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김방경 시대 능묘와 부도(9) - 1241년 이규보(강화도)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9-08-17 09:18 조회1,942회 댓글0건

본문

 

9) 1241년 이규모 죽음. 묘(강화도)

○ 인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산115. 시도기념물 제15호.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선생의 묘소.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망주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1967년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 재실(齋室)을 복원하였다. 

○ 고려의 무신정권 하에서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명종 19년(1191)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였던 선생은 중국의 모방이 많았던 당시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등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글을 썼다. 또한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서 대장경을 만들 때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지었다. 선생이 남긴 문집은『동명왕편』을 비롯하여『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등 55권으로, 모두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이규보는 김방경 백부 김창과 절친하여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김창과 교유시가 전하고 있으며, 1200년대 전반 개성 앵계리에 거주하였는데 앵계리는 김방경의 만년 본댁이 있는 마을이다. 또한 이규보의 묘는 강화도 길상면에 있는데, 1232년 강화도 천도이후 김방경의 집이 역시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 있었다. 이로 보아 이규보는 김창, 김효인, 최종준 등 김방경 가와 매우 가까이서 교유가 많았던 듯하다.

 이규보 묘 : 강화도 길상면 길직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