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문온공파 시제 봉행에 다녀와서
페이지 정보
김상대 작성일09-10-21 16:27 조회1,718회 댓글5건본문
중시조 충렬공 휘 方慶의 5세이신 문온공 휘 九容의 5세이신 휘 應文 가의 종손(17세) 會자항렬의 尙大(족보등재相會)입니다.
일찍이 부친을 여읜 빈농의 獨子로 가난을 벗어나고자 초등6년 시절에 고향인 경북영천 임고면 덕연동을 뒤로하고 모친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궂은일마다하며 생활고를 극복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10여년에 걸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거치면서 결혼 후 아들하나 딸 하나를 키우는 自手成家로 작금에 이르렀으며, 훌쩍 50세에 접어든 나이와 수많은 지난날을 회고하자니 힘겨웠던 세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부님께서는 휘 應文의 14세이신 榮範의 2자로 추정1955년에 應文선조 종손(14세) 元禮어르신의 死後 養子族譜入籍이 되셨으며, 슬하에 저의 선친인 在鎬로 이어 제가 應文 가의 종손으로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문중행사에서 늘 뒷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잊고서 오늘(2009년10월18일 2009년도 문온공파 시제 봉행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금수단 및 가양리 선영)에서야 문중 어르신들로 하여금 충렬공 3세손이신 양간공 휘 承澤-상락군 휘 昴-문온공 휘 九容의 금수단 시제에서 영천문중 종손으로서 終獻官을 하도록 배려해주셨으며, 부사공 휘 明理 시제참배와 사인공 휘 季友 시제참배와 더불어 장사랑공 휘 自塾선조님의 시제에서 초헌관과 유식례를 올리도록 베풀어주심을 받고서야 그동안 이쪽도 저쪽도 끼지 못하여 못내 서운하여 배회했던 수많은 시절이 한순간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 뭉클 하는 심정과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결혼 때 해놓은 도포를 이제야 입고서 선조님께 참배한 심정이 복받쳐 올라 지금껏 감회가 가라앉지 않는군요.
늦은바 없지 않으나 쇄락한 윗대의 가문을 열성을 다해서 부활시킬 수 있는 제원이 되도록 할 것이며, 문중에 또한 욕됨이 없이 모범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문중의 전통과 예를 물려받지 못한바 있겠으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선 선대의 묘소부터 찾아 익히고 문중직재를 익혀서 평상시 일가친척과 문중에 지나칠 수도 있을 예의범절을 지키고 가문을 재건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력하고 부족함이 많겠으나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마시고 지켜봐 주시기를 앙망하겠습니다.
즈음 2009년 11월 25일(음10.09)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능동 소재 충렬공 시제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상대 올림
댓글목록
솔내영환님의 댓글
![]() |
솔내영환 |
---|---|
작성일 |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많은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김재원님의 댓글
![]() |
김재원 |
---|---|
작성일 |
조상님의 묘역에서 영천 일가 종손을 뵙게되어 더욱 반갑고 감회가 깊었습니다. 타향객지에서 자수성가 하신데 큰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원님의 댓글
![]() |
김재원 |
---|---|
작성일 |
앞으로 시간나시는데로 문중홈페이지에 접속하시어 자주 글남겨주시기 바라고 안.사.연(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 행사때도 시간이 허락하시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 |
김윤식 |
---|---|
작성일 |
영천 대부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귀가하실 때 가양리 선영을 돌아보고 몇 걸음 걷다가 또 돌아보시던 영천문중 종친들 마음이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김남응님의 댓글
![]() |
김남응 |
---|---|
작성일 |
우선 감명깊게 보았읍니다. 혈육의 진함과 종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살릴수 있었읍니다.
흔히 후대들의 참여 의식이 부족하다는 한탄섞인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마는 상대 족숙의 글을 보면서 우리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가문이 더욱 빛날것이며, 숭조의 이념이 살아 숨쉴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여
대종회장으로써 흐믓한 마음 가늘길 없어 감사한 말씀드립니다.
특히 쇄락한 윗대의 가문을 부활시킬수 있는 제원이 되신다든지, 문중에 모범이 되신다든지 하는 등등이 더욱 고무적이고 고마웠읍니다. 많은 관심과 발전을 기대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