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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 孫子 참의공 (中舒)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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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8-02-08 16:36 조회1,74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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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獒樹) 김 찰방(金察訪) 중서(中舒) 이 와서 함께 모였고, 종사관(從事官) 홍군(洪君) 긍(矜) 또한 자리를 함께

 

했으니, 그는 바로 현주인(賢主人)과 아주 다정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고(高), 윤(尹), 성(成) 세 종사관과

 

변 장흥(卞長興), 김 능성(金綾城), 이 진원(李珍原), 김 오수(金獒樹), 진 보성(秦寶城), 이 무장(李茂長)은 모두 동

 

년(同年)이다

 

獒樹(오수):義犬碑와 像으로 유명한 전북 임실군 소재의 地名

 

 

위 내용으로 보아 참의공 (중서中舒) 선조님과 사가정(서거정)과는 동년(同年)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서거정과 동방(同傍)이신 쌍계재(김뉴) 선조님에겐 7촌 재당숙이 되십니다

 

상락공 묘--문온공(구용)--부사공(명리)--참의공(중서)

            I

            I

            --안정공(구정)----------오문--------중엄---쌍계재(뉴)

사가시집 제 10 권 BTN043.gifBTN047.gifBTN044.gif 
MKICN007.gif 시류(詩類)
남원(南原)의 축천정시(丑川亭詩) 병서(幷序)

창룡(蒼龍) 임오년 10월 일에 장차 영남(嶺南)으로 가려면서 도중에 명승지를 지나게 되었는데, 부사(府使) 송군(宋君) 의(衣) 이 이곳에 연회(宴會)를 베풀어놓고 와서 나를 맞이하였다. 군적 종사관(軍籍從事官)인 고군(高君) 신교(愼驕) · 윤군(尹君) 효손(孝孫) · 성군(成君) 윤문(允文), 전제 종사관(田制從事官) 오군(吳君) 응(凝), 장흥(長興) 변 부사(卞府使) 포(袍), 금산(錦山) 이 사군(李使君) 시원(始元), 낙안(樂安) 정 사군(鄭使君) 옥경(沃卿), 보성(寶城) 진 사군(秦使君) 유경(有經), 능성(綾城) 김 사군(金使君) 율(慄), 순창(淳昌) 최 사군(崔使君) 연(淵), 무장(茂長) 이 사군(李使君) 유의(由義), 김제(金堤) 김 사군(金使君) 적(磧), 진원(珍原) 이 사군(李使君) 진수(眞粹), 고산(高山) 이 사군(李使君) 문비(文埤), 강진(康津) 권 사군(權使君) 노(璐), 오수(獒樹) 김 찰방(金察訪) 중서(中舒) 이 와서 함께 모였고, 종사관(從事官) 홍군(洪君) 긍(矜) 또한 자리를 함께했으니, 그는 바로 현주인(賢主人)과 아주 다정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고(高), 윤(尹), 성(成) 세 종사관과 변 장흥(卞長興), 김 능성(金綾城), 이 진원(李珍原), 김 오수(金獒樹), 진 보성(秦寶城), 이 무장(李茂長)은 모두 동년(同年)이다. 그리고 오 종사(吳從事)는 미원(薇垣)과 춘관(春官)에서 나와 재차 동료로 있었던 사람이고, 이 금산(李錦山), 정 낙안(鄭樂安), 최 순창(崔淳昌)은 모두 사문(斯文)의 골육 같은 사람들이며, 김 김제(金金堤), 이 고산(李高山), 권 강진(權康津)은 모두 친척 고구(親戚故舊)로서 서로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우리들 가운데 사환(仕宦)으로 인하여 남북으로 각각 헤어져서 서로 만나지 못한 지 혹은 2, 3년, 혹은 5, 6년이나 되었는데, 지금 한때에 호남(湖南)의 천만리 먼 땅에서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어, 즐겁게 담소를 나누면서 술잔을 서로 주고받고 하노라니, 그 즐거움을 알 만하다. 그러자 오, 윤 두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대방(帶方)은 우리 고향인데, 지금 이렇게 훌륭한 연회를 갖게 되었으니, 이 사실을 기록해서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마침내 제영(題詠)을 요구하므로, 나는 비록 문사(文詞)는 졸렬하지만 그 훌륭한 뜻을 저버릴 수가 없어, 겨우 근체시(近體詩) 칠언(七言) 세 수를 지어서 산천의 뛰어난 경치와 회우(會遇)의 즐거움을 기록하노니, 이는 시를 짓는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애오라지 여러분을 위하여 내가 먼저 한마디를 읊어서 후일의 제영의 장본으로 삼게 하는 바이다.

벼랑 의지한 절벽은 그림 병풍 펼친 듯한데 / 緣崖絶壁畫屛開
다시 높은 누각이 있어 돌로 대를 만들었네 / 更有高樓石作臺
만고에 시냇물은 졸졸 그칠 줄을 모르고 / 萬古溪聲流不盡
백년에 산 빛은 우뚝 무더기를 이뤘구나 / 百年山色矗成堆
철우는 어느 날에나 불러 일으킬 수 있을꼬 - 정자(亭子) 가에 철우(鐵牛)가 있으니, 축천(丑川)이라 이름한 것이 대체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 鐵牛何日能呼起
황학은 오늘 아침에 타고 온 것만 같네그려 / 黃鶴今朝可跨來
여기가 바로 대방의 아름다운 곳이건만 / 此是帶方佳麗地
풍류의 읊조림에 재주 없음이 부끄럽네 / 風流題詠愧非才

제군이 나를 맞이해 한바탕 담소 나누고는 / 邀我諸君一笑開
서로 손에 손 이끌고 함께 대에 올라가서 / 相逢携手共登臺
노래하고 춤을 추어 연회를 즐기고 나니 / 已將歌舞當筵樂
술과 음식 그릇이 또한 낭자히 쌓였구려 / 更有杯盤滿眼堆
정이 깊으니 나도 몰래 더디 마시게 되고 / 情深不覺遲遲飮
크게 취해선 천천히 돌아가게 내버려두네 / 大醉從敎緩緩來
모두가 다 남쪽 고을의 어진 태수거니와 / 一一南州賢太守
사문의 두어 분은 다 걸출한 재사들일세 / 斯文數子總雄才

백년의 회포를 그 누굴 향하여 토로할꼬 / 百年懷抱向誰開
흥겨우니 내일 아침 다시 대에 오르련다 / 有興明朝復上臺
물 줄어든 계곡엔 하얀 돌이 쑥쑥 나오고 / 水落山間白石出
가을 깊은 언덕 위엔 단풍잎이 쌓였어라 / 秋深岸上紅葉堆
이렇게 당당히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지만 / 流光奈此堂堂去
명승지에 자주 오는 거야 어찌 해로울쏜가 / 勝地何妨袞袞來
내 이름 남기고는 싶으나 좋은 말이 없어라 / 我欲留名無好語
낙하 고목 부른 재주가 참다운 재주고말고 / 落霞孤鶩是眞才


 

[주C-001]축천정시(丑川亭詩) : 축천은 시냇물 이름인데, 옛날 남원부(南原府)의 동북쪽에 시냇물이 거세게 들이치므로 마을을 설치할 때에 술자(術者)의 말에 따라 철우(鐵牛)를 만들어서 여기를 지키도록 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축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주D-001]낙하(落霞) …… 재주고말고 : 초당 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저녁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특히 이 구절이 세상에 널리 회자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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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참의공께서 오수 찰방 재임(1462년)이 이후 참의공계의 전북(익산 봉동 함열 김제) 세거의 근거가 되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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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
그런 추론이 가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