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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회 정기산행(궁궐답사) 보고_01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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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8-02-26 22:17 조회3,244회 댓글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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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회 정기산행(궁궐답사) 보고_01 경복궁

일시 : 2007. 12. 9(일)
장소 : 경복궁, 종묘, 창경궁

해설(우리궁궐지킴이 전문해설사) : 고문준 선생, 진정임 선생
참석 : 19명(무순, 경창생략)
          
권호순, 영윤, 은호, 재만(부부, 처제), 상석(외 1분), 발용(부부), 진회, 태우, 태영, 항용, 정중, 용주(부부), 준용, 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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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흥례문(慶福宮興禮門)-태조4년(1395년)창건되었다.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흥례문(弘禮門)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중건하면서 청(淸)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인 홍력(弘歷)에서 홍(弘)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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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궁궐 지킴이 전문해설사 고문준. 진정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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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문(勤政門) -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이다. 근정전과 함께 고종 4년(1867)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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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정문앞의 영제교. 궁궐로 들어 갈 때에는 반드시 돌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다. 조선 궁궐제도의 특징이다. 왕 앞에 나아갈 때에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있다.  영제교 좌우 어구 양 옆에는 돌짐승 4마리 보이는데, 이들 돌짐승들은 도랑으로 흐르는 물길을 타고 나쁜 기운이 궁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려 사악한 기운을 먹어치우기라도 할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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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정전 전경 -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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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정전 품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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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전경 - 근정전 뒤로 최근에 개방된 북악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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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행각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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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월대에 조각되어 있는 해태상. 암수 한 쌍이 새끼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해태는 불을 먹고 사는 짐승으라 하여 화제를 막기위해 조각해 놓은 것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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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정전 내부의 어좌 - 뒷 편의 '일월오봉병' 병풍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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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내부의 단청이 화려하여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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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도(踏道) - 답도는 '밟고 올라간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답도 사이의 봉황은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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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드므 - 화로같이 생긴 것은 "드므"라는 것으로 '독'이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목조 건물에서 가장 경계시하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방화수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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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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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정문과 사정전 -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일상 업무를 보는 편전이다. 태조 4년(1395)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고종 4년(1867)년에 중건되었다. 사정이라는 이름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히 참석하여 문무 과거를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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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전 입구의 해시계(앙부일구) - 천문관측에 정통하며 과학 지식이 해박했던 세종때 과학자 김돈(金墩 - 군사공파조 諱 七陽의 子)의 주도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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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정전은 왕이 정사를 보거나 신하들과 경전을 강론하던 곳이다. 근정전에서 보이지 않던 운룡도가 어좌위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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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전 운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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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전 주위의 창고(宙字庫).- 사정전 주위에는  천자고(天字庫) 지자고(地字庫) 현자고... 등의 창고가 있다. 우리 옛 조상들은 101호 102호 보다는 황자고(黃字庫) 우자고(宇字庫)등이 편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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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전(千秋殿) - 천추전은 왕의 편전(便殿)으로 왕과 신하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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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修政殿) -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 있던 자리이다. 고종 초기에는 침전으로 사용되고, 편전의 역할을 하였다. 갑오개혁 당시에는 군국기무처 및 내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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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국보 제224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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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준 선생으로부터 경회루(慶會樓)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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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경각(欽敬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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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경각(欽敬閣)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천문학자인 김돈이 지은 흠경각기(欽敬閣記)를 보면 세종 20년 정월에 흠경각(欽敬閣)을 완성하여 그 안에 물시계를 설치하였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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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령전(康寧殿) - 강령전은 왕의 침전으로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용은 곧 임금을 뜻하는데 임금이 거처하는 곳에 두마리의 용이 있을 수 없다하여 용마루를 없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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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령전의 창살무늬 - 경복궁 전각의 창살의 대부분이 '세살무늬' 인데 반해 강령전의 창살은 '아자고임살무늬'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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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령전 추녀마루의 잡상 - '잡상'은 궁궐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줄 지어 놓여져있는 장식 기와이다.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등 『서유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동물의 모습을 줄 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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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태전(交泰殿) -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평소 좌측방에서 취침하나 왕과 합궁 시에는 우측방에서 취침하였다. 역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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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정원 - 경복궁의 중전 교태전 뒤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원. 이름은 아미산이다. 이것은 경회루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옮겨 쌓은 인공산이다. 조그만 둔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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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보물 제 810호) - 담의 한편을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전벽돌로 굴뚝을 만들었으며 굴뚝 벽면 중앙에 십장생 무늬를 조형전으로 만들어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꽃담의 조형미도 살려 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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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민속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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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원정(香遠亭) -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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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청궁(乾淸宮) -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거처이다. 궁궐의 건축양식에서 따르지 않고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최근에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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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령합(坤寧閤) - 왜놈들에 의해 명성왕후가 살해된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건청궁 구역 안에 자리잡은 장안당(長安堂)과 곤령합(坤寧閤) 사이 뜰로 끌려 나와 시해됐으며 그 시신은 곤령합 동쪽 건물인 옥호루(玉壺樓) 방 안에 안치됐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鹿山) 남쪽에서 불태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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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당(長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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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당(長安堂) 마당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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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영제교 위에서 근정문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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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수문장이 교대를 준비 하고 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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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감사합니다.
보고서 아직도 작성하지 못해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

김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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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초겨울의 쾌청한 날씨로 화려한 단청이 더욱 더 빛이납니다. 궐마당의 박석을 잘 다듬지 않는 이유가 박석에 햇살이 부딪쳐 신하들이 인상을 찡그리고 용상을 응시할까 염려해서 그러한 것이라니 왕조국에서 스스로 위엄을 지키려 애쓴 것에 대하여 '지혜'라 운운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다만 고역을 감내하였을 석공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울 뿐이다. 망국의 슬픔을 달래려는 것도 아니면서 사라진 조선을 붙들고 무엇을 얻으려 목소리를 높여 남문의 드므관리자를 욕하는가! 그렇다면 얼마 전에 남문을 개방한 한성부 수장이 누구였냐고 물어 볼 일이다. 선진 미래지향적 사고를 원하면 행동도 따라야 할 일이다. 경복궁과 건천궁 후기 잘 보았습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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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발용대부님 추운날였는데 사진촬영 고생하셨읍니다. 고궁 구경을다시하니 새롭게 느겨집니다. 고맙읍니다.

김영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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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발용대부님 명료한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대부님, 이 날 참석하신 분들입니다. 경칭 생략합니다.
권호순, 영윤, 은호, 재만 내외분과 처제분, 상석 외 1분, 발용 내외분, 진회, 태우, 태영, 항용, 정중, 용주 내외분, 준용, 윤식입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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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68년 10월 22일 국민학교 수학여행후 40년만에 찾은 창경궁.
원숭이도 구경하고 글짓기도 했던 추억의 여행길.
사랑하는 안사연님들과 함께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더욱 그렇네요.

김태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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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기대했던 그대로의 발용 아저씨의 사진 솜씨와 글 내음을 느끼면서 항상 촬영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저씨의 정성에 탄복하면서 재차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았읍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서울에선 드물게 쾌청했던  푸른 하늘과 어울어진 궁궐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단청의 조화를 잘 담아낸  솜씨가 돋보이는 사진과 적절한 설명 잘 보았습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관리자
작성일

  감사합니다.
잘 읽고 보았습니다. 사진들은 모두 명품들입니다. 사진 설명도 좋았구요.
꽤나 추웠던 날인데 멀리 대구에서 오신 은호청장년회장님, 재만 정회장님, 내자 자매 2분, 정중님--- 놀라운 정성과 정열이셨습니다.
창경궁 사진과 후기(상석님)가 올라오면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