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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공 공덕비 건립 제막식 행사 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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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학공파 작성일10-05-18 18:06 조회2,0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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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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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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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물 전면 표지                               유인물 뒷면 표지                   식순(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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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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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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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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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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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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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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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5p

 다음 항용 사회자는 경진보 발간과정, 정언공 소개, 묘비문 소개는 유인물로 대신하였고, 공지사항에서 현재 준비 중인 제학공파 주소록 정리 과정과 제학공파 25년사 편집 진행과정을 설명하였으며, 제학공파 수도권 종회 구성과 초대 회장으로 태욱(泰煜-병천 생원공파. 전 대종회 감사)님이 위촉되었음과, 오는 6월 13일 11시 서울 대종회 사무실에서 창립총회가 있음을 알렸으며, 대종회 사무총장이 준비해 온 판매용 경진보 영인본을 소개하는 것으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13시경, 모든 종친은 다음 만날 것을 약속하며 산청 종중에서 준비해 주신 기념품을 감사하게 받아 들고 푸른 하늘, 푸른 산이 맞붙은 길을 따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해산하였다. 본 행사에 성금 주신 분이 있어 소개하면서 묘비문을 싣는 것으로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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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품과 내용물

 

 

                             <성금자 명단>

  1.상묵(제.공주)-10만원, 2.봉회대종회부회장(도평의파))-20만원. 3. 상옥병천종약소장-10만원  4.괴산능촌종중-10만원.  5.상길(제.산청)-10만원.  6. 용두(제.괴산 사리)-5만원.  7. 박원서(준회종손 처족)-5만원

  

                              <정언공 공덕비문>

<전면 글씨>

   安東金公司諫院正言諱釴功德碑


<비음기>

 公의 諱는 釴이요 字는 君擧이며 本貫은 安東이다. 敬順王의 孫子인 平章事公 諱 叔承은 始祖시고 고려조의 대표적 出將入相으로 높이 追崇받는 忠烈公 諱 方慶은 中始祖로 公의 十代祖시며 派祖이신 提學公 諱 益達은 六代祖요 承旨公 諱 壽亨은 祖父이시며 都事公 諱 彦弘은 父親이시다. 公은 一四八六年 출생하여 타고난 비범한 재능으로 학업에 힘써 一五一六年 生員科에 入格하였으며 一五一九年에는 賢良科에 급제하여 司諫院 正言에 오르셨다. 그런데 일찍이 靜庵 趙光祖의 門下에 들어가 그 學問과 思想을 따르던 중 己卯士禍가 일자 靜庵의 救命 上疏를 올리고 一五二一年 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유배되셨다. 방면 후 一五四五年 재등용되어 叅奉과 主簿를 거쳐 龍潭縣令이 되었으며 一五四八年 六十三歲로 歿하여 서울 상도동에 모셔졌다가 一九六八年 이곳 慶南 山淸으로 移安되셨다.

 公은 淳厚 方正하고 學識과 才行이 높았는데 특히 최초의 安東金氏 족보인 庚辰譜를 편집하는 大偉業을 이루어낸 功이 크시도다. 一五00年경 착오 많은 개인적 譜牒만이 전수되어 그 폐단이 매우 컸으나 방대하고 至難한 大同譜 편집작업을 아무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을 때 평소 우리 門中에 깊은 愛情을 지니고 계시던 공께서는 굳은 의지와 용기를 발휘하여 一五一九年부터 약 三十여년동안 혼란한 정치상황과 유배생활 중에서도 모든 譜牒과 각종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大同譜 草稿를 편찬해내는 큰 업적을 이루셨다. 그러나 이를 책자로 발간하지 못하고 별세하고 마셨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도다. 이에 아우이신 通川公 諱 钁께서 이 과업을 이어받아 七권의 보완 草稿를 완성하셨고 二十七年 뒤인 一五七七年에는 正言公의 조카인 經歷公 諱 齊賢께서 여러 宗長들을 설득하여 發刊 작업을 추진하셨다. 또한 一五七八年에는 正言公의 손자인 寺正公 諱 昉께서 조부의 뜻을 이어받아 직공을 모아 刻字토록하여 行狀과 序文의 板刻작업을 시작하셨다. 그 후 翼元公 후손 監司公 諱 億齡께서 序文을 짓고 訥菴公 諱 瓚과 함께 여러 종친들의 힘을 모았으며 당시 忠淸道 節度使이신 典書公 후손 諱 鋘께서 寺正公으로부터 이 사업을 인수받아 自費로 板刻하고 발간하였으니 이것이 곧 우리의 자랑스러운 一五八0年의 庚辰譜로다. 이는 公께서 시작한 지 六十一年만의 성과요 공으로부터 한 집안 三代에 걸친 집념과 意志의 所産이며 先覺한 여러 선조님들의 협동과 노력의 결정체인 우리 모두의 보물이 탄생한 것이로다.

 이로써 우리 安東金氏 모두는 한 族譜 속에 一家를 이루어 血統 系列과 종친간의 相互關係를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기초로 子子孫孫 族譜를 續刊할 수 있게 되었도다. 또한 우리 종친 모두가 崇祖睦族하고 無窮繁榮할 수 있는 礎石이 마련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런가!

 이에 公께서 歿하신 지 四百六十二년이 지난 지금 安東金氏 提學公派宗會에서는 公의 높고 큰 功과 德을 온 세상과 累世에 널리 顯揚하기 위하여 모든 宗親들의 뜻을 모아 본 功德碑를 세우도다.

         西紀 二千十年 四月 二十八日  

    

      安東金氏提學公派宗會長 金相天 짓고

      提學公 十九代孫         金相宜 쓰고

      安東金氏提學公派 宗親 一同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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