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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위] 또 미확인 글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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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9-01-10 11:38 조회2,091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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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중 충렬공 관련 기사인데 한 글자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면 왼쪽 큰 글자인데, 그림문자로 만들어 임시로 끼워 넣었습니다.

종친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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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JPG

 

○【신사년】 8월. 왕이 공주(公主)와 함께 경상도에 거둥하였다.

정묘일(4일)에 왕경(개경)을 출발해 정축일(14일)에 안동에 도착했다.
안렴사(按廉使) 민훤(閔萱)은 비굴하게 남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를 내세우기 좋아해서
보고사항을 오로지 혼자서 도맡아 왕에게 아양을 떠니 사람들이 그를 ‘내안렴(內按廉)’이라고 하였다.
왕지별감(王旨別監) 임정기(林貞杞)는 성질이 간교한데,
백성들에게서 가혹하고 사납게 재물을 긁어모아
권귀(權貴)를 섬기니 남에게 잘 보이면서 대중(大衆)의 비난을 막았다.
이런 연유로 하루가 다르게 그들을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서 왕의 총애가 더욱 두터워졌다.
왕이 같은 날 민훤과 임정기에게 홍색 띠를 하사하자,
사람들이 “지금 사또[邑宰]가 붉은 띠를 두른 것은 모두 백성들의 피로 물들여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수령들은 모두 왕의 칭찬을 받으려고 혈안이었다.
보주부사(甫州副使)[지금의 예천군(醴泉郡)이다.] 박린(朴璘)과
안동부사(安東副使) 김군(金頵)은
음식을 푸짐하고 사치스럽게 차려 왕을 영접하고, 채붕(彩棚)을 매고 풍악을 벌였다.
그러나 판관(判官) 이회(李檜)는 백성들의 노력을 가엾이 여겨 부비(浮費 : 소요 경비)를 잘 살펴서 아끼니
내료(內僚)들이 모두 그를 비난했다.
이 때문에 이회를 보주로, 박린을 안동으로 서로 옮겼다.

 

댓글목록

김행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행순
작성일

  문 문 자 속에 검을 현 자 들어가 있는 글자는, 당나라 때 시에 쓴 사례가 있기는 한데, 음과 뜻을 모른다고 되어 있대요. 인용된 싯구를 보면, 그냥 玄(검을 현)자가 아닌가 하는 짐작이랍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高麗史節要 卷之二十&gt; 忠烈王[二]&gt; [辛巳七年 (元 至元十八年)]에 보면,
유사내용을 적은 것이 나오는데 (즉, 아래 맨 아래줄에 苟容自衒라 나오는데,
衒[현] 이자를 그렇게 보거나 쓴 것은 아닐지요)

○八月丁卯,王,與公主,幸慶尙道,甫州副使朴璘,
安東府使金頵,迎迓,供億極豐侈,左右譽之,
安東判官李檜,惜民力,省浮費,又拙於進退,
內僚,皆毀之,於是,移檜於甫州,璘於安東,按廉閔萱,
苟容自衒,專擅啓事,以媚於王,人謂內按廉。
&lt;한자사전 사이트 운영자의 답&gt;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행순 님, 대부님. 감사합니다.
동국통감이나 고려사절요의 '衒(현)'하고 음과 뜻이 통하는 글자인 듯합니다.

김국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국회
작성일

  ○신사 8월에 왕과 공주가 경상도에 행차하였다. 정묘일에 서울을 떠나 정축일에 안동에 이르렀다. 안렴사 민훤은 구차한 얼굴로 스스로를 내세워 장계 보고를 멋대로 하여 왕에게 아첨하니, 사람들이 ‘내안렴’이라 불렀다. 왕지별감(王旨別監) 임정기(林貞杞)는 간교하게 가렴주구에 힘쓰며, 긁어모은 세금으로 권신과 귀족을 섬김으로써 여럿을 기쁘게 하고 비방을 막았다. 이 때문에 칭찬이 날로 이르렀고 왕의 총애가 더욱 커졌다.
왕이 같은 날에 임정기와 민훤에게 홍색 띠를 하사하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 邑宰가 두른 붉은 띠는 모두 다 생 사람의 피로 물든 것이다.” 하였다.
이때 수령들은 모두 왕의 눈에 들고자 하였다. 보주부사(甫州副使)[지금의 예천군(醴泉郡)이다.] 박린(朴璘)과 안동부사(安東副使) 김군(金頵)은 음식을 푸짐하고 사치스럽게 차려 왕을 영접하고, 채붕(彩棚)을 매고 풍악을 벌였다.
그러나 판관(判官) 이회(李檜)는 백성들의 노력을 가엾이 여겨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기에 힘쓰니 내료(內僚)들이 모두 그를 비방하였다. 이 때문에 (왕이) 이회를 보주로, 박린을 안동으로 옮겼다.

○八月丁卯,王,與公主,幸慶尙道,甫州副使朴璘,安東府使金頵,迎迓,供億極豐侈,左右譽之,安東判官李檜,惜民力,省浮費,又拙於進退,內僚,皆毀之,於是,移檜於甫州,璘於安東,按廉閔萱,苟容自衒,專擅啓事,以媚於王,人謂內按廉。
&lt;高麗史節要 卷之二十&gt; 忠烈王[二]&gt; [辛巳七年 (元 至元十八年)]
[졸역]○8월 정묘일에 왕과 공주가 경상도에 행차하였다. 보주부사 박린(朴璘), 안동부사 김군(金頵)이 마중을 나왔는데, 모두 극진하게 대접하여 풍성하니 신하들이 그를 칭찬하였다. 안동판관 이회(李檜)는 백성의 수고를 아끼고 헛된 비용을 줄였으며, 또한 오고 감에 조촐하니 신료들이 모두 그를 비방하였다. 이 때문에 이회를 보주로, 박린을 안동으로 옮기었다.
안렴사 민훤(閔萱)은 구차한 얼굴로 스스로를 내세워 장계 보고를 멋대로 하여 왕에게 아첨하니, 사람들이 ‘내안렴(內按簾)’이라고 불렀다. *내안렴 : ‘내시 같은 안렴사’라고 민훤을 비꼬아 부른 호칭.
&lt;고려사절요 제20권&gt; 忠烈王 辛巳七年 (元 至元 18年)&gt; : 서기 AD 1281년

*用賓慟評 : 안동부사 김군(金頵)은 보주부사 박린(朴璘)과 함께 왕과 공주를 대접하기에만 힘쓰고 백성의 원망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부끄럽게도 파렴치한 안렴사 민훤(閔萱)과 같이 오명을 남겼으니, 아! 오롯이 백성을 위한 안동판관 이회(李檜) 앞에 세 사람 모두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로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대부님, 학위 논문 준비는 잘 돼 가시는지요?
그렇잖아도 바쁘신 일 끝나시는 대로 전화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혹 그 전이라도 연락 드려도 되는지요?

김국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국회
작성일

  학위논문은 1월초에 최종 논문심사를 무사히 통과하여
2009년 2월 25일자로 학위 수여식을 치를 예정입니다.
ㅇ학위제목 :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한문과 교수 학습 적용 방안
ㅇ학위구분 : 공주대학교 한문교육학과 한문교육학전공 교육학박사
  이제야 촌력이나마 주변을 돌아볼 겨를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대부님, 소식 감사합니다.
설밑이니 대부님 마음 편하시게 과세하신 다음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시간 나실 때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