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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 할아버지께서 명나라 행례사로 가신 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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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8-07-29 07:57 조회1,5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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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2권

신우 3(辛禑三)

갑자신우 10년(1384), 대명 홍무 17년

○ 판전교시사 김구용(金九容)을 요동에 보냈다.
과거에 의주 천호 조계룡(曹桂龍)이 하정사를 호송하여 요동에 이르니,
도지휘 매의(梅義)가 속여 말하기를,
“내가 너희 나라에 대하여 공사가 있을 때마다 마음을 다해 시행하여 주었는데,
너희 나라에서는 어째서 한 번도 문안을 하지 않는가." 하였다.
재상이 그 말을 듣고 믿어서
구용을 행례사(行禮使)로 삼아
편지와 백금 1백냥, 저마포(苧麻布) 각 50필을 주어 보냈다.
총병 반경섭(潘敬葉)ㆍ왕여(汪與)ㆍ매의 등이 말하기를,
“남의 신하된 자는 도리상 사적인 교제는 못하는 것인데, 어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고,
드디어 붙잡아 경사로 돌아갔다.
구용을 대리(大理)에 귀양보냈는데, 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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