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따라 풍류여행(8) 삼척 죽서루- 죽서루에 걸려있는 현판-1-현판, 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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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1-16 11:08 조회1,841회 댓글0건본문
죽서루의 현판
과거 죽서루는 관동 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주위 경관을 자랑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시인․문사들이 사시사철 찾아왔었다. 시작(詩作)이 일상화되어 있던 그들은 예외 없이 죽서루 누마루에서 즐겼던 주위 풍경의 시원한 눈맛을 시로 읊어 남겨 두었다. 따라서 죽서루에는 이곳을 찾았던 시인․문사들의 주옥같은 글을 새긴 현판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1959년 9월에 삼척 지방을 엄습한 사하라 태풍으로 대부분의 현판이 유실되고 지금은 27개의 현판만이 걸려 있을 뿐이다.
이를 종류별로 보면 ‘죽서루(竹西樓)’ 및 그 별호(別號)를 새긴 현판이 5개, 시를 쓴 현판이 16개, 기문(記文)을 쓴 현판이 6개 걸려 있다. 이외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기부금방명기(寄附金芳名記)를 쓴 현판이 각각 1개씩 있다. 비록 시를 쓴 현판은 16개이지만 그 안에는 27편의 시가 들어 있다. 여기서는 이들 각 현판에 쓰여져 있는 글들의 내용을 알아보자. 참고로 이들 현판이 걸려 있는 위치를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죽서루 현판 게첩도(생략)
1) ‘죽서루’ 및 그 별호(別號)를 쓴 현판
【현판 1-1】
이 현판의 글씨 ‘죽서루(竹西樓)’는 삼척 부사를 지낸 이성조(李聖肇)의 작품이다. 이성조는 1710년(숙종 36) 11월에 삼척 부사로 왔다가 1712년(숙종 38) 10월에 장령(掌令)으로 옮겨갔다.
【현판 1-2】
이 현판의 글씨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역시 조선 숙종 대 삼척 부사를 지낸 이성조(李聖肇)의 작품이다.
【현판 1-3】
이 현판의 글씨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삼척 부사를 지낸 이규헌(李奎憲)의 작품이다. 이규헌은 1835년(헌종 1) 7월에 삼척 부사로 왔다가 1839년(헌종 5)에 능주 목사로 옮겨갔다. 그는 재임동안 부세(賦稅) 감면, 유생 교육, 백성 교화에 노력하여 선정(善政)을 펼쳤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떠난 후 선정비(善政碑)와 흥학비(興學碑)를 세웠다.
【현판 1-4】
이 현판의 글씨 ‘죽서루(죽서루)’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
【현판 1-5】
이 현판의 글씨 ‘제일계정(第一溪亭)’은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許穆)의 작품이라고 한다. 허목(1595-1682)은 자를 문보(文父) 혹은 화보(和甫)라 하였고, 호를 미수(眉叟) 혹은 태령노인(台嶺老人)이라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고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60세가 넘어 지평(持平)에 임명됨으로써 벼슬을 시작하였다.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로 삼척 부사로 좌천되었다가, 대사헌․이조 참판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주장하여 남인(南人)이 탁남(濁南)․청남(淸南)으로 갈리게 되었다. 학문․글씨․그림․문장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篆書)를 잘 썼다. 저서에 동사(東事)․방국왕조례(邦國王朝禮)․경설(經說)․경례유찬(經禮類纂)․미수기언(眉叟記言) 등이 있다.
허목은 1660년(현종 1) 10월에 삼척 부사로 왔다가 1662년(현종 3) 8월에 진상(進上)을 궐봉(闕封)하여 파직되었다. 그는 재임동안 삼척 지방 최초의 사찬읍지인 척주지(陟州誌)를 편찬하였고,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그의 독특한 서체인 고전체(古篆體)로 각석(刻石)하여 척주동해비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허목은 향약을 실시하고 이사제(里社制)를 실시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에 읍인(邑人)들이 1825년(순조 25)에 그를 경행사(景行祠)에 추배(追配)하였다.
시문 현판
藥峯(약봉) 徐渻(서성)
①五十川韻(오십천운)
川自牛山來(천자우산래) 沙明苔蘚綠(사명태선록)
縈紆何盤盤(영우하반반) 四十七回曲(사십칠회곡)
深厲淺則揭(심려천즉게) 石齒嚙我足(석치교아족)
時見浣紗女(시견완사녀) 白晳顔如玉(백석안여옥)
家住水東西(가주수동서) 柴扉掩幽谷(시비엄유곡)
我欲從之遊(아욕종지유) 微辭屢往復(미사루왕복)
佳期在桃月(가기재도월) 一諾終不宿(일낙종불숙)
沿流惆愴歸(연류추창귀) 疎風響修竹(소풍향수죽)
‘오십천’을 차운(次韻)하다
우보산에서 흘러내린 냇물
모래는 깨끗하고 이끼는 푸르구나
굽이쳐 흐름이 몇 구비인가
마흔 일곱 구비 돌아 흐르네
깊은 곳은 옷을 허리까지 걷고 얕은 곳은 무릎까지 걷고서 건너니
돌부리 내 발을 찌르고
때맞추어 보이는 빨래하는 여인은
얼굴이 옥과 같이 희구나
집들은 냇물 동서로 자리잡았는데
사립문이 깊숙한 골짜기를 가리는구나
내 마음은 쫓아가 노닐면서
소곤소곤 많은 정담을 나누고 싶지만
3월에 만나기로 하였으니
한번 승낙함에 결국 머물지 못하고
흐르는 물 길 따라 쓸쓸히 돌아오려니
간간이 부는 바람 긴 대나무 숲을 울리네
②次(차)
大嶺之東八九官(대령지동팔구관) 竹西風景最淸閑(죽서풍경최청한)
川回斷岸縈紆處(천회단안영우처) 棟壓層巖縹緲間(동압층암표묘간)
半夜灘聲琴奏曲(반야탄성금주곡) 三冬雪色玉爲巒(삼동설색옥위만)
佳人不識詩人意(가인불식시인의) 笑殺吟肩似聳山(소살음견사용산)
차운(次韻)하다
대관령 동쪽에 여덟 아홉 개의 고을이 있지만
죽서루 풍경이 가장 맑고 조용하구나
냇물은 절벽을 휘감고 돌아 흐르고
용마루는 층암절벽 위에 높게 솟아 아득하구나
한 밤의 여울물 흐르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것 같고
겨울의 설경(雪景)은 옥이 쌓여 작은 산을 이룬 듯 한데
사모하는 님은 시인의 마음을 몰라주니
웃음소리에 시인의 어깨만이 산처럼 치솟는구나
③又(우)
江面危橋橫一木(강면위교횡일목) 人去人來行也獨(인거인래행야독)
山連北塞勢巍巍(산연북새세외외) 水注東溟流曲曲(수주동명류곡곡)
神仙風馭遊怳惚(신선풍어유황홀) 猿鶴幽栖在岑鬱(원학유서재잠울) 蓬壺遙望海漫漫(봉호요망해만만) 巨鰲頭高長不沒(거오두고장불몰)
또 차운(次韻)하다
강 위에 놓인 위태로운 외나무다리
오가는 사람 혼자서 건너야 하고
북쪽 지경에 늘어선 산들 그 기세 높고 크며
동쪽 바다로 흘러가는 물 구불구불 흘러가니
신선이 바람을 타고 황홀하게 노니는 것 같고
원숭이와 학이 산봉우리 울창한 숲 속에 깃들인 듯 하네
저 멀리 봉래산(蓬萊山)1) 바라보니 바다는 아득한데
큰 자라 머리 높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구나
④和韻呈府伯(화운정부백)
使君豪氣足風流(사군호기족풍류) 出守猶分第一樓(출수유분제일루)
密席戱令紅袖狎(밀석희령홍수압) 高歌還挽綵雲留(고가환만채운류)
眞心好箇罇中蟻(진심호개준중의) 浪說何須海上鷗(낭설하수해상구)
老子狂吟應伯仲(노자광음응백중) 千場大笑播東州(천장대소파동주)
화운(和韻)하여 부사에게 주다
부사 그대의 호방한 기상 풍류를 즐기기에 충분하더니만
수령으로 나감에 또한 제일 좋은 누각이 있는 지방에 임명되었구려
조용한 자리 마련하고 미인을 가까이하여 즐겁게 노니
큰 노래 소리에 비단구름마저 머무는구나
진실 된 마음에 술을 적당히 마셨는데
뜬소문에 어찌 바다의 갈매기가 내려와 놀아 주기를 바라겠는가
한바탕 큰 웃음소리만이 동쪽 고을로 퍼져가네
⑤又贈短律(우증단율)
玉堂金學士(옥당김학사) 江外謝宣城(강외사선성)
過客同文擧(과객동문거) 論兵慕孔明(논병모공명)
重來靑眼豁(중래청안활) 話別白髭生(화별백자생 此後明思處(차후명사처) 孤燈夢不成(고등몽불성)
藥峯(약봉) 徐渻稿(서성고)
또 짧은 율시(律詩)를 지어 주다
옥당(玉堂)2)의 김 학사(學士)가
강 너머에서 작별하고 선성(宣城)으로 떠나 갈 때
이 나그네도 글 모임에 함께 참석하여
병법(兵法)을 논하며 제갈량(諸葛亮)을 사모하였었는데
다시 찾아오니 반겨주는 눈은 광활하지만
이별의 말을 나누자니 흰 수염이 생겼구나
이후로 그리움만 더해 가는데
외로운 등불아래 꿈조차 꿀 수 없구나
약봉 서성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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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증보(徐曾輔)
①敬次忠肅先祖板上韻(경차충숙선조판상운)
海上猶能做好官(해상유능주호관) 竹樓公退讀書閒(죽루공퇴독서한)
仙居弱水三千里(선거약수삼천리) 梵宇淸風五百間(범우청풍오백간)
逝者如斯無晝夜(서자여사무주야) 望之尤美幾峯巒(망지우미기봉만)
己拚先祖詩多感(기분선조시다감) 王考遺碑似峴山(왕고유비사현산)
삼가 선조 충숙공(忠肅公)1)이 쓴 판상(板上)의 시를 차운(次韻)하다.
바닷가 좋은 고을의 관리가 되어
공무를 끝내고 죽서루에서 독서하며 한가로이 보내니
신선이 사는 삼천리 약수(弱水)2)이고
시원한 바람 이는 오백 칸 범왕궁(梵王宮)3)인데
흐르는 물 밤낮없이 흘러가고
바라보이는 숱한 산봉우리 더욱더 아름다운데
선조가 쓴 시 몸소 먼지 털고 보니 감회가 더욱더 새로워지고
왕고(王考)가 남기신 비 현산비(峴山碑)4)와 같아 눈물이 나는구나
②敬次李文成公板上韻(경차이문성공판상운)
嶺東名擅竹西樓(영동명천죽서루) 石氣川光夏亦秋(석기천광하역추)
含白山中雲自出(함백산중운자출) 鳳凰臺下水空流(봉황대하수공류)
臨風每有飄飄興(임풍매유표표흥) 落日還生渺渺愁(낙일환생묘묘수)
回首蓬萊千里隔(회수봉래천리격) 二年滄海狎眠鷗(이년창해압면구)
삼가 이문성공(李文成公)5)이 쓴 판상(板上)의 시를 차운(次韻)하다
영동 지방에 이름난 죽서루는
돌 기운과 냇물 빛 때문에 여름 또한 가을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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