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설악산기(登雪嶽山記)13-영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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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25 09:50 조회1,791회 댓글1건본문
오후 3시 25분, 오세암을 떠난 지 1시간 30분만에 영시암(永矢庵)에 도착했다. 암자라고 하기엔 꽤 큰 규모다. 삼연 김창흡(金昌翕) 선생이 머물렀던 곳인데, 암자명 ‘영시(永矢)’는 삼연선생이 지은 암자명으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속세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라 했다. 삼연은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이며, 영의정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다. 진사 후에 정치에 뜻이 없어 과장에 나가지 않았던 그는 기사환국(1680년, 숙종 6. 경신출척(庚申黜陟)으로 실세하였던 남인(南人)이 1689년 장희빈이 낳은 숙종의 원자(元子)에 대한 정호(定號) 문제로 숙종의 환심을 사서 송시열, 김수흥, 김수항 등을 사사시키거나 귀양보내며 서인(西人)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때 부친이 죽자 세상에 환멸을 느껴 이곳에 와서 암자를 짓고 불전(佛典)에 심취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호랑이가 여자 하인을 물어가는 일이 발생하자 다시 속세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글쎄다, 속세를 영원히 이별하고자 했으나 다시 속세로 되돌아 간 김창흡선생, 영원이란 절대적인 말은 있을 수 없음을 부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일까? 이 암자는 6. 25때 전소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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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 에서>
<영시암 현판>
<범종각>
이곳에서 본암(本庵) 김종후(金鍾厚)선생은 동봉 김시습(金時習)선생과 삼연 김창흡(金昌翕)선생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시 한 수를 남겼다.
宿永矢菴 訪五歲菴(영시암에서 자고 오세암을 찾아)
東峰心是儒 : 동봉(김시습)의 마음은 곧 선비같고
三淵迹如釋 : 삼연(김창흡)의 자취는 부처님일세
奇哉此山裏 : 훌륭하도다. 이 산 속
千載同一宅 : 천년을 한 집에서 함께하네
竦厲千峰尊 : 우뚝 솟아 엄숙하며 존엄한 천개의 봉우리
轟騰萬流激 : 요란한 소리로 달리고 격렬하게 흐르는 만 갈래 물일레
擇棲棲於此 : 살 곳을 가려 여기 머물면
豈非象其德 : 어찌 그 덕을 본받지 않으리오
山水僾餘韻 : 산수가 여운을 간직하듯
我來事如昨 : 내가 지내왔던 일 어제와 같네.
板龕像徒設 : 판자 감상(龕像)은 허술하게 만들었어도
瓦簷碑可讀 : 기와 처마 아래 비석은 읽을 수 있네
愛近而忘遠 : 가까운 것을 사랑하고 먼 것을 잊으라니
誰爲解此惑 : 누가 이 의문을 해설해 주려나
*출전 : <本庵集卷一>
*김종후(金鍾厚) (?∼1780(정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고(伯高), 호는 본암(本庵) 또는 진재(眞齋). 성리학자. 영조대 각종의 정치 싸움에 휘말렸다. 저서로는 《본암집》이 있고, 편서로 《가례집고 家禮集考》·《청풍세고 淸風世稿》가 있다.
본암은 김시습과 김창흡의 고귀한 정신을 생각하며 자신의 못남과 이해할 수 없는 불교 진리에 놀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두를 이해할 수 없으니 어쩌랴!
암자 터 한 가운데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광풍과 흙먼지가 일더니 헬기가 나타나 커다란 건축 자재 하나를 내려놓고는 또 쏜살같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같다. 이곳엔 관광객들도 많았다. 남녀 고등학생 약 30 여명이 재잘거리며 젊은 신부님과 수녀님을 따라 올라온다. 싱싱하고 발랄한 모습들이 보기 좋았고, 이 더위에 예까지 오다니 기특하기도 했다.
약 10분간 쉬고는 또 출발이다. 한낮의 매서운 햇빛은 엉성한 내머리를 사정없이 벗겨 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세암부터 함께 가던 일행들은 계곡 한 모퉁이에서 발을 씻고 등목을 한다. 나도 그 물속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이성력(理性力)을 훨씬 앞섰다.
40분을 내려 온 16시 15분, 우리는 적당히 은밀하고도 기막힌 곳을 찾아냈다. 물은 비취색에 연두빛까지 섞였다. 손 뼘 만한 커다란 물고기도 오간다. 먼저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빨아 꼭 짜서 바위 위에 널었다. 그리고 적당히 옷을 벗고는 첨벙, 물속에 들어가 아이들처럼 철없이 헤엄쳐 다녔다. 섭씨 37도의 무더위이지만 물속은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차다. 청정(淸淨) 물속에서 옥빛과 하나가 된 우리는 두 마리 물고기로 변했다. 신이 났다. 계곡이라지만 전체 폭은 약 50m, 물 폭은 약 20m가 됐고, 깊은 곳은 나를 삼키고도 한참이나 남았다. 바위에 널었던 옷은 불과 25분 만에 거의 다 말랐다. 16시 40분, 쫒기는 도둑마냥 얼른 옷을 입고 다시 태연하게 걸었다. 감쪽같다. 몸은 훨씬 시원하고 가뿐했다.
<영시암 아래의 은밀한 계곡>
댓글목록
김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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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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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무더운 여름날, 난코스를 택하신 하산길에 땀 많이 흘리셨겠네요! 계곡을 옆에두고 이어지는 백담사로 내려가는 마지막 하산길은 온갖 시름과 번뇌가 사라지고 신선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