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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창 신도비(崔命昌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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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11-12-05 22:39 조회4,572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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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양주의 불곡산을 산행을 마치고 답사한 송석 최명창 선생 묘역 (松石 崔命昌 先生 墓域).

최명창 선생 신도비(崔命昌 先生 神道碑)는 동고공(東皐公, )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최명창 신도비(崔命昌 神道碑) 

1537(중종 32)에 세워진 최명창(崔命昌)의 묘비이다. 찬자는 홍문관제학 동지성균관사 등을 역임한 김안국(金安國)이고, 서자는 명필로 알려진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한 김로(金魯)이다. 각자는 사간원사간 겸 춘추관편수관 승문원참교를 역임한 임필형(任弼亨)이다.

최명창(14661536)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개성이며, 호는 송석거사(松石居士)이다. 1489(성종 20)에 진사가 되고, 1504(연산군 10)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전적을 시작으로 봉상시판관 · 사헌부지평 · 예조참판 · 황해도관찰사 · 동지중추부사 · 전주부윤 · 원주복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간에서 소신껏 말을 하여 회피하는 것이 없었으며 국가에서도 그의 건의를 많이 채택하였다. 원주목사로 있을 때 선정을 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샀으나 감사와 의견 충돌로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에 뜻을 버리고 한가로이 노년을 보냈다. 중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비문의 초반부에는 최명창의 가계도에 대한 내용이 있으며 중반부에는 그의 관직생활과 시종과 대간의 직에 출입함에 강직한 의론으로 여러 차례 건의를 올려 국가에서 많이 채택하여 시행하였던 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검소한 생활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은 것과 효행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묘역에는 최근 조성한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보이는 신도비가 있고, 그 좌측은 묘가 있다. 최명창의 묘지는 쌍분으로 조성되었으며, 묘지 좌우로 문인석 한 쌍이 서 있다. 쌍분 앞에는 돌판들이 깔려 있고, 각 봉분 앞에 작은 상석이 있으며, 그 앞에 묘비를 세웠는데, 향좌측은 최명창의 묘이고, 향우측은 부인 단양 우씨의 묘이다.

 


▲ 최명창 선생 묘역 입구.


▲ 최명창 신도비.


▲ 신도비 부분 글씨


▲ 신도비에 춘추관기사관 '金 魯 書'가 보인다.


▲ 최명창 선생 묘역 전경


▲ 신도비 부분 탁본(경도대)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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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발용 대부님 모처럼 양주 쪽에 오셨는데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덕분에 눈이 즐겁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예고없이 찾아간 제 잘못이지요.
날이 따뜻해지면 탁본 할 곳이 몇 곳 있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아이쿠, 대부님. 별 말씀을요.
한숨 돌리면
따뜻한 날 금수정 냇물 속 바위글자 탁본 뜨러 갈 생각인데요.
그때 대부님 시간 되시면 임진강 어부집 매운탕 드시러 가실래요.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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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금수정 주변 탁본 뜰 때 꼭 불러주세요.
어부집 참게 매운탕도 좋지요.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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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리플달기가 안되더니 이제야 되네요. 
탁본!!!  종이. 먹. 준비완료.  기대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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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경도' 외에도 '정신수월...'이라고 쓴 석봉 필적도
탁본 뜬 거 보니까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이 글자가 새겨진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는데요.
짬 날 때 사전 답사 다녀와야겠습니다.
발용 대부님, 꼭 연락드릴게요.
시간 나시는 분들 언제든지 대환영입니다.

김태우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우
작성일

자기들만 갈려구, 미워!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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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저씨, 뚝!
대환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