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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공 사돈 몽골 좌승상 아홀대[阿忽歺(歹), 아쿠다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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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1-01-11 20:06 조회2,0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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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공 사돈 몽골 좌승상 아홀대[阿忽歺(歹), 아쿠다이] 고찰(존칭생략)

안김에서는 아홀반[阿忽(反)]으로 쓰고 있다.

가. 혼사(세대)로 알아보는 생몰년

김방경(方慶, 1212-1300) - (恂, 1258-1321) - 영돈(永暾, 1285-1348)

홍규(洪奎, 졸년 1316) ♡ 광산김씨(김연의 女) - 장녀 ♡ 아홀대(阿忽台)

청주 정현(鄭儇) - 정해(瑎) - 정책(㥽) ♡ 김순(恂)의 녀 - 정오(䫨)

정책(㥽) - 정오(䫨) ♡ 홍융(洪戎, 홍규의 아들)의 녀

청주 경대승(1154-1183) - 번 - 경수 - 경사만 ♡ 정해(瑎)의 녀 - 경복흥

○홍규 사돈 - 김연(鍊, 1215-1291)

○홍규의 사위

1. 아고대(阿高歹, 몰년 1307) - 홍규묘지명(阿高歹) 기록

2. 정해(鄭瑎, 1254-1305)

3. 충선왕(順和院妃), 충선왕(1275-1325)

4. 원충(1290-1337)

5. 충숙왕(明德太后), 충숙왕(1294-1339)

○아홀대(阿忽台)의 몰년 기록(끝에 아홀대의 죽음이 나온다)

□원사(元史) 卷二百三[列傳第九十/方技]

大德元年[1297년],遷昭文館大學士、中奉大夫,兼太常太卿。十一年[1307년],成宗崩,阿忽台等持異謀,將以皇后教,祔成宗於廟。忠良爭曰:「嗣皇帝祔先帝於廟,禮也;皇后教,非制也。」阿忽台等怒曰:「制自天降耶?汝不畏死,敢沮大事!」忠良竟不從。既而仁宗乙太弟奉皇太后至自懷州,潛與密謀誅阿忽台等。

○아홀대(阿忽台)와 別兒怯不花[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의 부자간 기록

□원사(元史)卷一百四十.列傳第二十七○別兒怯不花(別里哥不花)

別兒怯不花,字大用,燕只吉[□]氏。曾祖忙怯禿以千戶從憲宗南征有功。父阿忽台事成宗為丞相,被誅,後贈和甯忠獻王。-하략-    燕只吉[□]氏의 [□]는 [辟鳥]의 조합자로 보임.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 別兒怯不花)의 생몰년 추정 사료

□고려사 35권 세가35, 충숙왕 7년(1320년)조 요약

2월 무인일에 왕이 상락군 김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7월 채홍철을 중대광 평강군으로 하였다.

계사일에 몽골에서 황태후를 태황태후로 바꾸기로 하고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를 보내 조서를 반포하였다.

□원사(元史)卷一百四十.列傳第二十七○別兒怯不花(別里哥不花)

-중략- 至正十年正月卒(1350년)。-하략-

□문영공의 아들과 사위 생몰년 비교

문숙공 영돈(永暾, 1285-1348), 정간공 영후(永煦, 1292-1361)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 ? 1320년 정치활동, 몰년 1350년)

나. 묘지명과 문헌기록

左丞相 阿高歹(홍규 묘지명) - 맏사위는 아고대(阿高歹)다.

左丞相 阿忽台(홍규처김씨묘지명) - 김씨는 광산 김연의 딸이다.

元사신 阿古大(홍규소개 자료) - 원나라(몽골) 사신 아고대(阿古大)

左丞相 阿忽胎(광산김씨 기록) - 김연의 외손서 기록 아홀태(阿忽胎)

丞  相 阿忽台(원사 열전 別兒怯不花 조) - 父阿忽台事成宗為丞相

左丞相 阿忽?(김순묘지명) - 대[알]로 읽는 歹[歺]자(字)이거나 혹은 歹[歺]자의 이체자(異体字)로 판독되나, 언제부터인지 안김에선 아홀반[阿忽反]이라 원문을 옮기고, 또 번역하여 따르고 있음.

○이체자는, 흔히 약자, 속자(俗字), 간자체, 변형자라 불리나 고려시대 묘지명에 새긴 자(字)라서 여기에서는 ‘歹[歺]자(字)’와는 획의 형체가 약간 다른 글자체로 보고 이체자(異体[體]字)라 정의함.

다. 아홀대(阿忽台, 阿忽胎, 阿高歹, 阿古大)의 여러 사서 기록

관직은 좌승상(左丞相)이 가장 많이 나타나며 중국자료에는 좌승(左丞)과 우승(右丞)도 있고 원사나 신원사에는 승상(丞相)이나 관직 없이 아홀대[태](阿忽台)로 등장하는 인물로 다 동일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홀대(忽台)를 우리나라 기록에 고대(高歹)나 고대(古大)로 한 기록

□한자의 음을 빌려 쓴 가차(假借)식 표기로 향찰이나 이두라 한다.

용례 : 프랑스 - 불란서(佛蘭西), $(달러) - 弗(불)

출고(出古) : ~(태어)나고[향찰식 신라향가 제망매가에서]

용골대(龍骨大) : 중국 사기에는 영아이대(英俄爾岱), 영고이대(英固爾岱)로 표기하며 읽을 때는 각각 [잉어얼다이]와 [잉구얼다이]라고 함.

-여기서 한자의 음대로 우리나라는 英(龍)과 固(骨), 岱(大)로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구)얼다이’로 발음한 것을 ‘골대(骨大)’로 표기한 사실도 알 수 있다.(固爾岱 - 骨大)

○용골대 표기방식인 고이대(固爾岱)의 골대(骨大) 변형에 따라서-------

아홀대의, 홀대(忽台)가 우리나라에서 각각의 사서기록이나 금석문에서 홀태(忽胎), 고대(古大), 고대(高歹[歺]) 등으로 쓰이는 용례는 위에서 살피면 가능한 표기지만, 안김의 원문표기와 번역(해석)인 홀반(忽反)은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결론], 중국사서 기록과 우리 금석문에 나타나는 문영공의 사돈이자 정해(문영공 사돈), 충선왕, 원충, 충숙왕의 동서인 아홀대[태](阿忽台)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인의 견해(사견) - 대(歹[歺])의 변형으로 판독된다.

-. 대(歹)자 위에 점을 찍은(그릴 수가 없음) 형태로 파악(흡사함).

-. 万자에 위 아래로 점을 찍은 글자와 유사.

-. 方자 아래에 점을 찍은 글자 형태와 유사.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귀한 문영공의 사돈 역사 자료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