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명에 서거한 뉴스에 파묻혀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지난달 27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향년 89세시니 어찌 보면 천수를 다 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소식을 접할 때 내가 사는 이 땅에서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구나 라는 가슴 아픔이 다가왔습니다.
화학을 전공한 제가 철학계의 거인이신 김태길 선생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은 <성숙한사회 가꾸기모임>에서였습니다. 어쩌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이유에서라고 생각되지만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동대표라는 큰 벼슬을 하게 되면서 선생님과의 사귐은 잦아졌습니다. 선생님이 수재시라는 것은 그가 일제시대에 청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경도의 제3고등학교를 거쳐 동경대학 법문학부에 진학하셨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저의 가슴에는 와 닿습니다. 일제시대에 중학교 5년을 졸업한 저로서는 선생님의 학력은 당시의 저희들에게는 선망의 적이 아닐 수 없는 수재가 걷는 코스였기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는 바람에 서울대학교의 졸업생이 되셨지만 또 그 경력만 가지고도 당시 우리 학계에 군림하시고도 남음이 있는데도 또 다시 미국에 건너가셔서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신 것을 보면 그 분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분의 옆에 앉아서 식사를 나누던 때의 나의 마음의 편안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때마침 선생님의 후배 되시는 김수용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님이 『아름다움의 미학과 숭고함의 예술론』이라는 귀한 저서를 내셨는데 이 책에 서평을 쓴 한겨레신문의 고명섭님이 <‘숭고한 죽음’은 공동체를 깨운다>라는 그 서평의 제목을 크게 내거신 것을 보고 김태길 선생님의 서거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봤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을 그대로 요약해준 글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