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제62회 안사연 정기산행(운길산) 후기

페이지 정보

김발용 작성일09-04-09 21:51 조회2,071회 댓글1건

본문

 

제62회 안사연 정기산행(운길산) 후기

                        글-김항용,  사진-김발용

◈ 일시 : 2009년 3월 8일. 10:00-15:00시
◈ 장소 : 남양주시 운길산
◈ 참가 : 윤만. 태우. 항용. 발용(부부)

  경로 : 운길산역 만남--운길산 등산--수종사--정상(610m)--하산--하남시--귀가


 3월초의 봄볕은 따뜻했다. 일요일 아침 옥수역 플랫홈에는 등산복 입은 이들 약 200여 명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우님과 이곳에서 조우하여 운길산역으로 향하는 전철 안은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릴 여유도 없이 가득했다.

 10시 경 운길산 역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 나오는 길은 그야말로 대장관이었다. 다양한 칼라의 등산복을 입은 약 2000여 명이 온 역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평상복은 찾을 수가 없다. 온갖 물감이 다 칠해져 있는 역사 앞에서 만난 일행은 단촐했다. 모두 5명.

62thsan001.jpg

    운길산역 앞 모습

 

 발용님이 타고 오신 차로 운길산 아래까지의 발품을 크게 덜었다. 이곳은 전철역이 생기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음식점들이 많아졌다. 풍속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잠시 출발 준비를 하고 수종사로 오르는 급경사길을 타기 시작했다. 힘든 줄 몰랐다. 길은 차도로도 쓰이는 것이라 넉넉하여 좋았다.

62anun001_1.jpg

 등산 안내도

 

 가끔씩 숲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도로로 나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며칠 전 일본으로 <충렬공 일본 정벌 답사>를 다녀오신 발용님과 태우님 두 분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불과 1시간 만에 수종사에 올랐다.

62thsan002.jpg

     수종사 입구의 일주문-운길산 수종사

 

62thsan003.jpg

   일주문에서 일행

 

62anun002_1.jpg

  일주문 바로 안에 있는 미륵불상

 

 수종사(水鍾寺)는 긴 역사를 간직한 채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긴 국토를 위 아래에서부터 흘러 와 만나는 장엄한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예술처럼 서 있었다. 등산객들로 가득한 절 안은 활기가 넘쳤다. 일행은 이곳저곳의 역사물과 예술품들을 열심히 촬영하고 감상하다가 명물인 은행나무 아래서 멀리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감상에 빠졌다.

 

62anun003_1.jpg

  산신각

 

62anun013_1.jpg

 두물머리를 감상하는 찻집-손님이 너무 많아 못들어 갔다.

 

 1439(세종21년)에 세운 태종 태후 정의옹주의 부도, 1460년(세조6)에 세운 오층석탑, 단아한 대웅보전 문살의 멋, 범종, 은행나무, 어마어마한 오석에 새긴 수종사 사적기---

62thsan004.jpg

    부도와 오층석탑

 

62anun014_1.jpg

 부도

 

62anun004_1.jpg

 부도 해설판

 

62anun006_1.jpg

 오층석탑

 

62anun005_1.jpg

 오층석탑 해설판

 

62thsan005.jpg

   부도와 오층석탑 앞에서

 

62thsan006.jpg

   대웅보전

 

62anun007_1.jpg

 대웅보전 문살

 

62thsan007.jpg

    범종 종각

 

62thsan008.jpg

   멀리 두물머리가 보인다.

 

62anun008_1.jpg

 수종사의 명물 은행나무

 

62thsan009.jpg

  은행나무 아래서

 

62thsan010.jpg

  수종사 사적기 오석

 

 이윽고 다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는 길엔 다산선생의 시가 새겨진 목판들이 이정표와 함께 서 있다. 한결 정스럽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여유있는 산행이 되어 좋았다. 첫 이정표 목판에 새겨진 시는 아마도 1801년(순조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가 돌아와 지은 시인 것 같다. 옮겨 본다.

62anun009_1.jpg

  <소내 집에 돌아오다>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문 앞에선 봄물이 흘러가누나.

기쁜 듯 약초밭 다다라 보니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이네.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남녘땅 수 천리를 노닐었으나

어디에서 이런 언덕 찾아보리오.


 오랜 유배길에서 돌아와 아름답고 정겨운 고향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어 조금 더 오르니 작은 정상이 보이며 절상봉(522m) 표석이 고목을 배경으로 하고 서 있다. 정상  전 350m와 310m 전방에도 이정표와 함께 다산의 시가 나의 발길을 잠깐씩 잡는다.

62thsan012.jpg

   절상봉에서

 

62thsan013.jpg

   고목

 

62thsan014.jpg

 

62anun010_1.jpg

 

 이곳을 지나자 넓은 공간이 나타나며 약 200여 명의 등산객들이 모여 시산제를 모시거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62thsan015.jpg

 

 다시 약 5분 여를 더 오르니 정상(610m)이 나타났다.

62thsan016.jpg

62thsan017.jpg

   정상에서

 

 그런데 한 옆에서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들린다.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잘 만들어진 나무 데크 내부를 보니 한 60대쯤 보이는 신체 건강한 남성분이 줄넘기 하나를 들고 음악에 맞추어 운동인지, 서커스인지, 무용인지, 사교춤인지 알 수 없는 종합 예술을 펼친다. 보는 사람들이 더 신났다.

62anun016_1.jpg

 

 이곳에도 다산의 시가 있다.

62anun011_1.jpg

  <결혼 60년>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 해 같네

살아 이별이나 죽어 이별이 늙을수록 재촉하나

슬픔 짧고 즐거움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오늘밤 목란사는 소리 더욱 좋을씨고

그 옛날 붉은 치마의 유묵 아직 남아 있네

쪼개졌다 다시 합한 것 그게 바로 우리 운명

한 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맡겨 두노라


 정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적당히 하산하여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약간 달리하여 하산했다.

62anun012_1.jpg

 하산길의 김영랑 시

 

 발용님 내자님께서 운전하시는 차로 하남시로 돌아와 한참이나 토론과 정담을 나눈 뒤 귀가하는 길은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끝)

댓글목록

김재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이
작성일

  저도 정말 가보고싶은 산행을 하셨습니다
다산정약용 선생께서 강진에서 18년동안 유배후 고향집에 가셔서 남기신글
영랑김윤식 선생께서 강진 생가에서  남기신글 정말 두분의 글이 강진을 그려놓은것만 같아
더욱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