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따라 풍류여행(15) 삼척-해신당공원. 공양왕릉, 실직군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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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1-21 14:59 조회1,512회 댓글0건본문
해/신/당/공/원
◎ 소재지삼척시 원덕읍 갈남리(신남마을)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공원에는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애바위전설
옛날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초작업을 위해 총각은 해변에서조금 떨어진 바위에 처녀를 태워주고
다시 돌아 올 것을 약속하고 돌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파도와 심한 강풍이 불어 처녀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후 이 마을에는 처녀의
원혼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바다를 향해 오줌을 쌌더니 풍어를 이루어 돌아온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음력 1. 15), 음력 10월 첫 오일에 남근을 깎아 매달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삼척 공양왕릉 [三陟恭讓王陵]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고려시대 공양왕의 묘.
지정번호 강원기념물 제71호 지정연도 1995년 9월 18일
소재지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178 시대 고려시대
크기 지름 13m 면적 3,203㎡ 분류 묘
1995년 9월 18일 강원도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모두 4기의 무덤으로 구성되었는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의 무덤이고 2기는
왕자의 무덤, 나머지 1기는 왕의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능의 규모는 지름 13m 정도이며, 능 앞에는 길이 107cm,
너비 63cm의 상석 1개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도 공양왕릉이 있는데, 이처럼 두 곳이 거론되는 이유는 공양왕의 재위 시기가 조선 건국과 맞물려 있어 문헌이
빈약하므로 정확한 고증이 어려운 까닭이다.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편찬한 《척주지(陟州誌)》와 1855년(철종 6) 김구혁(金九赫)이
쓴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는 이곳이 공양왕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척 궁촌(宮村)에서는 3년마다 어룡제(漁龍祭)를 지내는데, 그에 앞서 반드시 공양왕릉 앞에서 먼저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
실직군왕릉
이 능은 삼척김씨(三陟金氏)의 시조(始祖)이며,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손자(孫子)인 김위옹(金渭翁)의 능(陵)으로 실직군왕(悉直郡王)이란
명칭은 고려(高麗) 태조(太祖)인 왕건(王建)이 신라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이고 실직군왕으로 책봉(冊封)하여 대우한 것이라 한다.비문(碑文)에
그 직위(職位)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검교(檢校) 사농경(司農卿) 겸(兼) 어사대부(御使大夫) 상주(上柱)
국좌승상(國左僧像) 봉(封) 실직군왕(悉直郡王)"이라 적혀 있다.조선(朝鮮) 헌종(憲宗) 4년(1838) 가을에 김학조(金學祚), 김흥일(金興一) 등이
삼척부사(三陟府使) 이규헌(李圭憲)에게 간청하여 지석(誌石)과 유적(遺蹟)을 찾으려고 사직릉(史直陵)과 갈야능(葛夜陵)을 발굴(發掘)하여
두 능을 확인하였다.1937년 삼척김씨 종중(宗中)에서 수축(修築)할 것을 건의하고 석의(石儀)를 갖추어 능(陵)으로 봉(封)하였다.
삼척시(三陟市) 월계동(月溪洞)에 재사(齋舍) 왕묘가 있어 매년 음력 3월15일이면 각처에서 후손(後孫)들이 모여 제사를 올린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이 묘 부근에 다른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면 샘물이 쏟아져 나오고 흰 호랑이가 나타나
묘를 쓸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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