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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설악산기(登雪嶽山記)5-천불동계곡과 허목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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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02 10:41 조회1,6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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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대 계곡을 건너는 잘 꾸며진 계단과 다리를 지나니 우측으로는 금강굴과 마등령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천불동 가는 길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우리는 왼쪽 계곡을 택했다. 천불동 계곡은 일명 설악골계곡이라고도 하는데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약 7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설악의 산악미를 한 곳에 집약해 놓은, 설악산의 보배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문수담(文秀潭)·이호담(二湖潭)·귀면암(鬼面岩)·오련폭포(五連瀑布)·양폭(陽瀑)·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인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千佛)’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가는 곳마다 눈이 바쁘다. 산, 물, 바위, 나무, 꽃 등 볼 것들이 너무 많다. 길도 거의 평지와 같아 힘들이지 않고 자연 감상을 넉넉히 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문수담(文秀潭)을 지나니 계곡 전체가 하나의 암반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고, 그 위를 투명하고 푸른빛까지 도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2년 전 다녀온 북한 금강산의 한 부분인 온정리 주변의 팔상담, 해금강 등을 관광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름답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곳 설악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우선 푸석푸석하고 거무튀튀한 느낌의 암석들과 나무도 별로 없는 금강산보다는 단단하고 푸른빛 도는 화강암과 푸른 나무들이 뒤덮인 이곳 설악산이 훨씬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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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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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하게 흐르는 설악 천불동 계곡의 청정수>

 

 미수 허목(許穆)선생은 설악산을 바라보며 이렇게 한 수 시를 썼다.


 <강릉(江陵) 도중에서 설악산(雪嶽山)을 바라보며 감회를 쓰다>

雪嶽之山高萬丈 : 설악산 높이가 만 길이니

懸空積氣連蓬瀛 : 봉래산과 영주까지 그 기운 이어 있네

千峰映雪海日晴 : 천 개의 봉우리는 눈오는 바다에 비치고

縹緲群帝集玉京 : 저 멀리 옥경에는 상제들이 모였구나

東峯老人住其間 : 동봉 노인(김시습)이 거기서 머무는 동안

高標歷落干靑冥 : 거룩한 그 기상 하늘까지 뻗쳤도다

嘯風叱雨弄神怪 : 비바람도 꾸짖고 귀신을 희롱하며 

逃空托幻藏其名 : 불교에 의탁하여 그 이름을 숨겼네

乞食都門傲卿相 : 장안 거리 걸식하며 경상을 멸시하고

縱謔飜爲市童驚 : 해학을 일삼아 아이들을 놀라게 했네

猖狂不獨事高潔 : 광태를 부림은 외롭지 않고 고결한 일이네

此心長與日月明 : 그 마음 길이길이 해와 달처럼 밝게 빛나리


*출전 : 미수기언(眉叟記言) 기언(記言) 제63권 습유(拾遺)   

*허목(許穆) (1595~1682) : 본관은 양천. 호는 미수(眉叟), 자는 문보 ․ 화보, 시호는 문정. 조선 중기 학자 겸 문신. 사상적으로 이황 · 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다.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다. 문집 《기언(記言)》, 역사서 《동사(東史)》등을 편집하였다.

*[주1]동봉 노인(東峯老人) : 김시습(金時習)의 별호.

*[주2]장안 …… 멸시하고 : 김시습이 장안에서 걸식할 때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거리를 지나가다 재상 정창손(鄭昌孫)을 보고, “이놈아 벼슬자리 그만두어라.” 라고 하는 등, 당시 많은 조정 대신들을 농락하였다. 《燃藜室記述 卷4 端宗朝故事本末 殉難諸臣 金時習》


 이처럼 천상의 상제(上帝)들이 노닐고 고결한 기상을 지닌 매월당 김시습선생이 머물렀다는 설악산을 나도 오늘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신선이 되고 지조 높은 선비가 된 기분이었다. 황홀! 바로 그것이다. 벌린 입은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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