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서당차김응림추회(書堂次金應霖秋懷)

페이지 정보

김태영 작성일14-12-25 09:23 조회2,135회 댓글1건

본문


서당차김응림추회
(書堂次金應霖秋懷

서당(書堂)은 한강 북쪽 언덕 옛날 용산사에 있다. 성종 때에 재건축하여 당이 되었다. 문학의 선비를 최고로 뽑아서 거기에 채우고 차례로 번을 들어 책을 읽게 했다. 후에 두모포(豆毛浦) 남쪽 언덕으로 건축하여 옮겼다. 1515(중종 10)에 다시 동호송암(東湖松庵)의 서쪽 산기슭에 점을 쳐 터를 잡았다. 그곳을 호당(湖堂)이라 이른다.  

김응림(金應霖)은 김주(金澍 1512-1563)의 자, 호는 우암(寓庵), 본관은 안동으로 안원군(安原君) 공량(公亮)의 아들임. 중종26(1531)에 진사, 34(1539)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명종18(1563)에 종계변무(宗系辨誣)사건 때문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북경 관사에서 병으로 죽었다. 선조때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추대되고 화산군(花山君)에 추봉 되어짐, 퇴계및 하서 김인후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문집으로는 <우암유고(寓菴遺稿)>7권이 있는데, 김주가 죽은지 200여년 뒤에 편집된 목판본으로 호당에서 독서할때 지은 시는 한 수도 수록 되어있지 않다. 아마 임진난을 겪는 사이에 당시의 많은 시 작품들이 유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秋入梧棟憾一年 추입오동감일년
가을이 와서 오동나무가 한 해를 흔들어 놓으니,
飜思宿債負山川 반사숙채부산천
오랬동안 빚지고 있다는 생각 되솟아 나네 산천을 등지고 있으니,
病中猶憶聖呼酒 병중유억성호주
병고 속에서도 오히려 생각나네 맑은 술을 성인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貧裏寧甘兄事錢 빈리녕감형사전
가난 속에서도 어찌 달게 여기겠는가? 돈을 형님 같이 여긴다는 것을,
紫氣仙人函谷外 자기선인함곡외
자주빛 기운띤 신선은 함곡관 밖으로 나갔고,
黃冠道士鑑湖邊 황관도사감호변
누른 관 쓴 도사는 거울 못 곁에서 놀았다네,
平生謬厠金閨彦 평생류측금규언
평소에 잘못 끼어 들었네. 금마문(金馬門)안을 드나드는 선비들 틈에,
不及渠家養寸田 불급거가양촌전
미치지 못하네, 제집에서 한 마디의 마음 밭을 잘 가꾸기만은.  

추회(秋懷): "가을이 되면 느끼게 되는 회포를 적는다." 는 뜻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 문인들의 한시(漢詩)의 제목으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퇴계집>에도 이시 외에 똑같은 제목의 시가 또있다.  

출전 : 퇴계학보



댓글목록

김용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호
작성일

감사합니다. 김응림시 낭송회 또는 모임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