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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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1-12-05 14:28 조회6,775회 댓글2건본문
여주에 있는 신륵사는 천년고찰로서 고려말 척약재 선조님께서 유상하시던 곳이며, 이곳 스님들과는 많은 교류를 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만도 보물이1.모전석탑. 2.대장각기비 3.대웅전앞 석탑.4. 조사당. 5.나옹선사 부도.6.나옹선사 부도앞 석등.7.나옹선사 비 등 많은 보물을 간직한 곳입니다. 지난 여름 들렸던 기록이 있어 여기에 옮겨 봅니다.
여주에 가시는 길이 있으시면 신륵사에 들려 보물도 감상하시고, 또 척약재 선조님의 숨결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1.신륵사 일주문
보물 제 226호 신륵사 다층전탑 전탑이란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을 말한다. 모전석탑도 있는데 이는 돌을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을 말함니다. 이 신륵사 전탑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보물제230호 신륵사 대장각기비( 大藏閣記碑)
이 비석은 신륵사에 대장각비를 세운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부모와 공민왕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2층전각을 지었다. 그 내용을 도은 이숭인이 글로 짓고 권주가 글씨를 썼다. 이색선생이나 도은선생, 권주선생, 모두 척약재할아버님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부도)-보물제228호
이 부도는 보제존자 나옹스님(1320-1376)의 부도이다.부도 앞에 있는 석등. 이 내용을 기록한 석종비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신륵사 가면 꼭 보아야 할 곳인데도 구석에서 좀 올라가야 하므로 지나치기 쉽다.
신륵사 대웅전 왼편에 보호수로 지정된 커다란 향나무가 있고 그 뒤로 조사당이 있는데 조사당 뒷쪽으로 조금만 산쪽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이 조사당도 보물280호이다.
보물제231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이다( 석종이라고 하지만 돌로 만든 종모양이라고 그런 모양인데. 스님의 부도(화장한후 사리등 유골을 모신 납골당이다)라고 해야 맞지 않겠는가.
이 석등은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부도를 밝히는 뜻으로 세운 것으로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훗날 조선시대 산소 앞에 세우는 장명등의 원조 격이다.
보물제229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이 비석은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부도와 영당을 모신 내력을 적은 비이다.글은 목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유항 한수가 썼다.비의 뒷면에는 나옹스님의 제자들과 시주자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여기에 척약재(문온공)할아버님의 이름도 보인다. 전 삼사좌윤 김구용 이라고 씌여있다.
보제존자석종비의 뒷면에 척약재 할아버님의 이름이 보인다.
보물3개가 모여있는 곳을 올라가는 곳에 조사당이 있다.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부도와 석등, 석종비 그리고 아래에 있는 조사당도 보물제280호이다.
보물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신륵사 대웅전 앞에있는 석탑이다. 내가 본 것만 보불이 7개나 되는 거찰이다. 또 더 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신륵사를 가면서도 제대로 보지 않고 오기가 십상이다.
신륵사에 가면 최소한도 보물 7개는 꼭 찾아 볼아야 할것이다. 특히 보제존자 석종비는 반드시...
신륵사 강가에 있는 강월헌(강월헌은 보제존자 혜근 스님의 나옹이라는 호 외에 또다른 호이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고운 백사장이 하도 넓어서 특전사군인들이 낙하산 훈련을 하던 곳인데..안타깝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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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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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神勒寺無及頭陀之伽타;序詩
丁巳八月庚午 自蘆灘放舟 順流而下 泊于神勒寺 有無及頭陀
정사팔월경오 자로탄방주 순류이하 박우신륵사 유무급두타
者煮茗之餘 出示伽타二軸 乃江南禪子相贈之作也 無及
자자명지여 출시가타이축 내강남선자상증지작야 무급
懶翁和尙高弟 弟子早蒙印可遂遠遊吳楚민越之間遍禮諸名師尋
나옹화상고제 제자조몽인가 수원유오초민월지간편례자명사심
探蘊奧斂而東歸 去年夏 懶翁示寂于此 無及與其徒燒之 拾舍
탐눈오검이동귀 거년하 나옹시적우차 무급여기도소지 습사
利頭骨安于北岡 造石鍾壓之 因以居焉 無及可謂不背其道而無
리두골안우북강 조석종압지 인이거언 무급가위불배기도이무
負其師者矣予甚嘉之 題詩卷末 以塞其請云爾
부기사자의여심가지 제시권말 이새기청운이
정사년(*75)팔월 경오일에 갈대 여울로부터 배를 타고 물 흐름을 따라 내려와서 신륵사(*76)에 정박하였다. ‘무급’이라는 스님이 차를 끓이고 나서 가타(*77) 두축을 보여 주었는데 곧 강남선자와 서로 주고 받은 것이었다. 무급은 나옹화상(*78)의 고제자(*79)로서 일찍이 인정을 받아 마침내 멀리 중국의 오.초.민.월 지방까지 다니며 두루 여러 유명한 선사들에게 예를 드리고, 심오한 이치를 찾아 거두어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작년 여름 나옹화상이 여기에서 입적하여 무급과 그의 무리들이 그 시신을 태워 사리와 머리뼈를 북쪽 산등성이에 안장하고, 석종을 만들어 덮고는 이곳에 마물고 있었다. 무급은 그 도를 어기지 않고, 그 스승을 저버리지 아나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내가 그를 매우 가상히 여겨 권말에 시를 지어줌으로써 그의 청을 막았다고 하겠다.(*80)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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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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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나한태 말도안하고 언제 여주 다여 가셨읍니까 하여튼 실록사 구경 잘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