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따라 풍류여행(6) 삼척 죽서루- 죽서루 -정추. 윤증, 이이, 임억령, 정철, 신광한, 권필, 최립,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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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1-14 14:58 조회1,682회 댓글0건본문
**차 삼척 죽서루 운(次三陟竹西樓韻) 정추(鄭樞) 동문선에서
죽서루 처마 그림자 맑은 내에 일렁이는데 / 竹西簷影漾淸流
연못 위의 산빛이 작은 다락에 어울리는구나 / 潭上山光可小樓
명절에 멀리 와 노니 하도 감개로워 / 佳節遠遊多感慨
석양에 떠나려다가 다시금 머무르네 / 斜陽欲去更遲留
일찍이 어떤 손이 황학을 탔다던가 / 曾聞有客騎黃鶴
지금엔 아무도 백구와 놀지 않네 / 今恨無人狎白鷗
언덕의 복사꽃 봄도 또 저물었는데 / 挾岸桃花春又老
뚜뚜뚜 옛 진주[삼척의 옛 이름]에 울려 퍼지는 각 소리 / 角聲吹徹古眞州
*뚜뚜뚜 …… 각(角) 소리 : 이 시는 본서(本書)와 《여지승람》에 실린 것이 조금 다른 글자들이 있다. 본서의 ‘可小樓騎黃鶴 挾岸桃花 角聲吹徹古眞州’가 《여지승람》에는, ‘滿小樓 槌黃鶴 來岸紅霞角聲吹欲裂眞州’로 되어 있다.
圓齋先生文稿卷之上
**三陟竹西樓。贈紫玉山沈內舍 원재 鄭樞
何人起樓俯喬木。黃昏一笑立於獨。簷前修竹數千竿。檻外澄江五十曲。頭陁山高倚恍忽。觀音寺古多蓊鬱。長空淡淡鳥往來。微波粼粼魚出沒。幾人前我此登臨。我來懷古仍傷心。珠璣闌干滿紅壁。欲和不能空苦吟。江中之水淸且漣。江上之岸多良田。一作▓若灌漑爲良田 紫玉首陁言可賞。堤防失計必騷然。 ▓君自▓▓王首陁。首陁。梵言農夫
*沈內舍는 沈東老를 가리킨다.(편집자;솔내 주)
**죽서루(竹西樓)에서 판상 시에 차운하다 윤증 명재유고에서
천 리 멀리 죽서루에 올라 접대받으니 / 逢迎千里陟州樓
공기가 서늘하여 오월에도 가을이네 / 爽氣冷冷五月秋
긴 대나무 맑은 시내 참으로 절경인데 / 脩竹晴川眞絶境
눈썹 길고 머리 흰 자 제 스스로 명류라네 / 秀眉華髮自名流
세상 밖의 구름 산은 바라보면 즐겁지만 / 雲山世外看來樂
천락의 인간사는 말하려면 걱정 앞서 / 川洛人間說着愁
평지에다 숱한 풍파 일으켜 놓고서 / 作底風波滿平地
한가로운 곳에 와서 갈매기와 벗하다니 / 却歸閑處伴沙鷗
엉뚱한 말이 한번 나오자 참소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일어나서 사류(士類)가 와열(瓦裂)되고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는데, 이 고을의 군수 허공(許公 허목(許穆))이 바로 그때 앞장서서 일을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 도리어 초연하게 이 좋은 곳에 와서 청복(淸福)을 누리고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돌이켜 한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1]눈썹 …… 자 : 미수(眉叟) 허목(許穆)을 가리킨다. 1660년(현종 1) 허목이 효종에 대한 조대비(趙大妃 : 인조의 계비)의 복상 기간이 잘못되었으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상소함으로써 조정이 복제 논쟁에 휘말리자 현종(顯宗)이 허목을 삼척 부사(三陟府使)로 임명했다.
[주D-002]천락(川洛)의 인간사 : 천락은 송나라 때의 천당(川黨 : 촉당〈蜀黨〉)과 낙당(洛黨)인데, 여기서는 기해 복제(己亥服制)로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윤증(尹拯);1629(인조 7)∼1714(숙종 40).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
竹西樓次韻 율곡 이이
誰將天奧敞華樓。石老星移不記秋。野外千鬟浮遠岫。沙邊一帶湛寒流。
騷人自是多幽情*1。淸境何須惹客愁。會撥萬緣携籊籊。碧崖西畔弄眠鷗
*1情。恐誤
누가 하늘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검푸른 빛 서려있고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시인은 본래 남 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깨끗한 이 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시대 들고와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이이(李珥)2;1536(중종 31)∼1584(선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죽서루-임억령(林億齡)
江觸春樓走(강촉춘루주) : 강물은 봄 누각을 부딪히고 달려가고
天和雪嶺圍(천화설령위) : 하늘은 눈 덮힌 봉우리가 둘러쌓고 있다
雲從詩筆湧(운종시필용) : 구름은 시 쓰는 붓 따라 솟아오르고
鳥拂酒筵飛(조불주연비) : 새는 술자리를 스치며 날아가는구나
浮雲如今是(부운여금시) : 기분이 구름 위로 솟으려는 지금은 옳고
趨名悟昨非(추명오작비) : 세상 명세를 쫓았던 지난 날은 그릇됨 알았도다
松風當夕起(송풍당석기) : 솔바람 저녁 되어 일어나니
蕭颯動荷衣(소삽동하의) : 서늘하게 은자의 옷을 불어올린다
임억령(林億齡);1496(연산군 2)∼1568(선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
竹西樓 송강 정철
竹樓珠翠映江天。上界仙音下界傳。江上數峯人不見。海雲飛盡月娟娟。
次竹西樓韻二首
關東仙界陟州樓。虛檻憑危夏亦秋。天上玉京隣北戶。夢中銀漢聽西流。
疏簾欲捲露華濕。一鳥不飛江色愁。欄下孤舟將入海。釣竿應拂鬱陵鷗。
欲窮千里更登樓。雲海茫茫兩鬢秋。何處蓬萊常五色。此歸江漢定同流。
浮生有別佳人遠。往事無蹤落日愁。安得淸樽永今夕。綠蘋洲渚對輕鷗
관동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척주의 누각
커다란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서니 여름 또한 가을 같구나
하늘나라 서울 옥경(玉京)은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어
마음을 가다듬으니 은하수 서쪽으로 흘러가는 소리 들리네
성긴 발 걷으려 하니 빛나는 이슬 축축하고
한 마리 새조차 날지 않으니 강가의 경치 수심 가득하구나
난간 아래 외로이 떠있는 배 바다로 들려 하는데
낚싯대 울릉도 가는 갈매기 쫓아 휘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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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1536(중종 31)∼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기재(企齋)의 ‘죽서루에서 밤에 읊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밤 고요하니 여울 소리 가깝게 들리고 / 夜寂灘聲近
벌레들 울어 대니 가을 기운 깊어 가누나 / 蟲喧秋氣深
높은 누대 등불 깜빡거리는 가운데 / 高樓燈火耿
자리에 있는 손님들 각각 마음 토로하네 / 四座各言心
신광한;1484(성종 15)∼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지(漢之) 또는 시회(時晦), 호는 낙봉(駱峰)·기재(企齋)·석선재(石仙齋)·청성동주(靑城洞主).
석주(石洲)의 ‘삼척의 수령을 전송하면서’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듣건대 그대 멀리 명구의 원이 되었다니 / 聞君遠作名區宰
도임 전에 내 그 고을에 대해 설명하리 / 未到吾能說此州
대관령은 하늘 닿게 높고 바다는 넓은데 / 關嶺極天滄海闊
달 밝으면 노랫소리 죽서루에서 나느니 / 月明歌吹在西樓
권필(權韠);1569(선조 2)∼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간이(簡易)의 죽서루 시는 다음과 같다.
체류하는 나그네 시름으로 지내노니 / 滯客愁相守
옷 걷어붙이고 곧장 포위망 뚫으리 / 褰衣直潰圍
누대의 환한 빛은 용이 안고 졸고 / 樓光龍抱睡
골짝의 푸른 놀은 학이 끌고 날으네 / 洞翠鶴拏飛
바닷물은 가로 둘러 출렁거리고 / 一水橫臨斷
봉우리들은 주위를 감돌고 있네 / 諸峯徙倚非
읊조릴 만한 남겨 놓은 경색 적으니 / 分留物色少
모든 것이 하의에 뒤졌기 때문이노라 / 摠爲後荷衣
최립(崔岦) ;1539(중종 34)∼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입지(立之), 호는 간이(簡易)·동고(東皐).
택당(澤堂)의 간성 동루(杆城東樓)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누각 붉은 난간 푸른 허공 의지했는데 / 高閣朱闌倚碧虛
층층이 늘어선 봉우리들 마당과 뜰을 에워쌌네 / 層巒列嶂繞庭除
신선들이 사는 산은 봉강의 안에 있으니 / 鰲山只在封疆內
큰 바다는 밭뙈기의 나머지임을 알겠노라 / 鯨海應知畎畝餘
만리의 장한 유람 두 눈에 매여 있고 / 萬里壯遊雙眼在
백년의 덧없는 세상 물거품과 같도다 / 百年浮世一漚如
신선 만나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 / 神仙可接非吾事
한가한 벼슬 얻어 은둔 생활 배우리라 / 贏得閑官學遁居
‘지재(只在)’가 ‘변시(便是)’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이식(李植);1584(선조 17)∼1647(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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