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한시의 아름다움-이종묵(2)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9-09-10 08:15 조회1,910회 댓글0건본문
아이놈은 비를 맞고 나가
쌀 내다 팔고 느지막이 돌아오네.
부엌의 계집종 밥 지으려 하는데
섶이 젖어 불이 일지 않는구나.
家僮衝雨去 出糶晩歸旋
竈婢欲炊飯 濕薪火不燃.
金得臣, 「비내릴 때 짓다(雨中吟)」(백곡집 책1)
솔밭을 다 지나니 세 갈래 길
언덕에 말 세우고 이씨 집을 찾았네.
농사꾼 호미 들고 동북을 가리키는데
까치 둥지 있는 마을에 석류꽃 드러나네.
松林穿盡路三丫 立馬坡邊訪李家
田父擧鋤東北指 鵲巢村裏露榴花
李用休, 「느낌이 있어(有感)」(惠寰詩抄)
푸른 치마 입은 여자 목화밭을 나와
객을 보고 몸을 돌려 길가에 서 있네.
흰 개는 멀리 누런 개 따라 가다가
짝 지어 다시 주인 앞으로 달려오네.
靑裙女出木花田 見客回身立路邊
白犬遠隨黃犬去 雙還更走主人前
申光洙, 「협곡에서 본 것(峽口所見)」(石北詩集 卷5)
이러한 작품들은 시인의 생활 체험이 진솔하거니와, 풍속화 같은 그림 속에 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唐風의 시법을 따르면서도 조선인이 조선땅에서 겪은 진실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김득신이 이들 시의 선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위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절로 드러난다.
4. 결론
김득신은 任有後와 함께 숙종 연간 시단의 우두머리로 활동한 인물이며, 김진표, 홍석기, 정두경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시단을 이끌었다. 그는 과거를 통하여 입신한 것 자체가 매우 늦었거니와 벼슬살이가 맞지 않아 곤궁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청안과 목천, 괴산 등지에 거처를 두고, 산수간에 노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금강산, 백마강, 송도, 호서 등지로 떠돌며 시주로 자오하였던 전형적인 시인이다. 장년의 나이에 겪은 전쟁체험과 떠돌이 생활이 두보의 시를 좋아하게 만들었거니와, 그 자신 부지런히 두보의 시를 배웠다. 비록 자질은 노둔하였으나 옛글을 수천, 수만, 수억번을 읽어 학식과 문장 수업을 하였고, 시를 지을 때는 자구를 조탁하여 간담을 쥐어짰다. 唐風을 지향하면서도 일필휘지의 천재적 자질에 의하여 시를 쓴 것이 아니라 학습과 조탁에 의하여 시를 쓰는 송시의 창작방법을 수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빚어진 그의 시는 淸新의 미감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높은 수준에 올랐다. 후대 그의 대표작으로 선발해주고 있는 시들이 대부분 淸新의 미감을 바탕으로 하는 唐風의 구기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주변의 경물을 핍진하게 묘사하여 조선 후기 청신하면서도 진솔한 조선적인 唐風의 선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 풀이>
1) 김득신의 시론에 대해서는 鄭大林과 신범식의 논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2) 김득신은 권필을 가장 높게 평가하였거니와, 권필의 손자 權抗과도 절친하였다.
5) 「搜錄」, 백곡집 부록.
6) 「伏龜亭重創記」, 백곡집 책5.
7) 「新定縣山水可遊者記」, 백곡집 책5.
8)소화시평과 대동시선에는 제목이 「木川道中」으로, 斷이 短으로, 山이 林으로, 故가 古로 되어 있다.
9)대동시선, 大東奇聞, 國朝人物志, 朝鮮名臣錄 등에 「絶句」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첫째수의 欲이 晩으로, 둘째 수의 野가 遠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모두 3수의 연작으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 수도 명편으로 알려져 있다. “저녁 햇살 모랫벌에 깔리자, 가을 풀벌레 소리 숲에 이네. 아이는 송아지 몰며 돌아가는데, 앞산에 내린 비에 옷이 젖었네(夕照轉江沙, 秋聲生野樹. 牧童叱犢歸, 衣濕前山雨).” 역시 회화적이면서 그 속에 풀벌레 소리, 소모 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등이 울려 퍼지고 있다.
10) 金得臣, 號柏谷. 素魯鈍, 所讀倍他人. 韓柳之文, 讀之萬餘遍, 而尤好「伯夷傳」, 讀之一億一萬三千周, 遂名其小窩曰, 億萬齋. 其「湖行」絶句曰: “湖西踏盡向秦關, 長路行行不暫閑. 驢背睡餘開眼見, 暮雲殘雪是何山.” 又曰: “夕照轉江沙, 秋聲生遠樹. 牧童叱犢歸, 衣濕前山雨.” 皆有唐人氣調. 與孫必大, 俱有詠「田家」詩. 孫詩曰: “日暮罷鋤歸, 穉子迎門語. 隣家不愼牛, 吃盡溪邊黍.” 金詩曰: “籬壞翁嗔犢, 呼兒早閉門. 分明雪中跡, 昨夜虎過村.” 兩詩絶佳, 人謂莫可以上下. (東詩話 卷2). 여기서 「湖行」은 곧 「馬上吟」을 가리킨다. 백곡집에는 이 시가 “周遊湖外憶秦關, 每欲西歸得暫閑. 馬上睡餘開眼見, 暮雲殘雪是何山.”로 되어 있다. 이 시에 대하여 國朝人物志에서 ‘語韻이 매우 아름답다’고 했고 朝鮮名臣錄에서는 ‘語韻이 매우 剛健’하다 하였다. 또 모두 一字千鍊하여 공교롭게 하려 했다는 평이 달렸다. 호곡시화에서는 ‘語韻이 더욱 아름답다’ 하였다.
11)백곡집 부록에 실린 「記聞錄」에 보인다. 백곡집 부록에 실린 「搜錄」에는 효종이 이 시를 보고 唐音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칭찬하고 畵工에게 이를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한다.
12) 이들 선집에 ‘寒雲’이 ‘黃雲’으로 되어 있는데 홍만종은 詩話叢林에서 南龍翼의 잘못이라 하였다.
13) 「搜錄」, 백곡집 부록. 壺谷詩話에 남용익이 김득신의 「龍山」시를 箕雅에 수록하였지만 「湖行」시는 語韻이 매우 아름다운데도 수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하였다. 이 작품이 처음 朴世堂이 문집을 간행할 때 이 시를 뺐는데 중국의 秦關과 조선의 湖西가 어울리지 않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백곡집 부록에 호곡시화를 인용하고 이 기록을 병기하였는데, 그 소주에 따르면 책 머리에 이 글이 적혀 있어 옮긴 것이라 한다. 누가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였다.
14) 水村漫錄, 대동시선, 東詩話에는 弊가 壞로, 狗가 犢으로 童이 兒로, 전구와 결구는 “分明雪中跡, 昨夜虎過村.”으로 되어 있다.
15) 孫必大「田家」詩云: “日暮罷鋤歸, 稚子迎門語. 東家不愼牛, 齕盡溪頭黍.” 金柏谷得臣亦有「田家」詩云: “籬弊翁嗔犢, 呼兒早閉門. 分明雪中跡, 昨夜虎過村.” 兩作俱絶佳, 莫上莫下. 睡村李子三謂余曰: “柏谷絶句, 世以爲‘古木寒烟裏’爲絶唱, 而余則曰‘籬弊翁嗔犢’爲勝, 以其模寫情境逼眞故也.” 子三之言信然(水村漫錄). 소화시평(권하)에서는 “닭울음 소리 들판의 주점에서 들려오고, 귓불은 개울의 다리를 건너오네.(鷄聲來野店, 鬼火溪橋渡.)”라는 시구를 들고 홍만종과 함께 새벽길을 걸을 때 쓴 것이라 한 다음, “감정과 경물을 잘 묘사해내었다(寫情境)”고 하였다.
16) 이에 대해서는 閔丙秀, 韓國漢詩史, 태학사, 1996.을 참고하기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