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열전(보유)1-김숙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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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10-03-03 10:52 조회2,905회 댓글2건본문
며칠 전 <유보고려사열전>(遺補高麗史列傳. 1997. 고려숭의회 간)이란 서적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은 고려사, 고려사 절요, 韓國金石全文,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묘지명집성, 각종 묘지문 등 고려시대 모든 역사서를 기초로 하여 편찬한 서적입니다. 이 책 속의 선조님 내용을 자료화 하기 위하여 순서대로 워드화 하여 연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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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보유 고려사 열전(補遺高麗史列傳). 1997. 고려숭의회
1. 86P
別將 김숙흥(金叔興) (?~1011) (*필자 주: 叔興은 안동김씨 시조이신 평장사공 휘 '叔承'을 말함)
현종(顯宗) 1년(1010), 거란(契丹)의 성종(聖宗)이 우리나라를 침입했다가 이듬해 군사를 거두고 돌아갈 때 귀주별장(龜州別將)으로 거란의 퇴로를 막고 중랑장 보량(中郞將 保良)과 함께 적을 쳐 1만여 급을 베었다.
이어 양규(楊規)와 함께 애전(艾田:義州) 지방에서 거란군의 선봉(先鋒)을 꺾어 1천여 명의 목을 베었으나 갑자기 거란의 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종일토록 힘껏 싸웠으나 군사가 모두 죽고 칼과 화살이 다하여 모두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갔다가 전사했다.
그러나 적은 진사(鎭使) 정성(鄭成)의 추격을 받고 압록강을 건너 달아나고 항복했던 여러 성이 수복되었다.
동왕 10년(1019) 8월, 왕은 칙서(勅書)를 내리기를 “증장군 김숙흥(贈將軍金叔興)은 변성(邊城)을 지킨 후로 적군과 싸우는데 용감하여 이미 파죽지세로 공을 이루었으나 마침내 적진에서 목숨을 바쳤다. 옛 공로를 생각하여 마땅히 후하게 상을 내리노라. 그 어머니 이씨에게 한평생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라”고 하였다. 뒤에 또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호를 내리고 공신록권(錄券)을 주었다.
댓글목록
최종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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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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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밝혀야 할 과제는
상기(上記)고려사열전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서 숙승장군은 어머님 성씨가 이씨로 되어 있고,
안동김씨 시조이신 숙승공께서는 대안군 은열공의 2남, 또는 3남이란기록이 있으며,
대안군 배위께서는 대안군영단(大安君靈壇)에 경주최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高麗輔國大安君侍中侍郞 平章事慶州金公諱殷說國大夫人慶州崔氏 之靈壇"
숙승공은 대안군의 아드님으로 태화공의 아우가 되시며 그 분이 곧 안동김씨 시조이시며
위 기록상의 숙승공께서도 동일인이실 것인데,
모친의 성씨가 상이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 문제로군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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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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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그렇습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