품 통덕랑을 내렸으나 공은 이를 사양하고 오직 시 문학에만 전념하시어 선비들로부터 더욱 추앙을 받으셨다. 특히 영조대왕의 스승이신 곽시징(郭始徵) 선생, 목천군수 김광수 선생과는 친교가 두터우셨다.

  일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시며 후진양성에 힘을 아끼지 않으셨다. 50세 되던 해 정자를 짓고 현완과 바위 위에 노은정이란 이름을 친필로 쓰시고 스스로 노은거사라 하셨다. 1708(숙종 34) 918일에 70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으며 배위(配位)는 공인(恭人) 남양홍씨로 현감 우민(禹民)의 따님이며, 슬하에 45녀를 두셨다.

  공의 높은 학문과 선비로서의 고결한 인품을 사모하여 종조 때의 명문장가로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낸 외현손 남공철(南公轍)은 노은정 현판에 공의 행적을 기린 글을 남기셨고, 공의 손자 휘 석범(錫範)은 노은정기를 지으셨다.

노은정은 북쪽으로 우뚝솟은 작성산의 푸른 정기와 동성산맥의 줄기찬 기상을 이어받고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광기천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철마다 학생들의 자연학습도장이 되고 있다. 공과 노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300년 전에 발행된 대록지와 근세에 발행한 팔도유람기》 《지명총람》 《이것이 한국이다》 《천원군지등에 소개되고 있다.

  이에 후손들은 공의 얼이 담긴 자랑스런 유산을 잊을 길이 없어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자손 만대에 전하여 가문의 영광과 긍지로 삼으려 한다.


 

19903월 일

9대손 성회(聖會) 글을 짓고 씀

후손 일동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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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성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성회
작성일

윤만감사님 감사하옵니다. 얼마나 쉬원하고 좋은경치인지 옛 선인들의 멋스러운 정자 정말로 수고하셔서요

김규철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규철
작성일

금년 봄에 현지에가서 선조님의 고고하신 인품을 느끼고 오랜동안  잘 보전하여주신
후손제위께 경하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