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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사(花林寺) 기록_<국역 선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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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8-04-05 10:49 조회1,4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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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사(花林寺)

비봉산(飛鳳山) 현 서쪽 20리에 있다. 그곳 정상 남쪽에 화림사(花林寺)가 있는데 지원(智元)이라는 중이 고쳐서 본현 향소(鄕所)에다 복속시켰다고 한다. 절 뒤편 산마루는 평평하고 넓어 향로(鄕老)인 지령(芝嶺) 윤의정(尹義貞),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첨지(僉知) 이완(李完) 등 일시의 명류(名流)들이 때때로 이곳에서 약속해 모였다. 가까이 사는 이계(李繼)는 부자로서 술을 싣고서 와서 참석하였다. 지령(芝嶺) 윤의정(尹義貞)의 기문(記文)에

 ‘병신년 4월 보름 이경장(李景長)이 술을 장만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청하였고, 그 다음날 화림사(花林寺) 뒤 봉우리에서 모두 모였다. 봉우리 정상을(‘은’의 오자) 매우 높아 동쪽으로는 청량산과 마주보고, 서쪽으로는 학가산을 껴안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죽령을 바라보며 불쑥 나솟은 모양이 남녘 하늘 저 멀리로 살짝 보인 것은 팔공산(八空山)이다. 서로 차례로 그 위에 앉아 우주를 부앙(俯仰)하고 그윽한 소회를 실컷 펼쳐 혹자는 취하기도 하고 시를 읊조리기도 하며 한때의 즐거움을 다하였다. 붓을 종횡무진 휘둘러 시를 쓰는 사람은 김설월당(金雪月堂)이요, 글을 씀에 다른 사람보다 다른 이는 윤지령(尹芝嶺)이며, 창안(蒼顔) 백발(白髮)을 휘날리며 상좌(上座)에 앉아 말씀하시는 분은 통정대부이신 대존장(大尊丈)이시다. 경장(景長)의 아들 광욱(光郁)이 이름이나마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 잊지 않게 할 것을 청하여 이처럼 기록하였다. 경장(景長)은 이계(李界)의 자(字)인데 뒷날 납속(納粟)으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라고 썼다.

김설월당(金雪月堂)이 시를 짓기를,

화림봉(花林峯) 위에서 남은 봄 기운 아쉬워하니
모두가 우리 고을 옛 친구일레라
술 한잔 마시고서 너풀 너풀 춤추다니
막 산을 내려 오는 길 달빛도 청아해라

라 했다.

<국역(國譯) 선성지(宣城誌)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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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佛宇)

화림사(花林寺) 비봉산(飛鳳山) 속에 있다. 중 지원(智元)이 중수하여 우리 예안고을 향소(鄕所)에 소속시키고 종이를 만들어 바친다.

<국역(國譯) 선성지(宣城誌)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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