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문온공)선조님과 동방(대과에 같이 합격)분-3-이보림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8-02-13 12:43 조회1,642회 댓글0건본문
이보림(李寶林)
생몰년 미상. 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문하시중을 지낸 제현(齊賢)의 손자이며, 서종(瑞種)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염철별감(鹽鐵別監)을 여러 도에 보내려고 하자 우사간(右司諫)으로 우간의(右諫議) 이색(李穡) 등과 함께 그 폐단을 들어
혁파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재상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1359년 남원부사가 되어서는 재정계획을 정하고 재정을 집행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함부로 걷는 것이 없게 하였다.
또한, 경산부사(京山府使)로 옮겨서는 어려운 송사를 잘 처리하여 평판이 좋았다.
1375년(우왕 1)판안동부사로 있을 때는 치적이 최상이라 하여 대사헌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임박(林畎)이 북원(北元)에 보내는 글에 서명하지 않자 그를 탄핵하여 유배시켜 당시 사람들로부터 이인임(李仁任)의 뜻에 아부하는
지조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어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제주에서 바친 고력(羖$력01:일종의 牝黑羊)을 여러 주에 나누어 기르게 하였는데 죽는 것이 많아지자 백성들에게
그 값을 물리므로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부당성을 지적하여 정지시켰다.
그뒤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척약재집에서
82)送同年李祭酒寶林之任京山次韻
송동년이좨주보림지임경산차운
與予同心可斷金 여여동심가단금
浩然滄海未爲深 호연창해미위심
去年曾秉張綱節 거년증병장강절 병=잡을병 강=벼리강
今日還彈宓賤琴 금일환탄복천금 복=성복
疾電狂雷雖氣質 질전광뢰수기질
淸風明月是胸襟 청풍명월시흉금
皇山亦見名爲李 황산역견명위리
援筆誰題鳳鳥吟 원필수제봉조음 수=누구수
82)경산(*243)으로 부임하는 동년 이보림 좨주를 보내며 차운하다.
나와 같은 마음은 쇠를 끊을 만하니
넓고 푸른 바다도 깊다 하지 못하리.
작년에 일찍이 張綱(*245)의 符節(*246)을 잡더니
오늘은 도리어 宓賤(복천*247)의 琴을 연주하네
氣質은 비록 빠른 번개나 미친 우레와 같지만
胸襟은 淸風明月이네
皇山(*248)에서 또한 李氏의 名聲을 보게 되리니
누가 붓잡아 [鳳鳥吟](*249)을 자울 것인가?
*243)京山은 경상북도 星州의 옛 이름이다.
*244)이보림운 고려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 이제현의 손자 瑞種의 아들이다. 鷄林君에 봉해지고 시호는 文肅이다. 김구용과는 예부시 동년이다.
*245) 張綱은 중국 후한때 광릉태수를 지냈으며 충직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장강이 지방의 풍속을 徇行하라는 명을 받았을때 먼저 요로에 姦臣을 제거한다고 하면서 수레바퀴를 묻어 감히 다니지 못하게 한 故事가 있다. [後漢書] 장항전에는 “장항이 홀로 수레바퀴를 洛陽都亭에 묻으면서 ‘이리가 길에 있는데 어찌 여우 따위를 묻겠는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46)符節에 대해서는 주 136을 볼것
*247)宓賤은 중국 춘추시대의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宓不齋를 가리킨다. 그는 字가 子賤으로 單父인 수령이 되어 琴을 타면서 堂에서 내려가지 않았어도 그 지방이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蒙求]에는 ‘子賤彈琴’으로 실려 있다.
*248)皇山은 제목의 京山을 가리킨다.
*249)鳳鳥吟은 鳳凰曲으 이칭으로 詞牌의 이름이다. 봉황곡은 “鳳凰臺上憶吹簫‘를 줄인 것인데 簫史와 秦의 弄玉의 고사를 담은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