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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孤山亭)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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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3-07-02 14:04 조회3,3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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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孤山亭)에 대한 고찰                                       솔내 김영환
 
  고산정(孤山亭)은 충렬공께서 유상(遊嘗)하던 정자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 초석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니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찾아내어 고증하고 또 복원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고산정(孤山亭)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고산정(孤山亭)에 대한 기록부터 살펴보자.
 
  조선 후기의 관리로 그림에 능했던 이의성(李義聲: 1775~1833)이란 사람이 그린 ‘하외낙강상하일대도(河隈洛江上一帶圖)’가 있다. 이 병풍에 네 번째 그림[四曲]은 수동(壽洞)이다.
  수동의 정경을 그린 이 그림에 정자 하나가 보이는데 발문에 ‘上洛君(上洛公의 오류) 김방경의 정자가 있는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병풍화는 모두 10폭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본(紙本) 수묵(水墨)으로 1828년에 제작되었다. 크기는 각폭 가로 130㎝ 세로 59㎝이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당초 이 그림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1515~1573)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암은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관료로서도 이름난 분이다. 이 분이 의주목사로 재임 중에 고향 하회의 강산이 몹시 그리워 하회를 중심으로 낙동강 상, 하류의 풍광을 화공을 시켜 그리게 했고, 그것을 병풍으로 만들어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상락 김태영의 글 인용). 이 병풍을 다시 그린 것이 이의성의 그림이다.
  수동(壽洞)은 현재의 풍산읍 회곡동을 포함하여 수리(壽里)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약천 남구만의 영남잡록에 보면 안동 수동(壽洞)에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가 이곳에 와 ‘이곳에서 천하에 영웅이 태어났을 것인데 누구냐’고 물으니, 그 인물이 고려 상락공 김방경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회곡동 일대를 수동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유중영의 부인은 도평의공파 송은 김광수의 따님으로 처가의 유적지인 고산정에 대해서 남다른 애착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유중영의 작은 아들인 서애 유성룡의 묘도 수동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유성룡의 묘=안동시 풍산읍 수리 260번지).

  학봉 김성일은 이곳 안동출신으로 상락대와 고산정을 유람하였다고 연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587년(선조20년)선생50세 2월 청명이 지난 어느 날
상락대는 안동부 서쪽 낙동강가에 있으며, 바로 김방경이 유상(遊嘗)하던 곳이다. 옛일을 느껴 지은 시 절구 한수가 있다.
 
                      상락대(上洛臺) 김성일
맑은 새벽 말을 타고 이웃 노인 불러 내니 / 淸晨跋馬喚鄰翁
구름 소매 표연히 수석 사이 휘날리네 / 雲袂飄然水石中
홀연히 장군이 노닐던 곳 도착하니 / 忽到將軍遊賞處
영령께서 온 강 가득 바람을 일으키네 / 英靈吹起滿江風
 
상락대(上洛臺) 2수.
상락공의 풍류는 삼백 년 전 일이거니 / 上洛風流三百秋
그 공명과 사업은 물처럼 흘러갔네 / 功名事業水東流
호산의 운수는 지금 어디 있는가 / 湖山歷數今何在
시험삼아 강물 향해 백구에게 물어본다 / 試向蒼波問白鷗
 
 [주]장군(將軍) : 상락군개국공(上洛君開國公)에 봉해진 고려의 김방경(金方慶)을 가리킨다.(필자 주;上洛君은 上洛郡의 오류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1998
 
*고산정(孤山亭)을 유람하였다. 정자는 상락대 북쪽 조금 위에 있는데 역시 절구 한수의 시가 있다.
(고산정에 대한 절구 한수는 찾지 못했다. 앞으로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하외낙강상하일대도(河隈洛江上一帶圖)와 학봉의 고산정 유람의 기록으로 보아 16세기까지는 고산정이 존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초(1608년)에 편찬한 안동의 읍지인 [永嘉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안동부 서쪽마을에 회곡촌이 있는데 하계곡 서쪽 몇리 쯤에 있다. 중앙에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고산(孤山이 강(낙동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
[상고산(上孤山)은 안동부 서쪽 회곡촌 앞에 남양담(南陽潭)위에 있다. 상락공 김방경이 그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그 기초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후 또 다른 기록이 있으니,1686년에 지은 사주 김양좌의 회곡종회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전략..작은 누대의 남쪽에 계곡이 있고, 물가에는 옛날에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던 반묘(半畝 =약 40평;조선시대 1묘=259.46M2)넓이의 네모난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평평해져서 논이 되었다. 계곡물은 서쪽으로 흘러 마을 입구에 이르게 되고, 귀봉(龜峰)아래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귀봉 꼭대기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이는 곳에 옛날 별정(別亭)이 있었는데 깨진 기왓장이나, 무너진 담장의 흔적조차 없다...후략]
*[주]유상곡수流觴曲水 :삼월 삼짇날, 굽이도는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로 신라시대 포석정의 곡수연曲水宴을 베풀었고, 조선시대 창덕궁 옥류천의 유배거(流杯渠)에도 유상곡수 흔적이 남아 있다
 
위의 모든 기록을 정리하여 보면,
 
1).고산정(孤山亭)은 16세기 말엽까지 존치하고 있었다.
2).17세기 초에 고산정(孤山亭)이 멸실되었으나 기초가 남아 있었다.
3).고산정(孤山亭)은 고산(孤山), 상고산(上孤山)에 있다.
4).상고산(上孤山)은 회곡촌 앞 남양담(南陽潭)위에 있다.
5).고산(孤山)은 회곡(檜谷)중앙을 흐르는 작은 시내가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데
   작은시내와 낙동강이 합치는 곳에 있다.
6.)고산정(孤山亭)은 회곡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물이 마을 입구에 이르게 되고 귀봉(龜峰) 아래에서 낙동강 으로 흘러가고 귀봉 꼭대기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위의 모든 사항을 살펴서 미루어 보면 현재 상락충렬공유허비 앞 큰길 건너산인 풍산읍 회곡리 산 154번지 일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이 산은 1,000년 동안 유지해온 문중재산이고 이곳에 충렬공 유허비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산 서쪽으로 회곡동에서 흘러나온 시냇물이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또 넓게 살펴보면, 현재의 폐교된 학교를 지나서 수리(壽里)방향으로 가면 큰 시내가 나오는데 이곳 근처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상 고산정에 대해 살펴보았으나 아직 찾지 못한 자료가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올 8월에 있을 상락대와 회곡동 답사 캠프 때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013년 7월 1일 솔내 김영환(soln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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