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온공 종택 상량문(文溫公 宗宅 上樑文)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8-08-05 12:57 조회1,815회 댓글3건본문
문온공 종택 상량문(文溫公 宗宅 上樑文)
문온공(金九容, 號 惕若齋)은 안동김씨의 중시조이신 충렬공(金方慶)의 현손으로 고려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시면서 후학을 길러내고 판전교시사로서 외교차 명나라에 행례사로 가시어 현지에서 순국하신 정치가이며 또한 동국시인이라 불져지는 시인이셨다.
종택은 개성 서재동에 있었는데 충렬공의 본댁이 있었던 앵계리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문온공의 손자 직제학공(金孟獻)은 한양의 명례방 수하동(현 중구 수하동과 장교동근처)청계천변 남산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뜯어 옮겨 지으셨다. 그후 첨정공(金自壤), 청도군수공(金禮生), 경상좌병사공(金胤宗),으로 이어져 별제공(金震紀), 의금부도사공(金大涉)에 이르러 새로이 집을 마련하고 옛집은 사위인 문간공(芝峰 李晬光)에게 주어 그의 아들인 동주(李敏求)를 거쳐 동주의 외손(申弼華[平山人])으로 이어져 왔다.
의금부도사공(金大涉)께서는 전장과 선조의 유택이 있는 영평에 별서를 지으시려고 하시어 그 터전을 마련하시었고, 도사공의 아드님이신 철원부사공(金矱)께서는 금수정을 복축하시고 이어서 현재 이 자리에 별장을 완공하시었다.
한양에 있었던 종택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알 길이 없고 조선말기부터 이곳 별택을 종택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한국전쟁(1950년)때 종택 전부와 금수정이 모두 불타고 말았다.
그후 금수정은 1989년 포천시에서 복원하여 향토유적 17호로 지정되었으나, 종택은 주춧돌만 나뒹굴고 있던중, 2005년 포천시에서 종택의 전체를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소장;박경식 박사)에 의뢰하여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겨울에 발굴조사가 완료되어 보고서가 발간되었으며, 2007년 드디어 경기도문화재137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3월에 포천시에서는 종택의 안채와 중문채등 일부만을 우선 복원하기로 하고 고건축전문업체인 금세기종합건설에 4억7천여만원에 공사를 맡겨 2008년 4월 28일부터 시작하여 오늘 상량을 하게 되었다.
이 공사에 참여한 분은 포천시장 서장원, 주민생활지원국장 김광준, 문화체육과장 유기문, 문화예술계장 한기남, 담당 노은종. 시공업체는 금세기종합건설주식회사 (대표 최영구 ) 현장소장 이상연, 현장대리 김정국, 목수 엄기안, 석공 이병갑, 와공 원용주, 미장 김명철 등 여러분이 수고하셨다.
종택을 복원하는 현재 종손은 문온공 21대손인 光道이며, 차종손은 22대손인 龍雲 이다.
이에 앞으로 남은 사랑채와 솟을대문, 담장과 부속 건물들이 2차로 복원될 예정이며 선조님이 모셔저 있는 금수단과 포천 절경인 금수정과 주위의 산재된 시인묵객의 암각문을 비롯하여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어울어져 후손들에게 교육의 마당이 될 것이다.
앞으로 문온공의 후손이 대대손손 번창하고 종택이 완전복원되어 명실상부한 문화유적으로 무궁히 이어져 가기를 기원한다.
서기 2008년 8월 11 일
문온공 17대손 솔내 金榮煥 글을 짓고
[한글 2007]한양해서체로 인쇄하였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 |
김윤식 |
---|---|
작성일 |
대부님, 소식 감사합니다.
종택 복원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길 기원합니다.
관계자 여러분 모두 한여름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강건하시길 빕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 |
관리자 |
---|---|
작성일 |
문온공 종택 상량문, 감사합니다. 본 홈 문온공파란에 올리겠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 |
김항용 |
---|---|
작성일 |
문화재 재료 138호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