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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장사공(휘 숙승) 자료(4)-한국고전번역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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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4-11 23:18 조회1,4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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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사절요>에서

 1)高麗史節要 卷之三. 顯宗元文大王

[辛亥二年 宋 大中祥符四年,契丹 統和二十九年]

春正月 <중략>

辛卯,龜州別將金叔興,與中郞將保良,擊丹兵,斬萬餘級

 

 八月,○敎曰,贈將軍金叔興,自守邊城,勇於赴敵,旣成功於破竹,終致命於伏弢,言念舊勞,合加優賞,其母李氏,歲給粟五十碩,以終其身。

 

○壬寅,楊規,復邀擊丹兵前鋒於艾田,斬一千餘級,俄而,契丹主,大軍掩至,規,與叔興,終日力戰,兵盡矢窮,俱陷陣死之,規,以孤軍,旬月之閒,凡七戰,所殺丹兵,甚衆,奪被擄人三萬餘口,獲駞馬,器械不可勝數,丹兵,爲諸將鈔擊,又因大雨,馬駞疲乏,甲仗皆失,癸卯,乃得渡鴨綠江引去,鎭使鄭成,追之,及其半渡,尾擊之,丹兵溺死者甚衆,諸降城,皆復之

 

○贈楊規,工部尙書,叔興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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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신해 2년(1011), 송 대중상부 4년ㆍ거란 통화 29년

<정월>

○ 신묘일에 귀주 별장(龜州別將) 김숙흥(金叔興)이 중랑장(中郞將)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 군사를 쳐서 머리 1만여 급을 베었다.

 

<8월> 

8월에 교하기를, “증 장군(贈將軍) 김숙흥(金叔興)이 스스로 변성(邊城)을 지키면서 적군과 싸우는 데 용감하여 이미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공을 이루었으나 마침내 진중에서 목숨을 바쳤다. 옛 공로를 생각하니 마땅히 후하게 상을 주어야겠다. 그 어머니 이씨에게 한평생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라." 하였다

 

○ 임인일에 양규가 다시 거란 군사의 전봉을 애전(艾田)에서 맞받아 쳐서 머리 1천여 급을 베었다. 조금 후에 거란주의 대군이 불시에 이르자, 양규와 김숙흥이 종일토록 힘껏 싸웠으나 군사가 모두 죽고 화살이 다하여 모두 적의 진중에 뛰어들어 죽었다. 양규는 후원도 없는 외로운 군사를 거느리고 한 달만에 모두 일곱 번 싸워 거란 군사를 매우 많이 죽이고 사로잡혀 있던 사람 3만여 명을 빼앗았고, 낙타ㆍ말ㆍ무기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얻었다. 거란 군사는 여러 장수들에게 초격(鈔擊)되었고, 또 큰 비로 인하여 말과 낙타가 지쳤으며 무기를 모두 잃어버렸다.

계묘일에야 압록강을 건너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는데, 진사(鎭使) 정성(鄭成)이 이를 추격하여 그들이 반쯤 건너갔을 때에 뒤에서 치니 거란 군사 중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항복했던 여러 성이 모두 수복되었다.

○ 양규에게 공부상서를, 김숙흥에게 장군(將軍)을 증직하였다

 

 

 2) 高麗史節要 卷之三. 顯宗元文大王. [己未十年 宋 天禧三年,契丹 開泰八年]

○九月甲寅朔,太史,奏,日食陰雲不見。○賜楊規,金叔興,功臣錄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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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기미 10년(1019), 송 천희 3년ㆍ거란 개태 8년

○ 9월.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에게 공신 녹권(功臣錄券)을 내려주었다.

 

 3) 高麗史節要 卷之三. 顯宗元文大王 [甲子十五年 宋 天聖二年,契丹 太平四年]

○夏四月,黑水靺鞨,古刀買等,來獻土物。○賜楊規,金叔興,三韓後壁上功臣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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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갑자 15년(1024), 송 천성 2년ㆍ거란 태평 4년

○ 여름 4월에 흑수말갈의 고도매(古刀買)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에게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

 

 4)高麗史節要 卷之四. 靖宗容惠大王. [丙戌十二年 宋 慶曆六年,契丹 重煕十五年

○十一月,制曰,大中祥符三年,丹兵,入寇,西北面都巡檢使楊規,副指揮金叔興等,挺身奮擊,連戰破敵,矢集如蝟毛,俱沒陣下,又於大中祥符十一年,丹兵闌入,兵部尙書,知中樞院事姜民瞻,爲元帥,鼓譟奮擊,大敗於盤嶺之野,丹兵,奔北,投戈委甲,行路隘塞,民瞻,乃俘斬萬級,追念其功,合行褒奬,可圖形功臣閣,以勸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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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병술 12년(1046), 송 경력 6년ㆍ거란 중희 15년

○ 11월에 제하기를, “태중상부(太中祥符) 3년에 거란 군사가 침입하자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楊規)와 부지휘(副指揮) 김숙흥(金叔興) 등이 앞장서서 싸워 연달아 적을 물리치고 몸에 화살이 고슴도치 털처럼 박혀 모두 전쟁터에서 죽었고, 또 태중상부 11년에 거란 군사가 몰려 들어오자 병부상서 지중추원사 강민첨(姜民瞻)이 원수가 되어 북치고 소리 지르며 쳐들어가 반령(盤嶺) 벌판에서 크게 이기니, 거란 군사가 패해 달아나며 창을 던지고 갑옷을 버려 길이 꽉 막혔다. 민첨이 사로잡아 목벤 것이 만 급(級)이나 되어 그 공을 거슬러 생각건대 포창하여 장려하여야 마땅하니, 그 형상을 공신각(功臣閣)에 그려 붙여서 훗날의 사람들을 권장해야 한다." 하였다.

 

2. 동사강목 제6하. 신해년 현종 2년(송 진종 대중상부 4, 거란 성종 통화 29, 1011)

○ 귀주 별장(龜州別將) 김숙흥(金叔興)이 거란 군사를 요격(邀擊)하여 크게 패배시켰다.

거란 군사가 후퇴하였다. 17일(신묘)에 김숙흥중랑장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 군사를 쳐서 1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 양규(楊規)가 거란 군사를 요격하였다. 연일 싸워서 패배시켰다.

18일(임진)에 양규가 거란 군사를 무로대(無老代)에서 습격하여 2천여 명의 머리를 베고 포로된 남녀 3천여 명을 빼앗았다. 19일(계사)에 또 이수(梨樹) 미상 에서 싸워 석령(石嶺)미상 까지 추격하여 2천 5백여 명의 머리를 베고 포로 1천여 명을 빼앗았다. 22일(병신)에 또 여리참(餘里站)미상 에서 싸워 1천여 명의 머리를 베고 포로 1천여 명을 빼앗았다. 이날 세 번 싸워서 모두 이겼다.

○ 왕이 도로 나주(羅州)를 출발하여 전주에 머물렀다.

○ 양규와 김숙흥이 거란주와 애전(艾田)에서 싸우다가 패전하고 죽었다.

28일(임인)에 양규와 김숙흥이 다시 거란 군사의 전봉(前鋒)을 애전(艾田)맹산(孟山)에 있다 에서 요격하여 1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조금 후에 거란주의 대군(大軍)이 이르니, 양규와 김숙흥은 종일 고전 끝에 칼과 화살이 다하자 모두 적진에 돌입하여 죽었다.

양규는 외로운 군사로써 만 한 달 동안에 대범 일곱 번 싸웠는데 거란 군사를 매우 많이 죽였고, 포로가 된 3만여 명을 빼앗아왔으며, 낙타ㆍ말ㆍ무기를 얻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 양규와 김숙흥에게는 벼슬을 추증하고, 지채문에게는 전지(田地)를 하사하였다.

왕이 양규와 김숙흥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양규에게는 공부 상서(工部尙書)를, 김숙흥에게는 장군(將軍)을 추증하고, 양규의 아내에게는 속(粟) 1백 석을, 김숙흥의 모친 이씨(李氏)에게는 속 50석을 하사하되 매년 이렇게 하는 것을 상례(常例)로 하였으며, 친히 교서를 지어 그에게 주고, 양규의 아들 대춘(帶春)에게는 교서랑(校書郞)을 제수하였다. 지채문의 충성에 대해서는 교서를 내려 포창하고 전지 30결(結)을 하사하였다.

 

3.신증동국여지승람 제53권. 평안도(平安道) 선천군(宣川郡)

【사원】 의열사(義烈祠) 부 안에 있다. 숙종 정축년에 세우고 영종 계축년에 사액하였다. 김응하(金應河) 철원(鐵原) 편에 보라. 정기남(鄭奇男) 하동(河東)이 본관인데 을미년에 김응하를 따라 순절(殉節)하였다. 주문공서원(朱文公書院) 숙종 신사년에 세웠으며 주자(朱子)ㆍ이이(李珥)를 배향하였다. 충민사(忠愍祠) 부 안에 있다. 영종 정축년에 세웠으며 임경업을 배향하였다. 충주(忠州) 편을 보라. 삼충사(三忠祠) 고려 때 세웠는데 뒷날 병란 때 없어졌다. 본조 인조 을유년에 중건(重建)하였다. 양규(楊規) 안악(安岳) 사람인데 고려 현종 2년에 서북면 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로서 거란과의 싸움으로 통천(通川)에서 죽었다. 벼슬은 형부 낭중 벽상공신(刑部郎中壁上功臣)이다. 김숙흥(金叔興) 서북면 도지휘사 귀주 별장(西北面都指揮使龜州別將)으로서 양규와 함께 순절하였다.

 

4.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祀典典故). 서원(書院)

선천(宣川) 주자서원(朱子書院) 신사년에 세웠다. : 주자(朱子)ㆍ이이(李珥)

충렬사(忠烈祠) : 김응하(金應河)ㆍ김만중(金萬重) 벼슬은 문형(文衡)이다.ㆍ박태보(朴泰輔)

충민사(忠愍祠) : 임경업(林慶業)

삼충사(三忠祠) 고려 목종 때에 거란(契丹)과 싸워 전사하였다. : 양규(楊規) 벽상공신(壁上功臣)이며, 서북도순검사(西北都巡檢使)이다.ㆍ김숙흥(金叔興) 벽상공신이며, 서북도지사(西北都指使)이다.ㆍ유백부(庾伯符) 통주부서(通州府署)

댓글목록

김희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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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십몇년전에 평장사에 계셨던분이 어찌 1010년에 귀주별장의 공무원신분으로 순절하셨을까요?
귀주별장이 평장사보다 한등급이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