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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문온공)선조님과 동방(대과에 같이 합격)분-4-겸곡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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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2-15 16:45 조회1,6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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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李韌)
?∼1381(우왕 7). 고려의 문신.
1362년(공민왕 11)에 전사관편수관(前史館編修官)으로서 글을 올려 시무10조(時務十條)를 진술하였다.
1364년 대호군 이성림(李成林)과 함께 전교부령(典校副令)으로 중국의 장사성(張士誠)에게 가서 보빙(報聘)하였다.
1371년 신돈(辛旽)이 대사를 일으키려 할 때 선부의랑(選部議郎)으로 신돈의 문객이 되어 몰래 흉모를 자세히 기록하였다가 일이 급해지자 한림거사(寒林居士)라 칭하고 글을 써서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에 던져놓고 급히 도망하였다.
김속명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여 순위부(巡衛府)에 명령하여 신돈의 무리를 잡아 처벌하였다.
1381년 지문하부사상의(知門下府事商議)로 죽었다. 시호는 익효(翼孝)이다.


척약재집에서


211)上謙谷李相公 靭

    상겸곡이상공 인

已與鷗盟隱姓名。이여구맹은성명

按廉行過問狂生。안렴행과문광생

同年久故知多少。동년구고지다소

深感明公最有情。심감명공최유정


211)겸곡 이인(*549)상공께 올리다.


성명을 숨기기로 이미 갈매기와 맹서했는데

按廉使(*551)가 지나가면서 미친 사람의 소식을 묻네

同年의 옛친구가 그얼마인가?

그대가 가장 정이 많음에 깊이 감사하네.


294)上李政堂 聊申賀臆 兼以自負

    상이정당 료신하억 겸이자부   聊=귀울릴료, 어조사료

憶昔觀風過羽溪。억석관풍과우계

獲參令祖兒如驪。획참령조아여려

干今孫子登華省。간금손자등화성

知是陰功在海西지시음공재해



新除諫議喜無窮。신제간의희무궁

六載投閑似夢中。륙재투한사몽중

莫次承宣誇一榜。막차승선과일방

政堂文學已三公。정당문학이삼공


294)이정당(*728)께서 애로라지 축하의 뜻을 펴고 아울러 자부하다.


옛날 풍속을 살피러(*729)羽溪(*730)를 지나가다

그대의 祖父를 만났더니 모습이 기려말과 같았네

지금 손자가 華省에 올랐으니(*731)

陰功이 海西地方에 있음을 알겠네(*732)


새로 諫議를 제수받으니 기쁨이 무궁한데(*733)

6년동안의 한가로움이 마치 꿈속인 듯하네

承宣(*734)이 같은 榜에서 나왔음을 자랑하지 말게

政堂文學(*735)이 이미 세사람(*736)이네(*737)



*728) 이정당은 겸곡 이인을 가리키는 듯 하다.  목은문집에도 李政堂靭이라는 시가 있다.

*729) 觀風은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 백성들의 풍속과 인정을 실핀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방관으로 나감을 의미한다.

*730) 羽溪는 강릉 남쪽 60리에 있는 縣으로 현재의 강원도 명주군 옥계면 옥계리의 옛 이름이다.

*731)華省은 관청, 役所의 뜻이다. 여기서는 政堂이 된 사실을 가리킨다.

*732)(原註)元朝使臣降香金剛山。見令祖。屈己爲禮。左右怪問。使臣曰。此老象貌奇偉。後當有光顯門閭子孫。今日爲益驗矣。(원나라조정의 사신이 금강산에서 降香하다가 그대의 조부를 보고 몸을 굽혀 예를 다했다.  좌우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물어보니“이노인은 기상과 모양새가 기이하고 크니 후일에 마땅히 가문을 빛낼 자손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오늘 그것을 징험하게 되었다.

降香은 이색의 [陽軒記]에서 황제의 장수를 빌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려사]에 보면 元이 매양 금강산에 降香하여 민폐가 크므로 이를 중단해달라구 表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733)김구용은 1331년 左司議大夫에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시는 1381년에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734)承宣은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직으로 조선시대의 承旨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735)政堂文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에 있었던 관직이다.  고려시대에는 처음 內.史門下省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문종때 정원은 1명, 품계는 종2품으로 졍해졌으며 1275년(충렬왕1)네 參文學士로 일시 개칭한 바 있다  조선초기에는 문하부의 관직으로 존속하다가 1401년(태동1)에 문하부를 의정부로 개칭할 때 議政府文學으로 바뀌었다.

*736)세사람은 한방신, 우현보, 이인을 가리키는 듯하다.

*737)(原註)庚子榜。承宣八九人。以誇於士林。吾同榜以政堂已三人。從此累然出矣。[경자년에 급제한 사람 중 承宣이 8-9명이나 나옴으로써 士林에 자랑하였는데 나와 같이 급제한 사람중에은 政堂이 이미 3명이나 되니 이로부터 계속해서나올 것이다.]  경자년은 1360(공민9)년이다.


*549) 李靭(?-1381)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1355년 안을기의 방에 김구용과 함께 급제했다.  1371년(공민20) 신돈의 역모사실을 익명으로 밀고하여 그를 제거시켰다.  그공으로 정당문학에 특진하였으며 뒤에 知門下府事商議에 이르렀다. 시호는 翼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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