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承旨) 김자중(金子中) 김시양 관련시- 청음집(김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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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8-06-08 21:37 조회1,455회 댓글1건본문
승지(承旨) 김자중(金子中)이 관서(關西) 지방을 안찰하러 가는 데 주다 이름은 김시양(金時讓)이다.
서번에다 은신 내려 귀녕함을 허락하니 / 西藩銀信許寧親
부월 서로 주고받음 근신끼리 하게 됐네 / 授鉞交符輟近臣
주작문서 지난날에 분명 비틀비틀 길 갔는데 / 朱雀向來明跋躠
눈 덮인 산 오늘날에 다시 삐쭉삐쭉하네 / 雪山今日重嶙峋
관문에는 고각 울려 위엄 소리 장한 데다 / 關門鼓角威聲壯
벽 위에는 정기 꽂혀 호령 다시 새로우리 / 壁上旌旗號令新
내 우습네 서생에게 말채찍이 없는 탓에 / 自笑書生無馬策
말 주면서 옛날 어진 사람에게 비하누나 / 贈言聊比古仁人
김기종(金起宗)이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하여 체차되어 돌아가고, 자중이 영남으로부터 돌아와서 절부(節符)를 바친 지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이른 것이다.
[주C-001]김시양(金時讓) : 1581 ~ 1643.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초명은 시언(時言)이며 자는 자중(子中)이고, 호는 하담(荷潭)이다. 광해군 때 전라 도사(全羅都事)로 있던 중에 향시(鄕試)에서 출제한 시제(試題)가 왕의 실정을 비유한 것이라 하여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가 영해(寧海)로 이배되었다.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예조 정랑, 수찬, 교리, 응교,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가 정묘호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평안도관찰사 겸 체찰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병조 판서, 강화 유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하담집(荷潭集)》, 《부계기문(涪溪記聞)》이 있다.
[주D-001]은신(銀信) :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게 알 수가 없으나, 관원들에게 휴가를 줄 때 주는 표신 같은 것을 말하는 듯하다. 조태억(趙泰億)의 《겸재집(謙齋集)》 16권의 봉정구만윤(奉呈舊灣尹)에 “옥당에서 오랫동안 하늘에 오른 것 같았는데, 은신이 거연히도 임금 곁서 내려왔네.〔玉堂久矣如天上 銀信居然下日邊〕” 하였다.
[주D-002]주작문(朱雀門) : 평양성에 있는 성문 이름이다.
[주D-003]서생에게…… 탓에 : 옛날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말채찍을 선사하였다.
[주D-004]말…… 비하누나 : 옛날 어진 사람은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일찍이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적에 노자를 만나보았는데, 하직하고 떠날 때 노자가 전송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부귀한 자는 전송하면서 재물을 주어 전송하고, 어진 자는 전송하면서 말을 주어 전송한다고 한다. 나는 부귀한 자가 아니니 말을 주어 그대를 전송하겠다.” 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청음집 제6권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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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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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 홈 김시양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