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덕사 07년 추향과 16년의 회고(6) : 07년 시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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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3-30 11:09 조회1,526회 댓글0건본문
3. 시제 봉행
아침 6시에 일어나 집으로 가니 벌써 아주머니들이 와 계셨고 한용형은 헛간에 설치된 가마솥에 탕국을 끓이고 있었다. 마당의 천막치기, 식탁과 의자 놓기, 사당 앞에 스티로폴과 자리 깔기, 세수기와 수건 놓기, 자갈 위에 조각 카페트 깔기, 대문청소하기, 제수물 재점검하기, 마이크와 앰프시설 확인하기, 기타 소도구 준비 등으로 또 바빠졌다. 상석대부와 함께 손을 맞잡으니 일이 한결 쉬웠다.
9시가 되자 제일 먼저 옥천의 태호감사님이 도착했다. 전 장부를 감사하실 수 있도록 내드렸다. 제복을 입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야외 파라솔 아래에서는 커피물도 끓였다. 천막 안에는 도기록(到記錄), 명찰, 분정판(分定版)을 내놓았고 <보감>(寶鑑)이란 제목을 붙인 커다란 파일첩도 내 놓았다. 이 속에는 수년간 준비해 왔던 약 30여 점의 문중 중요 역사 유물 사진들이 해설문과 함께 들어 있다. 오시는 분들에게 문중 역사를 큰 사진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했듯이 관심도와 이해도가 금새 빨라졌다.
10시가 되자 점점 종친 여러분들이 많이 도착하셨다. 오늘 축관은 참봉공(휘 友甲) 후손이신 명년(名年-榮항)대부님이 해주시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급한 사정이 생겨 못 오신다고 한다. 축관은 규동부회장님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옆에서는 독축 예행연습이 시작되었다. 좀 있으려니 멀리 경북 성주와 대구에서 경회부회장님과 태기아저씨, 창회님, 진식아우 등이 도착했다. 먼 데 계신 분들이 일찍도 오셨다.
천막 아래 접수대에서 상석대부는 도기 작성과 회비 접수, 명찰 배부 등을 했고, 나는 분정표를 작성했다. 비안공 초헌관은 양덕공파와 충익공파가 번갈아 가며 담당하기로 되어 있다. 분정은 회장단이 결정하기로 되어 있기에 각 파 부회장들은 직계 선조님들에 대한 헌관을 분정했다. 한 선조님 당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3분을 정한다. 가능하면 모든 분들께 헌작의 기회를 고루 드리자는 취지에서다. 따라서 17위에 대한 헌관은 총 51명이 필요하나 대체로 통덕랑공(휘 남채) 이하 9위는 2분이 담당하므로 헌관 30명, 축관 1명, 집례 1명, 응창 1명, 좌상 집사 2명, 우상 집사 3명 등 총 40명이 있어야 제례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간혹 참예자가 적을 때는 한 헌관이 여러 선조님들께 잔을 올려야 했다.
<접수, 도기록 작성, 명찰 배부, 분방기 작성>
분정 배정이 끝나면 곧이어 축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모든 제례자는 제복을 입도록 했다. 고문이신 부친께서는 도착하는 종친마다 제복을 입혀 주며 착용 요령을 일일이 설명해 주신다.
<접수 장면>
<제복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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