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설악산기(登雪嶽山記)9-소청산장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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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12 14:57 조회1,543회 댓글0건본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아래로 약 10여 분을 내려가니 17시 50분, 소청산장(小靑山莊)이 나타났다. 꽤 큰 규모로 민간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한다. 세 동의 건물이 있는데, 큰 두 동은 약 200여 명을 수용하는 숙소이고, 작은 1동은 매점이었다. 산장지기들은 지리산 연하천(煙霞泉)산장에서 처럼 모두 털보들이었다. 산에서는 모두가 신선(神仙)들이라 산신(山神)께서 수염을 자르지 못하게 하는가 보다.
<소청산장>
<소청산장 숙소>
<매점>
여기서 북쪽 산 아래를 보니 온통 운해(雲海)로 덮여 있다. 더욱 장관이었다. 산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식사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우선 물부터 떠 와야 했다. 그런데 샘물이 약 70m 아래쪽에 떨어져 있는 것이 흠이었다. 수돗물처럼 콸콸 흘러나오는 물은 너무도 시원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물을 받아 몇 번이나 머리에 부었다. 후유- 이제야 살 것 같다. 물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을까?
<소청산장에서 본 북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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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가는 설악산>
소청산장 뜰마루 사이에서 비박을 하기로 했다. ‘비박’이란 텐트를 치지 않고 침낭 속에서 잠자는 것이다. 맨 아래에는 배낭 아래에 묶었던 매트레스를 깔고 그 위에 카바를 씌운 침낭을 편 다음, 이슬막이 비닐 천막을 약간 낮은 폴대로 세우고 사면 끝을 핀으로 단단히 박아 고정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평일이라 산장 안에는 잠잘 여유가 충분했으나 시원하고 조용한 이곳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지난 해 지리산에서 2박이나 비박을 한 바 있는 우리는 시원하고 상큼한 설악의 밤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싶었다.
비박 준비를 마치고 저녁을 먹자니 이웃한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다. 준비해간 6병의 작은 여행용 소주는 턱없이 모자랐다. 멀리 서쪽으로는 눈과 일직선상 조금 아래로 해가 지고 있었다. 햇빛은 서산 위의 구름들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더니 이내 온 세상을 발갛게 물들여 놓았다. 장관(壯觀)이 연출되었다. 아무리 인공(人工)으로 만든 컴퓨터 그래픽이라도 이를 따를 수 있으랴? 산 위 1450m의 고지에서 바라보는 일몰 현장의 감동은 바로 태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런 맛에 많은 산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해가며 등산을 하는가 보다.
<일몰장관>
해가 지자 곧바로 어둠이 서서히 밀려왔다. 그리고 눈높이 아래로 펼쳐져 있던 북쪽의 운해 위로는 가느다랗고 파란 실선이 나를 축으로 하여 온 세상을 동그랗게 원을 그어 놓았다. 마치 토성의 고리와 같았다. 산 아래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신선의 세계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눈앞의 장관들을 한참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후 멀리 우측으로 거뭇거뭇한 어둠 속으로 가물거리는 불빛이 몇 개 보였다. 바다 쪽인 것 같다. 한 등산객이 말참견을 하며 저건 오징어잡이 배들이라고 일러 준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아진다. 남은 술이 모두 끝나갈 즈음 온 하늘은 별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내 머리위로 그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별이 많았던가?
초롱초롱한 5살배기 어린애의 눈망울로 한참을 책임과 의무, 휴머니즘을 찾아 이 별 저 별을 돌아다니는 생텍쥐 베리의 어린 왕자를 찾다가, 알퐁스 도테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 스타파네트 아가씨를 찾으려는 양치기 소년처럼 옆을 바라보니 운해 위의 푸른 선이 아주 희미해졌다. 그리고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던 더위는 갑자기 약 15도의 가을 날씨로 변했고 바람도 점점 차가워 졌다.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여러 팀은 뜰마루 위에 남아서 아쉬운 순간을 어깨를 움츠리며 감상하고 있었다.
완전히 어둠이 깔리자 갑자기 모터 소리가 들리며 생각지도 않았던 전기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자가 발전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고마웠다. 산장은 다시 활기가 넘치며 한참동안 즐겁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이어졌다. 저녁 9시가 되자 전기불은 다시 꺼졌다. 이젠 어둠이 천지를 완전히 뒤덮었고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 졌다. 몇몇 사람은 마루 위에 앉아 시원한 밤공기와 아름다운 밤하늘의 야경을 술과 함께 마시고 있었다. 환상적인은 밤은 그렇게 금쪽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보며 노래한 시인들이 생각났다. 박인환 시인은 <목마(木馬)와 숙녀(淑女)>에서 끝없는 고독과 쓸쓸한 심정을 술병에서 떨어진 상심한 별에 의지했었다. 또 윤동주는 <별헤는 밤>에서 별 하나 하나에 좋아하는 단어와 대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곱게 새겨 넣었었다. 어머니까지---.
내가 명명(命名)할 별이 남아 있을까?
밤 11시 경 잠자리에 들었다. 추위가 이젠 제법이다. 기온은 5-10도 정도밖에 안되리라. 쉽게 잠이 들지 앉자 가끔씩 침낭에서 고개를 내밀고 누운 자세 그대로 하늘을 보았다. 별들은 그 자리에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고 밤공기는 싸늘하게 추웠다. 주위가 조용하니 뜰마루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작은 말소리도 꽤나 크게 들려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죽우는 그래도 코까지 골며 잘도 잔다. 기막힌 설악산의 밤을 설잠으로 뒤척여야 했다. 밤새 술로 보내는 호주(好酒)꾼들이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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