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방의 안동김씨 혼맥(1)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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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11-19 12:47 조회2,614회 댓글0건본문
안동지방의 안동김씨 혼맥
(1)광산김씨
안동지방에 광산김씨하면 예안파를 우선 들 수 있다.
예안파의 입향조는 광산김씨 시조인 金興光의 20대손인 金孝盧라고 전해진다.
김효로는 광산김씨 양간공파/밀직부사공파/전직공파/安東예안파 입향조로서 1454(조선 단종2년)에 태어나1534(중종29년)에 81歲.로 죽었다.
그는 조선 전기의 학자로서 字는 순경(舜卿), 호는 농수(聾叟), 아버지는 증참의(贈參議) 회(淮)이며, 어머니는 증숙부인(贈淑夫人) 안강노씨(安康盧氏)로 현령(縣令) 응(膺)의 딸이다.
1480년(성종 12) 생원시에 3등 8인으로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일삼지 않고 시골에 살면서 청렴 결백으로 신조를 삼고 남과 사귀되 구차하지 않았으며 남의 악함을 보고도 관용을 베풀었다. 제사를 받들되 성경을 다하고 자손을 가르치되 효제로써 하였다. 부귀를 구하지 않고 조행이 탁이 하였으므로 향천을 받았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陽城李氏로서 아버지는 郡守 持이며 할아버지는 세종때 천문학자로 칠정산내외편을 짓기도한 판중추부사 졍평공 純之이다. 묘(墓)는 안동시 녹전면 죽송동에 있는데 바로 안동김씨의 중시조인 충렬공 김방경의 묘소 바로 위에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서는 충렬공 김방경의 묘소가 약 100여년간 실전되었었는데. 이때 김효로의 묘소를 썼으며 그의 증손인 近始齋 金亥의 묘를 김효로의 묘 앞에 쓰려다가 김방경의 묘지석이 발견되어 안동김문에게 전해 김방경이 묘소를 복원하고 김해는 그 부근에 장사지냈다가 후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김방경의 묘 앞에 있는 묘비는 근래에 새로 세원 것과 원래의 비석이 나란히 있는데 새로 세운 비석은 원래의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다고 되어 있으며, 그 글은 벽오 이시발이 지었으며 이시발의 문집인 벽오유고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비문의 내용중에 [묘는 예안현 관내 서릉동에 있고, 神道는 고려 왕명으로 비를 세움이 있었다(고 하나) 세대가 오래되어 징험할 수 없다. 후손인 예생(禮生)이 일찍이 이 현(☞ 예안현)을 살펴보고, 비석을 세우고 표식을 하였는데, 이제는 이 비석과 더불어 깨져 버렸다. 아! 뒷사람이 어떻게 (충렬)공의 묘임을 알 수 있겠는가]라는 기록으로 보아 후손인 김예생이 예안현감으로 재직시(1495-1498)비갈을 세웠음을 알 수 있고 그후 실전되어 1534년 김효로가 죽어 이곳에 묻혔으며 김해의 장사때인 1594년,( 김해는 1593년 겨울에 죽어 1594년 봄에 장사지냈다고 그의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에 비로소 발견되었으니 김방경의 묘소는 김예생이 예안현감을 그만둔 후 바로 실전되었다고 하더라도 96년간 실전된 셈이다.
지금도 광산김씨에서는 예안 입향조인 김효로의 묘에 제를 올리기 전에 김방경의 묘소에 먼저 예를 올린다고 하며 양 집안간에는 돈독한 관계가 유지 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광산김씨와 안동김씨의 혼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예안 입향조인 김효로의 5대조는 章榮公 金稹인데 할어버지는 良簡公 金璉, 아버지는 정경공(貞景公) 사원(士元)이며 어머니는 순정군부인(順政郡夫人) 순흥안씨(順興安氏)로 문성공(文成公) 안향(일명 안유(裕)의 딸이다. 貞景公 金士元의 아들로 1292년에 태어났다.
1307년(충렬왕 34) 문과 추장제술과(秋場製述科)에 급제하여 1332년(충혜왕 3)에 중현대부(中顯大夫) 성균좨주(成均祭酒)로 통례문(通禮門) 부사(副使)를 겸하고 1333년(충숙왕 2)에 광정대부(匡靖大夫) 정당문학(政堂文擧)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과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상호군(上護軍)이 되었고 1342년(충혜왕 4)에 지공거(知貢擧: 과거의 총책)로 인재를 가장 많이 뽑았고 1333년(충숙왕 후 2)의 호적이 있으며 시호는 장영공(章榮公)이다. 묘(墓)는 개풍군 흥교면 조문리였으나 실전되었다가 1828년(순조 29)에 후손 성은(性?)과 수(燧)등이 다시 찾아 수호하였다.
配는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 복주(안동)권씨(福州(安東)權氏) 父 광정대부(匡靖大夫) 첨의평리 상호군(僉議評理 上護軍) 윤명(允明), 祖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병부상서 상호군(兵部尙書上護軍) 제(濟), 曾祖 병부상서 상장군(兵部尙書上將軍) 득공(得公), 外祖 삼중대광 세자사(三重大匡 世子師) 충렬공(忠烈公) 안동 김방경(安東 金方慶)이다. 그러니까 예안입향조 김효로의 5대조모인 안동권씨는 김방경의 외손녀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아마도 예안쪽으로 낙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정해본다.
김효로의 증조할머니 또한 안동김씨로서 繕工令 金瑞麟이나 족보를 확인한 결과 후안동김씨였다.
안동김씨와 광산김씨의 혼맥은 안동지방의 예안파만이 아니다.
광산김씨를 대표하는 대파로서는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직장공파가 있는데
그중에 문정공파는 문정공 김태현을 파조로 삼고 있는데 김태현의 아들3형제가 바로 김光軾(총부의랑),
김光轍(文敏公), 김光載(文簡公)이다. 문간공 김광재는 바로 충렬공 김방경의 손자인 평장사 도첨의정승 양간공 김승택의 사위이다. 김광재의 아들 군기감 金興祖는 고려말 요승 신돈을 죽이려고 김방경의 현손인 金齊顔, 金精, 그리고 조사공, 윤희종등과 모의하다 실패하여 역살되는 불운을 겪는다.
양간공파는 그의 증손에서 光利, 英利, 成利, 安利, 天利 5형제로 분파되는데 英利(軍器監事)계와 天利(密直副使)계가 유명하다. 밀직부사 천리의 5대손이 바로 예안파 입향조인 김효로로 이후 안동지발의 명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장손인 김광리의 배위는 원주원시 원관의 딸이다. 원관의 큰 사위가 충렬공 김방경의 손자인 김승용이니 김광리(광산김씨)와 김승용(안동김씨)은 동서간이며 문정공 김태현의 아들 김광재 또한 김승용의 동생인 김승택의 사위이다.
한편 英利(군기감사)계열에서는 광산김씨가 자랑하는 집안으로 정승이 5명 대제학이 7명이나 배출하였는데 모두 군기감공(영리)의 현손인 김철산의 후손들이다. 김철산의 배위가 또한 안동김씨이니
충렬공 김방경의 현손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의 손녀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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