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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 金九 先生 第60周忌 追慕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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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작성일09-06-26 17:02 조회2,27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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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원은 조국의 자주독립" 백범 김구 선생 60주기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는 등 한평생을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선생 60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대통령 민정수석, 김양 국가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광복회원 및 독립유공자단체장, 정원식.강영훈 전 국무총리, 이만섭.김재순 전 국회의장 등 정치권과 학계,

유가족,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추모가,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백범기념관은 추모식을 전후해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을 추모하는

특별기획 전시회와 영화제도 개최된다.

추모 특별기획 전시회는 백범 선생의 생애와 주요활동,

효창원에 안장된 애국선열들의 독립활동상을 담았으며

영화제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아일랜드), '나타샤'(그리스), '간디'(인도) 등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영화 5편을 상영한다.

 

26일 오전에는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서 광복회 인천광역시지부 주관으로

안상수 인천광역시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하는 추모식이 열리며

지난 5월부터 진행된 김구 선생 전기 독후감 쓰기대회 시상식도 열린다

.

이와 함께 서거 60주년을 맞아 피살 당시 입었던 피묻은 옷 등 유물 19점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유물들은 25일부터 3일간 서울 용산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일반에게 공개된다.
의복류는 8종 10점으로 조끼적삼과 저고리에는 혈흔과 함께

총탄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어 서거 당시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

 

또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키기 직전

 맞바꿔 김구 선생이 보관했던 회중시계도 공개된다.

같은 날 4.19 기념도서관에서 열리는 학술토론회에서는

김인수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가 '백범 암살의 실체적 진실'을,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가 '21세기 민족사 과제와 백범의 이상'을 주제 발표한다.

 

◈ 백범 김구는 누구인가

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기울어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등을 전개했다.

또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이어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하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무력투쟁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해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지휘했으며,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대일항전을 준비하는 등 27년간 임정의 든든한 주춧돌로서

항일독립운동에 굵은 획을 그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반탁운동과 남북연석회의 참가 등

통일된 완전한 자주독립국 건설을 위해 진력하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는 김구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컷뉴스  violet@cbs.co.kr
 

 

 

 

中, 후난성 백범 선생 저격지 복원 중국 언론 "한·중 우호관계의 상징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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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13:31 베이징=CBS 김주명 특파원 
 
김 구 선생이 임시정부를 이끌고 피난해 있던 중국 후난(湖南)성 창샤(長沙)의

김 구 선생 유적지가 복원작업을 거쳐 오는 5월 1일부터 개방된다고 창샤만보가 보도했다.

창샤만보는 김 구 선생이 1938년 창샤로 피난와 활동했던 난무칭(楠木廳)6호 건물에 대한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5월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난무칭 6호는 1938년 5월6일 백범이 이운한에게 권총 테러를 당했던 곳으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혁명당 본부로 사용된 건물이다.

피격 당시 백범 선생이 이끈 한국국민당과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재건파가 모여

3당 통합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통합 논의에 불만을 가진 이운한이 난입해 권총으로 백범 선생 등을 저격했다.

 

백범 선생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으나 현익철은 숨졌다.

이 신문은 난무칭 6호가 개방되면 이는 지난 2006년 창샤 웨루산(岳麓)산 공원에 세워진

김 구 기념관에 이어 한·중 우호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jm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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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관리자
작성일

  태철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사진이 안 보입니다.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게재할 사진을 본 홈 <기타소개>의 이미지사랑방에 올린 다음, 해당 사진을 복사하여 이곳에 다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